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제작비 전액 투자
투자 난항 겪던 예술영화 구원투수
23일 국내 개봉…내년 오스카 도전
“그라찌에(Grazie·고맙습니다). 수많은 사람의 기다림이 없었다면 영화는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겁니다. 이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믿어준 넷플릭스에 감사를 전합니다.”
12일(현지시간) 은사자상을 거머쥔 이창동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넷플릭스에 각별한 고마움을 전했다. 10년 넘게 ‘서랍 속 시나리오’로 묻힐 뻔했던 작품이 은막에 걸릴 수 있었던 데는 넷플릭스의 역할이 컸기 때문이다.
영화계에 따르면 ‘가능한 사랑’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개봉이 불투명했다. 지난해 영화진흥위원회의 ‘중예산 한국 영화 제작지원사업’에 선정돼 15억 원의 국고지원금을 확보했지만, 추가 투자에 난항을 겪었기 때문이다.
작품성에 이견은 없지만, 상업적 흥행을 장담하기 어려운 영화라는 평가에 선뜻 자금을 댈 투자자를 구하기 어려웠다. 코로나19 이후 지속되는 극장 관객 감소와 잇단 한국 영화 흥행 실패로 투자시장이 극도로 경색된 가운데 거장의 신작마저 표류한다는 소식은 영화계에 적잖은 충격을 줬다.
‘가능한 사랑’의 영화 제목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건 올초 넷플릭스가 하반기 오리지널 영화로 공개한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다. 넷플릭스의 제작비 전액 투자 제안에 이 감독과 제작자인 이준동 파인하우스필름 대표는 영진위 지원금을 자진 반납하고 넷플릭스행을 택한 것으로 전해졌다.
영화계 안팎에서는 ‘가능한 사랑’의 넷플릭스행이 전화위복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 넷플릭스가 전통 영화제작사들이 순수 작가주의·중예산 예술영화 편성을 줄인 공백을 채우면서 베니스영화제와 넷플릭스 사이에 전략적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베니스로서는 영화적 가치가 높은 작품을 초청하지 않을 이유가 없고, 넷플릭스는 베니스를 통해 영화 제작사로 인정받고 구조다. 실제 2018년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가 황금사자상을 수상했고, 지난해엔 기예르모 델 토로 ‘프랑켄슈타인’, 노아 바움백 ‘제이 캘리’, 캐서린 비글로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 세 편이 경쟁부문에 올랐다.
높아진 K콘텐츠의 글로벌 위상도 넷플릭스의 과감한 투자를 끌어낸 배경으로 꼽힌다. 한국산 오리지널 콘텐츠가 넷플릭스 비영어권 콘텐츠 중 세계 시장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핵심 자산이 되면서 ‘가능한 사랑’에도 전폭적인 지원이 이뤄졌다. 영화제 출품을 위해 일부 극장에서 단기 제한 상영을 하는 기존 방식 대신 전국 개봉 형태로 배급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가능한 사랑’은 11월 넷플릭스 공개에 앞서 오는 23일부터 국내 극장에 걸린다. 이 감독은 “넷플릭스가 극장 개봉 약속을 지켜주고 제작 독립성을 인정해준 덕분에 편하게 작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은사자상 수상으로 영화계에선 내년 초 미국 아카데미시상식(오스카상) 수상 가능성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넷플릭스가 향후 북미 극장 배급과 현지 마케팅 등 연말부터 본격적인 ‘오스카 캠페인’에 화력을 집중할 경우 수상 경쟁에서도 힘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에서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토론토, 부산, 런던 등 다양한 글로벌 영화제에 ‘가능한 사랑’을 공개해 아카데미 시상식까지 캠페인을 전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가능한 사랑’은 가장 먼저 지난 10일 개막한 토론토 국제영화제에 초청돼 북미 관객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