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올 때 이를 바로 흘려보내는 대신 자체적으로 관리하는 건물이 있다면 어떨까요. 폭우가 내릴 때 침수 피해를 줄이는 동시에 도시의 인프라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입니다.”

카를로 라티 소장은 17일 이메일 인터뷰에서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건축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카를로라티아소치아티의 설립자이자 매사추세츠공대(MIT) 센서블시티랩을 운영하는 라티 소장은 ‘2025 베네치아 건축 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은 세계적인 건축가다.
카를로 라티 소장은 “도시에 필요한 건축은 인간의 생존과 긴밀한 관련을 가진다”며 “기후변화 등 자연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CRA 제공
카를로 라티 소장은 “도시에 필요한 건축은 인간의 생존과 긴밀한 관련을 가진다”며 “기후변화 등 자연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CRA 제공
한국에서는 GS건설과 협력해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른바 ‘하이힐을 신은 고층빌딩(A High Rise on High Heels)’으로 불리는 이 건물은 높이 140m의 날렵한 기둥 위에 주거 공간을 올린 형태다. 저층 기단부를 개방형의 투수형 조경 공간으로 조성해 기존 수목을 보존하며 공공 공간을 확보했다. 폭우가 내릴 때는 빗물이 이 공간을 거친 뒤 배수망으로 빠져나가게 했다. 폭우에 따른 피해를 줄이면서 도시와 공존할 수 있는 방식인 것이다.

이런 건물은 현재 마주한 기후 현실에서 지구에 적응할 수 있는 건물과 도시를 어떻게 설계할지에 대한 그의 고민과 맞닿아 있다. 그는 늘 해답은 자연에 있다고 강조한다. 라티 소장은 “자연의 시스템을 도시로 이식해야 한다”며 “증발산 작용을 통해 스스로 열기를 식히는 동시에 인간에게도 시원함을 주는 수목을 심는 것, 태양의 궤적에 반응해 그늘을 만들어내는 파사드를 설치하는 것 등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카를로 라티 소장이 설계한 싱가포르의 ‘캐피타스프링’.  CRA 제공
카를로 라티 소장이 설계한 싱가포르의 ‘캐피타스프링’. CRA 제공
이는 하이힐을 신은 고층빌딩에서 획일적인 커튼월(통유리벽) 대신 남향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에너지를 생산하는 식으로 구현될 예정이다. 라티 소장은 이런 환경 적응이 지속가능성과도 일맥상통한다고 했다. 지속가능성이 인류가 지구에 미치는 환경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이라면 적응은 이미 변화한 현실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적응과 지속가능성 모두 “인간의 생존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일”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런 점에서 앞으로의 도시는 ‘회복탄력성’을 갖춰야 한다. 이런 회복탄력성을 위해 개별적인 노력이 아니라 시스템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광장에 단순히 나무 몇 그루를 심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는 “녹지를 도시 인프라 관점으로 다뤄야 한다”며 “공원은 단순한 휴식 공간이 아니라 냉각 시스템이자 빗물 흡수 시스템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래에 필요한 도시는 ‘스마트’하기보다 ‘센서블’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센서블 시티는 단순히 똑똑한 데 그치지 않고 거주자를 감지하고, 그에 반응할 수 있는 도시다. 센서와 장치가 촘촘하게 연결된 네트워크를 통해 건물과 도시가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작동하는 곳이다. 라티 소장은 “이동형 센서로 공기 질을 측정하거나 도시의 가로수를 모니터링하는 연구도 이를 위한 작업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를 위해서는 도시의 목적이 성장이 아니라 순환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새로운 자원을 투입하면서 무한 성장할 수 있다는 기존의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프리패브(조립식) 건축은 건물의 수명이 다했을 때 자재를 더 효율적으로 재사용할 수 있게 돕는다”며 “레고 블록처럼 건축의 모든 자재는 언젠가 해체돼 다시 쓸 수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의 고층빌딩, 아파트 등은 가장 효율적인 주거 방식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이힐을 신은 고층빌딩에서는 한국의 규제도 새롭게 해석했다. 30층마다 필요한 피난안전구역을 공용 정원으로 조성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비상시에는 대피 공간으로, 평상시에는 소통과 교류의 장으로 기능하도록 했다. 라티 소장은 “밀도 높은 건물을 짓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자연을 도시 외곽으로 밀어내는 대신 밀도 안으로 자연을 끌어들이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