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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엔 명품이 없는 게 아니다…명품 '브랜드'가 없다"
전통공예 브랜드 채율 이정은 대표 인터뷰
아르노·시진핑이 받은 18년산 K명품
“기술·디자인·품질을 브랜드로 쌓아야”
아르노·시진핑이 받은 18년산 K명품
“기술·디자인·품질을 브랜드로 쌓아야”
채율은 자개와 옻칠, 칠보 등 한국 전통공예의 재료와 장인 기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가구와 주얼리, 식기, 생활 오브제 등을 만드는 한국 럭셔리 브랜드다. 옛 공예품을 그대로 복원하기보다 전통의 재료와 기술은 살리면서 오늘날 생활에 어울리는 디자인과 쓰임을 더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지난해 미국 뉴욕타임스가 채율을 한국 전통공예에 기반을 둔 국내 대표 브랜드로 소개하기도 했다. 이 브랜드를 18년간 운영해 온 이정은 대표(사진)가 최근 자신의 경험과 ‘한국형 명품’에 대한 고민을 담은 책 <채율하다>를 펴냈다. 이 대표를 11일 만나 한국 럭셔리의 미래를 물었다.
'한국산 명품'이란
“한국적인 문양을 넣는다고 한국산 명품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대표가 말하는 명품의 출발점은 재료와 기술이다. 단순히 전통 문양을 현대 제품에 입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한국 공예 고유의 재료와 기술, 이를 다루는 방식까지 제품 안에 녹아 있어야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건 이 명품이 단순히 감상에만 머무는 예술 작품이 아니라는 점이죠."이 대표는 “자개와 옻칠, 칠보에는 자연에서 얻은 재료를 사람의 손과 시간으로 완성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며 “그 재료를 이해하고 기술을 존중하면서 오늘의 생활에서도 쓰고 싶은 물건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욕서 떠올린 ‘한국산 명품’의 꿈
이 대표는 20대 초반이던 2008년 사업을 시작했다. 불교미술을 전공한 그는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휴학하던 때 우연히 방문한 뉴욕에서 브랜드에 대한 꿈을 키웠다. 에르메스와 샤넬, 루이비통 등 세계 굴지의 명품 브랜드 매장이 늘어선 5번가를 걸으며 ‘오랜 공예 기술을 가진 한국에는 왜 이들과 나란히 떠올릴 만한 브랜드가 없을까’라는 생각을 품은 것이 계기가 됐다. 비슷한 시기 뉴스로 접한 숭례문 화재 소식이 의지를 더했다. 그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유산도 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전통의 가치를 오늘의 사람들이 선택하는 물건으로 연결하고 싶었다”고 했다.브랜드 이름부터 지었다. ‘채율(彩律)’에는 ‘전통의 색을 다스린다’는 뜻을 담았다. 옛 공예를 그대로 되살리기보다 재료의 성질과 장인의 기술을 살리면서 지금의 생활에 어울리는 물건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담았다.
큰 이상을 품고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곧 ‘돈’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와 마주했다. 가장 어려운 숙제는 이상과 수익성을 함께 맞추는 일이었다. 디자인을 조금만 바꿔도 제작 방식과 공정이 달라지고, 시간과 비용이 함께 늘어났다. 그렇다고 가격을 낮추기 위해 핵심 공정을 줄이면 제품의 가치가 흔들릴 수 있다. 이 대표는 장인과 디자이너의 역할을 통합하는 방식으로 해법을 찾았다. 디자인이 먼저 나오고 장인이 이를 뒤늦게 구현하는 방식이 아니라, 처음부터 구조와 소재, 공예기법을 함께 들여다보며 제품을 완성했다.
18년 경험 책 한 권에 담아
이 대표가 최근 신간 <채율하다>를 펴낸 이유도 브랜드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뛰어난 공예품 하나를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고, 기술과 디자인, 품질 기준, 고객 경험을 하나의 이름 아래 쌓아가야 한국에도 오래가는 명품 브랜드가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을 책에 담았다.
이같은 문제의식으로 앞으로는 기술 전승 교육기관인 ‘채율장인학교’을 세우는 걸 구상하고 있다. 그는 “기술을 가르치는 데서 끝나면 전승도 오래가기 어렵다”며 “채율이 지금까지 물건을 통해 전통을 이어왔다면 앞으로는 그 물건을 만들어갈 사람을 키우는 일에도 힘을 보태고 싶다”고 했다. 인공지능(AI)과 기계가 제작 과정의 일부를 대신하는 시대가 되면서 되레 ‘사람’을 키우는 일이 더 중요해졌다고 봤다. 이 대표는 “완성된 형태를 만드는 기술 자체보다 재료의 상태를 읽고, 문제가 생겼을 때 원인을 찾아 다시 바로잡는 경험이 장인성을 만든다”며 “공정 일부가 자동화되더라도 오랜 경험에서 나온 판단까지 기계가 그대로 대신하기는 어렵다”고 짚었다.
안혜원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