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가 R&D 파이프라인 지켜낼 BK21
지난 한 해 글로벌 첨단기술 분야에서는 무려 15만 명 이상이 해고됐다. 올해도 인텔, 구글 등 주요 빅테크 기업의 구조조정과 인력 감축이 매섭게 몰아치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기업들은 인공지능(AI) 대전환(AX) 시대를 주도할 핵심 우수 인재를 향해서는 파격적인 연봉을 제시하며 무서운 속도로 낚아채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기술패권 전쟁 속에서 대한민국 대학원의 위기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당장 학교 밖 기업들이 매력적인 대우로 우수 인재를 끌어가면서, 학문 후속 세대의 이탈이 심해지고 국가 미래를 책임질 연구 인력 파이프라인 자체가 붕괴할 위험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반도체, 첨단 제조를 비롯해 방산, 의료, 심지어 예능과 문화 분야까지 아우르는 세계적인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한 비결은 무엇일까? 그 바탕에는 1999년부터 시작해 26년간 이어져 온 정부의 최장수 인재 양성 프로젝트, ‘두뇌한국21(BK21)’ 사업이 있다.

BK21은 단순한 일회성 공모 사업이 아니다. 현재 학계와 산업계 리더 중 이 사업의 지원을 받지 않은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부산대의 경우 최근 5년간 신규 임용된 교수의 40% 이상이 BK21 사업 혜택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BK21은 지난 사반세기 동안 대한민국의 지식 경쟁력과 연구 주권을 지켜낸 든든한 ‘고등교육의 필수 인프라’인 것이다.

지방 위기와 학령인구 감소라는 이중고 속에서도 정부의 든든한 지원과 대학의 혁신이 만나면 어떤 폭발적인 결과가 나오는지를 부산대가 지표로 증명하고 있다. 부산대는 4단계 BK21 사업 기간에 본부 주도의 거버넌스 혁신과 AI 연구 인프라 구축을 단행했다. 그 결과 영국의 QS 세계대학평가에서 5년 연속 순위가 수직 상승하며 거점국립대 1위를 기록하고, 169계단이나 도약하는 쾌거를 이뤘다.

가장 흥미로운 성과는 AI 연구 현장에서 나왔다. 부산대 BK사업단 중 한 곳은 ‘국제 AI 로봇대회, 로보컵 2026’에서 2년 연속 세계 1위를 달성했다. 확고한 재정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지역 대학도 얼마든지 세계 최고 수준의 성과를 내는 글로벌 R&D 허브로 도약할 수 있음을 입증한 사례다.

과거 닷컴 버블 당시 인프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것과 달리 현재의 AI 혁명은 클라우드와 빅데이터 등 탄탄한 기술적 기반을 바탕으로 우리 산업과 일상에 광범위하게 침투하며 실질적인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저성장의 늪을 빠져나와 체질 개선과 창조를 기반으로 한 국가의 ‘진짜 성장’을 달성하기 위해서 초혁신 핵심 기술과 인재에 대한 투자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다가올 ‘5단계 BK21’ 사업은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파격적인 지원과 확장이 필요하다. 우수한 청년이 당장의 취업 대신 연구실에 남아 국가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넉넉한 장학금과 복지를 보장하는 획기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5단계 BK21 사업의 예산 증액과 자율적 블록펀딩 보장은 단순한 소모성 지출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글로벌 기술 선도국으로 뻗어 나가기 위한 가장 확실한 ‘미래 지식 자산 투자’다. 정부와 정책 당국의 담대하고 적극적인 결단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