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기울기 시작할 즈음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잔디광장에 잔나비 특유의 아련한 밴드 사운드가 퍼진다. 관객들은 잔디 위에서 방금 받아 든 커피를 마시면서 공연을 볼 수 있다. 초고층 빌딩과 가을 음악, 커피 향이 한 장면으로 포개지는 순간이다. ‘2026 청춘, 커피페스티벌’이 19~20일 롯데월드타워 잔디광장과 아레나광장 일대에서 열린다. 지난해 42만여 명이 찾은 국내 최대 커피문화축제다. 올해 축제 주제는 ‘오늘의 나를 깨우는 완벽한 블렌딩’. 서로 다른 원두가 어우러져 한잔의 커피가 되듯 음악과 이야기, 휴식이 한데 섞인다.
낮의 에너지, 노을의 낭만
첫날인 19일은 음악과 이야기가 차례로 온도를 높인다. 오후 1시 커피 퀴즈로 축제의 문을 연다. 커피와 행사에 관한 문제를 풀고 선물을 받을 수 있는 관객 참여 프로그램이다. 이후 남성 밴드 디폴트가 첫 공연을 맡는다. 오후 2시30분부터는 공연의 속도를 잠시 늦춘다. 송파구 선호커피와 매뉴얼즈커피로스터스 등 로컬 카페 바리스타가 동네 카페의 개성과 커피 이야기를 들려주는 토크콘서트가 열리고, 휴식과 균형에 관해 이야기하는 웰니스 토크가 이어진다.
오후 4시30분부터는 다시 음악의 시간이다. 분위기를 끌어올릴 주인공은 4인조 걸그룹 하이키다. 하이키는 역주행 곡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를 통해 녹록지 않은 현실에서도 꺾이지 않는 청춘을 노래했다. 잔나비가 축제 첫날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등 서정적인 음악으로 사랑받는 밴드다. 초가을 저녁과 잔디광장, 커피 향과 잘 어울리는 무대다. 낮에는 디폴트와 하이키의 에너지를, 해 질 무렵에는 잔나비의 낭만을 즐길 수 있도록 공연 순서를 안배했다.
아이돌부터 클래식까지
20일은 새로운 얼굴과 장르를 발견하는 날이다. 오후 1시 커피 퀴즈에 이어 2시 청춘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세 팀이 관객 앞에서 실력을 뽐낸다. 관객에게는 미처 알지 못했던 음악을 발견하는 시간이고, 참가자에게는 대규모 관객 앞에서 자신의 이름과 노래를 알릴 기회다. 이어 걸그룹 아르테미스가 출연한다. 몽환적인 음악과 정교한 퍼포먼스로 국내외 팬층을 넓혔다. 전날 하이키가 밝고 힘찬 청춘을 보여준다면 아르테미스는 신비롭고 우아한 분위기로 둘째 날 무대의 색을 바꾼다. 영화와 클래식도 커피를 매개로 만난다. ‘[ ]의 커피’를 주제로 열린 커피 29초영화제 시상식이 개최된다. 참가자들은 누군가와 나눈 커피, 혼자 견딘 시간의 커피,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마신 커피 등 저마다의 장면을 29초 영상에 담았다. 한경arte필하모닉의 클래식 공연 영상으로 이틀간의 축제는 마무리된다.
잘 알려진 가수의 노래를 듣는 즐거움과 처음 만난 음악을 발견하는 즐거움은 다르다. 이날 무대는 후자에 더 가깝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청춘의 공연에서 출발해 아이돌과 영화, 클래식으로 장르를 넓혀간다. 특별히 좋아하는 출연자가 없어도 하루 동안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맛볼 수 있는 구성이다.
10년째 가을을 채우다
‘청춘, 커피 페스티벌’은 한국경제신문이 커피 한잔으로 청춘을 응원하자는 취지로 2017년 시작했다. 초기에는 커피업계 종사자와 시민이 만나 제품을 맛보고 커피 이야기를 나누는 행사에 가까웠다. 해를 거듭하며 토크콘서트와 영화제, 오디션, 체험 프로그램을 더해 도심형 문화축제로 성장했다. 그동안 스윙스, 비비지, QWER, 피프티피프티 등 당대 청년층의 관심을 받은 아티스트가 무대를 채웠다. 모든 프로그램을 빠짐없이 따라갈 필요는 없다. 부스를 둘러보다가 마음에 드는 커피 한잔을 고르고, 잔디에 앉아 다음 노래를 기다리는 것만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