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와 국가유산진흥원이 다음달 2~5일 서울 경복궁 집옥재 앞마당에서 개최할 예정인 ‘고궁음악회 발레X수제천(壽齊天)’. 국악과 발레를 섞어 새로운 궁중 무용을 창조했다. 사진은 2024년 행사.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제공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와 국가유산진흥원이 다음달 2~5일 서울 경복궁 집옥재 앞마당에서 개최할 예정인 ‘고궁음악회 발레X수제천(壽齊天)’. 국악과 발레를 섞어 새로운 궁중 무용을 창조했다. 사진은 2024년 행사.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제공
올해 한가위는 하루하루가 유달리 소중하다. 오는 24~27일 이어지는 추석 연휴는 나흘. 엿새를 쉴 수 있었던 지난해보다 이틀 짧고 대체공휴일도 없다. 장거리 여행을 계획하기엔 시간이 빠듯하다. 대신 모처럼 모인 가족들과 문화예술 이야기를 나누기엔 충분하다. 선선해진 가을길을 걷는 시간까지 보태면 굳이 먼 길을 떠나지 않아도 제법 알찬 하루가 된다.

마침 극장과 공연장, 미술관에는 가족이 함께 즐길 작품이 기다린다. 외출하기 싫다면 거실에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봐도 된다. 부모와 자녀가 같은 작품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오랜만에 만난 가족과 전시장 사이를 천천히 걷는 것도 좋다. 문화예술은 짧아진 연휴를 조금 길게 보내는 방법이다.

극장가에서는 다채로운 한국 영화가 추석 관객을 기다린다. 배우 최민식·한소희가 세대를 뛰어넘어 호흡을 맞춘 ‘인턴’,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총격 사건을 다룬 ‘암살자(들)’, 허영만 작가의 만화 ‘타짜’의 4부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타짜: 벨제붑의 노래’, 이창동 감독의 베니스영화제 수상작 ‘가능한 사랑’ 등이 관객을 맞는다. 가족들의 서로 다른 취향에 각각 맞출 수 있을 정도로 장르 폭이 넓다.

가족이 한데 모인 거실에서 편안한 하루를 보내고 싶다면 OTT를 주목할 만하다. 넷플릭스의 ‘대환장 기안장 시즌2’와 디즈니플러스의 ‘토이 스토리5’는 온가족이 함께 웃을 만한 안전한 선택이다. 농염한 이야기가 끌린다면 넷플릭스 ‘스캔들’을 볼 만하다. 몰입감 넘치는 서사와 화려한 영상미가 매력인 사극 드라마다. 한국의 전통 설화에서 아이디어를 따온 넷플릭스 ‘들쥐’, 이별 위기에 처한 커플의 이야기를 다룬 웨이브·쿠팡플레이의 ‘너 말고 다른 연애’도 한가위 연휴를 든든히 책임져줄 만한 OTT 콘텐츠다.

예술이 주는 생생한 떨림을 체험하고 싶다면 공연장에 갈 만하다. 마침 가족의 다양한 모습을 그린 연극들이 상연한다. 지난 12일 막을 올린 연극 ‘스미레 미용실’은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3대에 걸친 이야기를 통해 가족애의 힘을 표현한다. 어린 자녀들의 흥미에 더 초점을 맞춘다면 뮤지컬 ‘겨울왕국’이 매력적이다. 국내 천만 영화 반열에 올랐던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을 원작으로 해 화려한 시각 효과를 구현했다. 한가위에도 남아 있는 늦여름의 더위를 식혀줄 만한 콘텐츠다.
국립국악원이 다음달 2일까지 서울 경복궁 수정전에서 여는 공연 ‘소리의 씨앗’. /국립국악원 제공
국립국악원이 다음달 2일까지 서울 경복궁 수정전에서 여는 공연 ‘소리의 씨앗’. /국립국악원 제공
전통 명절의 의미에 초점을 맞춰 전통문화를 탐닉하는 것도 좋다. 국립국악원 추석 공연 ‘휘영청, 둥근 달’을 비롯해 여러 지역국악원의 창극과 마당극 등이 한가위의 흥을 살린다. 한경아르떼TV도 ‘2026 전주세계소리축제’ 판소리 다섯 바탕을 TV 프로그램으로 선보인다. 한경아르떼필하모닉의 클래식 공연도 안방 TV로 만날 수 있다.

한가위엔 푸짐한 음식으로 몸이 무거워지기 쉽다. 그럴 땐 산책한다는 느낌으로 미술관을 둘러보면 컨디션 관리에 좋다. 국립현대미술관 4개관이 연휴에 무료 개방하고 서울시립미술관의 7개 전시 공간도 무료로 관람객을 맞는다. 삼청동 국립현대미술관, 한남동 리움미술관, 용인 호암미술관 등도 연휴 중 하루 휴관하지만 다른 날엔 관람이 가능하다. 연휴 나흘간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창경궁 등 4대 궁과 조선왕릉 등도 무료 개방한다. 평소 예약제로 운영되던 종묘도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

귀성길에도 즐길 만한 예술이 많다. 지역의 정체성과 연계한 미술전이 곳곳에서 열린다. 광주, 부산, 제주 등 곳곳에서 열리고 있는 비엔날레가 다채로운 미술품으로 시각예술의 현재를 조명한다. 대구간송미술관은 겸재 정선 탄신 350주년을 기념해 역대 최대 규모 겸재전을 열었다. 제주에 가는 사람이라면 일본 미디어아티스트 료지 이케다의 개인전을 관람할 만하다.

문화예술을 즐긴 뒤엔 가을을 바라볼 차례다. 고궁의 오래된 나무도 좋고, 고향집 주변에 묵묵히 놓여 있는 들길도 좋다. 가족과 나란히 걸으며 시원해진 가을 바람을 느끼고, 밤엔 둥근 달에 취해보자. 함께 나눈 문화예술 이야기도 곁들이면서. 짧은 연휴가 오히려 서로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는 시간이 될 수 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