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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칼럼] 무기화된 상호의존 시대
세계화로 촘촘해진 국가 분업체계
평화의 기반서 강압의 통로로 전락
호르무즈서 드러난 공급망 리스크
무역대국 韓에 막대한 타격 불가피
수입처 다변화로 의존도 낮추고
파병도 철저히 국익 관점서 따져야
김원호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평화의 기반서 강압의 통로로 전락
호르무즈서 드러난 공급망 리스크
무역대국 韓에 막대한 타격 불가피
수입처 다변화로 의존도 낮추고
파병도 철저히 국익 관점서 따져야
김원호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한국이 처한 현실도 이 틀 안에서 이해할 수 있다. 무역의존도가 85%를 넘는 한국은 반도체·배터리·자동차 등 제조업 수출 경쟁력에도 불구하고 핵심소재·부품·에너지 등에서 소수 국가와 특정 해협·금융허브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의 사드 보복, 일본의 수출 통제, 미국의 대이란 제재와 2차 제재 등은 한국이 참여한 글로벌 네트워크가 무기화됐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 수입 원유의 70%, 액화천연가스(LNG)의 20%가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해 들어온다는 사실은 한국 경제가 하나의 해상 병목에 과도하게 매여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이 해협이 봉쇄되거나 보험·운송·결제망이 흔들리면 유가 상승은 물론 발전소와 공장 가동, 나아가 한국의 지정학적 입지까지 타격을 입는다. 무기화된 상호의존 시대에 강대국의 표적이 된 국가들이 주로 상대의 취약점을 파고드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란의 호르무즈 봉쇄 시도는 예측 가능한 리스크였다.
그렇다고 미국이 통제하는 금융제재·동맹 레버리지에 무조건 편승하는 것도 해답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과거 파병 결정에는 단기 국익과 동맹 관리라는 거래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 베트남전에서 한국은 외화와 산업화 자본을 확보했지만 그 대가로 수십 년에 걸친 기억정치와 인권 논쟁을 떠안았다. 이라크 자이툰부대 파병은 ‘재건·인도적 임무’라는 명목하에 동맹 신뢰를 유지하는 선택이었으나 정의로운 전쟁인지 여부를 둘러싼 논란은 끝내 정리되지 않았다.
이번 호르무즈 파병도 동맹·이념 프레임에서의 이분법보다 국익이라는 냉철한 현실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핵심 질문은 “우리의 선택이 정의로운가”를 넘어 “어떤 선택이 한국의 공급망 취약성을 줄이고 특정국이 병목을 무기화할 때 당할 희생과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가”여야 한다. 공교롭게도 이번 논쟁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파병 압박 이후 불거진 만큼 어떤 결정이든 논란을 피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지난 5월 나무호 피격 당시 우리 정부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라는 대의명분 아래 좀 더 단호하게 선제적 조치를 취했더라면 현 상황과 같은 가중된 정치·외교적 부담을 덜 수 있었으리라는 아쉬움도 남는다.
한국은 국익 수호를 위해 스스로 원칙과 전략을 세울 수 있는가를 가늠하는 시험대에 올라 있다. 비슷한 처지의 중견국 간 협력이 이상적이긴 하나 각국의 위협 인식이 서로 다르다 보니 쟁점별·기능별 공조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 우리 입장에선 미국과 이란이 각자의 허브를 레버리지로 쓰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이 우선이다. 이제라도 자유항행 원칙에 입각한 유조선 및 상선 호송, 기뢰 제거, 해상 구조 등 방어적 임무로 이뤄진 물리적 행동계획을 밝혀야 한다. 동시에 우리 스스로 취약성을 완화하기 위해 의존도를 분산하고 대체 가능성을 높이는 조치를 병행할 필요가 있다. 원유·가스 수입처 다변화와 전략비축·재생에너지 비중 확대, 보험·금융·해운 리스크 관리 계획을 묶는 패키지 설계가 대표적이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자 핵심 제조 허브인 한국은 더 이상 주변부가 아니다. 한국이 내릴 선택은 아시아 공급망과 에너지 흐름, 제재 체제, 나아가 미들파워의 생존전략으로서 의미 있는 신호가 될 것이다. 상호의존이 무기화된 시대, 한국은 강압의 비용을 분산시킴으로써 전략적 회복력을 키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