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AI 시대 에너지 갈등, 누가 조정할 것인가
AI 챗봇에 질문을 던진다. 몇 초 만에 답이 나온다. 그 사이 수백 ㎞ 밖 데이터센터에서 수천 개의 반도체가 연산을 수행한다. AI를 움직이는 건 전기다. 문제는 전기를 보내는 길이다.

지난달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총괄위원회는 2040년 최대전력수요를 158.4~165GW로 재전망했다. 지난 4월 발표 때보다 26.6~26.8GW 늘렸다. 1.4GW 대형원전 19기 규모다. 반도체 등 첨단산업의 최대전력 순증분은 24.3~24.6GW, 데이터센터는 11.9GW로 전망했다. 이들 산업에 전력을 적기에 공급하려면 발전원은 물론 전력망도 함께 갖춰야 한다.

현실은 정반대다. 북당진~신탕정 송전선로는 150개월 지연됐다. 동해안에서 수도권으로 향하는 송전망도 사정은 비슷하다. 대한상공회의소는 동해안의 전력 계통 제약으로 석탄발전을 수도권의 LNG 발전으로 대체할 경우, 1GW당 매년 5402억원이 더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원전도 다르지 않다. 계속운전, 신규 건설, 사용후핵연료 관리시설 모두 지역사회와의 협의가 전제다.

병목의 핵심은 수용성이다. 전자파와 원전 안전처럼 삶과 직결된 쟁점에서 사업자와 주민은 서로 다른 정보를 들고 마주한다. 과학적 근거를 들어 기준치와 측정값을 제시하는 것만으로 갈등이 풀리지 않는다. 사실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실을 말하는 주체를 믿지 못하는 순간 과학의 문제는 신뢰의 문제가 된다.

그래서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소통이 필요하다. 소통 시점부터 앞당겨야 한다. 노선과 입지 확정 후 설명회를 여는 건 뒷북이다. 팩트체크 체계도 갖춰야 한다. 불안은 정보가 없을 때보다 정보가 부족할 때 커진다. 쟁점을 정리하고 합의를 설계하는 조정 기능도 제도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 기능을 어디에 둘 것인가. 사업자는 이해당사자이고 규제기관은 인허가 권한을 쥔다. 수행기관이 수행하는 사업의 소통까지 맡으면, 설명은 사실 전달이 아니라 자기변호처럼 들린다. 프랑스가 대형 인프라 공론화를 독립 행정기관인 ‘국가공공토론위원회’에 맡기는 이유다.

조정 역량은 예산이나 조직도가 아니라 사람과 관계에서 나온다. 얼굴을 맞대며 쌓은 신뢰는 서류로 주고받을 수 없다. 원자력처럼 수십 년이 걸리는 사안일수록 연속성이 중요하다.

AI 시대 에너지 인프라를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은 발전기도 송전탑도 아닌 신뢰다. 최근 정부는 이 기능을 맡은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을 통폐합 대상으로 선정했다. 갈등 조정과 신뢰를 쌓는 역량은 조직을 합친다고 생겨나지 않는다. 새로운 조직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이미 축적된 역량을 활용할 것인가. 선택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