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돈보다 소중한 것
나는 경남 함양에서 지방공무원의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지금도 함양이라고 하면 어디에 있는지 되묻는 사람이 있을 만큼 작은 고장이다.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기에 고등학교 때부터 집을 떠나 하숙 생활을 했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4년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며 등록금과 용돈을 마련했다.

그 시절의 내게 돈은 꽤 중요했다. 좋은 집이나 좋은 차를 갖고 싶어서라기보다, 돈이 있으면 더 많은 것을 선택할 수 있고 가족에게 조금 더 나은 환경을 마련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한 목표가 됐다.

대기업에 취직했을 때는 참 좋았다. 열심히 일하면 매달 정해진 날에 월급이 들어왔다. 하지만 결혼한 뒤 두 아이의 아빠가 되면서 월급날의 기쁨은 잠시였다. 전세 대출금을 갚고 외벌이로 네 식구가 생활하다 보면 통장은 금세 바닥났다. 어린 시절부터 마음 한편에 있던 ‘언젠가는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오히려 더 커졌다.

사업을 시작한 이유가 돈 때문만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새로운 기술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내가 원하는 회사를 세워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나와는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 역시 창업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현실은 생각과 달랐다. 회사를 시작한 뒤 개인대출까지 받아 운영자금에 보태야 했고, 스타트업의 데스밸리도 지나왔다. 회사는 조금씩 자리를 잡았지만, 지금의 내가 대기업에 남아 있는 동기들보다 경제적으로 더 나아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적어도 겉모습만 보면 어린 시절 꿈꾸던 모습과는 조금 다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요즘은 예전만큼 돈을 더 벌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내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인지,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남을지, 내가 하는 일이 세상에 어떤 가치를 더할 수 있을지를 더 자주 생각하게 된다.

어릴 때 책에서 ‘세상에는 돈보다 소중한 것이 많다’는 문장을 읽으면 별로 와닿지 않았다. 듣기 좋은 말, 어른들이 아이에게 하는 모범답안처럼 느껴졌다. 당장 등록금과 생활비를 걱정해야 했던 나에게는 어쩌면 그런 말조차 사치처럼 들렸는지 모른다.

이제야 그 문장의 뜻을 조금 알 것 같다.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에게도 여전히 돈은 중요하다. 다만 돈을 벌어서 결국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어 하던 함양의 소년은 아직 그 꿈을 이뤘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한다. 대신 예전에는 갖고 싶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던 것이 하나 생겼다. 돈이 많은 사람보다 주변 사람에게 가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요즘 내가 새롭게 꾸기 시작한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