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난방의 전기화, 실패 반복하지 않으려면
1985년, 정부는 밤 시간대 전기를 파격적으로 싸게 파는 심야전력 제도를 내놨다. 밤에 남는 전기를 축열조에 담아 난방과 온수에 쓰자는 구상이었다. 값싼 요금과 지원책에 가입자는 한때 90만 가구까지 불어났다.

그러나 약속은 오래가지 못했다. 보급이 성공하자 심야 수요가 ‘남는 전기’를 다 먹어치웠고, 남는 전기를 쓰자던 제도는 어느새 비싼 LNG를 돌려 전기를 만들어 파는 제도로 변해 있었다. 정부는 2003년 신규 억제로 돌아섰고, 겨울철 요금은 10년 새 158% 올랐다. 900만원짜리 심야보일러를 들이고 한 달 전기료 68만원 고지서를 받아든 농가도 있었다. 요금표는 바뀌었지만, 설비는 바꿀 수 없었다.

40년이 지난 올해 정부는 ‘난방 전기화 원년’을 선언했다. 2035년까지 히트펌프 350만 대 보급을 목표로 세웠다. 도시가스가 닿지 않는 제주와 남해안에서 설치비의 70%를 지원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낮에 남는 재생에너지를 히트펌프가 흡수한다는 설명도 따라붙는다. 어디서 들어본 문장 아닌가. ‘심야’가 ‘한낮’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물론 히트펌프는 3분의 1의 전기만으로 같은 열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심야보일러와 다른 기술이다. 그러나 심야전력의 실패는 기술의 실패가 아니었다. 순서의 실패였다. 그리고 그 순서가 지금 되풀이되고 있다.

남는 전기를 쓰자는 정책은 성공하는 순간 전제가 무너진다. 350만 가구의 새로운 수요가 잉여를 다 써버리면 비싼 전기를 새로 만들어내야 한다. 태양광은 잠들고 계통은 최대부하로 치닫는 한파의 아침, 히트펌프의 전력수요가 바로 그 시간에 살아난다.

가구의 처지에서는 더 절실하다. 정책은 되돌릴 수 있지만 설비는 되돌릴 수 없다. 보조금이 낮춰주는 것은 초기 부담까지고, 십수 년의 경제성은 미래 정부가 결정하는 요금에 달렸다. 보조금은 한 번 지급되지만 요금 고지서는 겨울마다 돌아온다. 그 고지서조차 정직하지 않다. 전기와 가스 요금에는 미회수 원가와 교차보조가 얽혀 있어 두 에너지의 진짜 상대비용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빠른 보급을 위해 전기요금을 깎으면 왜곡만 심해진다. 가격을 정직하게 세우는 일이 보급 목표보다 앞선다. 실제 독일은 전기와 가스의 상대가격도 정비하지 않은 채 신규 설비 규제부터 앞세웠다가 역풍을 맞았다. 전기가 가스보다 서너 배 비싼 구조 탓에 2024년 히트펌프 판매는 전년보다 48% 급감했다.

공교롭게도 과거 심야보일러가 깔렸던 곳과 현재 히트펌프가 설치되는 곳은 같다. 같은 지역 주민이 40년 만에 다시 보급 정책의 최전선에 선다. 히트펌프는 검증된 기술이다. 검증되지 않은 것은 한국의 조건에서 350만 대라는 수치다. 검증 없이 속도만 주문한다면 2026년의 원년 선언은 1985년의 재방송이 될 수 있다. 그때도 요금표는 바뀔 것이고, 설비는 바꿀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