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혜원에 설치된 모나 하툼의 'Web'. 연합뉴스
선혜원에 설치된 모나 하툼의 'Web'. 연합뉴스
세계 최대 미술전인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가장 큰 볼거리는 수백년 된 건축물과 현대미술의 조화다. 옛 벽화를 비롯해 고풍스러운 장식들과 창밖의 운하 풍경, 현대미술 작품이 어우러지는 그 모습은 대규모 최첨단 미술관도 흉내내지 못하는 매력을 뿜어낸다.

국내에서는 삼청동과 북촌 일대의 한옥이 그런 공간으로 꼽힌다. 서울 삼청동 선혜원이 대표적이다. 이곳은 1968년 SK그룹 창업주인 고(故) 최종건 회장이 직접 매입해 작고시까지 기거했던 사저(私邸)다. SK가 그룹 연수원으로 쓰다가, 지난해 한옥 세 채를 얹은 문화공간으로 새로 지었다.

평소 이곳은 SK그룹이 손님을 맞는 곳으로 쓰인다. 지난달 최태원 SK 회장이 빌 게이츠 테라파워 회장을 만나 만찬을 한 장소가 여기였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이곳은 가을철마다 미술 전시 공간으로 변신해 일반 관객을 맞고 있다. 지난해에는 '보따리 작가' 김수자(69)가 가장 큰 건물인 경흥각의 마루 바닥을 통째로 거울로 덮어 화제가 됐고, 개막 직후 대부분의 표가 매진되는 등 인기를 끌었다.
'Web' 전시전경. 연합뉴스
'Web' 전시전경. 연합뉴스
올해 제주 포도뮤지엄이 기획하고 SK 선혜원이 주관하는 전시 '흔들리는 것들의 안부'에서는 영국 런던에서 활동하는 팔레스타인계 작가 모나 하툼(74)과 최성임(49), 김윤수(51) 세 사람의 작품이 한옥을 채웠다. 경흥각에 들어서면 굵은 서까래 아래 유리구슬 1200개를 만날 수 있다. 하툼의 설치작 '웹(Web)'이다.

가느다란 쇠줄에 매달린 구슬이 빛을 머금어 아침 이슬이 맺힌 거미줄처럼 보인다. 거미줄은 경흥각 안을 통째로 가로지르고, 관객은 그 아래로 걸어 들어가 올려다볼 수 있다. 이번에 처음 개방한 2층에서도 작품을 내려다볼 수 있다.

하툼은 1975년 런던에 잠시 머무는 사이 고향 레바논에서 내전이 터진 탓에 귀국하지 못했다. 그 뒤로 작가는 집과 경계, 안전과 위협 등의 주제를 다뤄 왔다. 거미줄 모양의 작품에 담긴 의미도 같은 맥락이다. 거미줄은 거미에게 알을 감싸는 집이지만, 먹이에게는 덫이다. 하툼은 "이 연작은 올해 초부터 이탈리아 밀라노 프라재단에도 걸려있다"며 "그런데 장엄한 기둥과 서까래가 있는 한옥 덕분에 이곳에서 더욱 마법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최성임의 '황금이불'. 연합뉴스
최성임의 '황금이불'. 연합뉴스
로비에 펼쳐진 작품은 최성임의 '황금이불'이다. 식빵 봉지를 묶는 금색 빵끈을 볏짚 엮듯 가로세로로 하나씩 끼워 짠 6.2x4.8m 크기의 작품이다. 기계 없이 손으로만 짜느라 밤낮으로 한 달이 넘게 걸렸다. 최성임은 "아침에 눈을 뜨면 몸에 가장 먼저 닿는 풍경이자 내 몸보다 큰 세계"라며 "한옥의 대청마루처럼 안과 바깥이 만나는 자리에 이불을 놓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하 회랑에는 김윤수의 '바람의 표면' 8점이 나왔다. 유모차 방풍막으로 쓰는 얇은 파란 비닐에 사람들 발바닥 윤곽을 그려 오린 뒤 여러 겹으로 포갠 작품이다. 비닐 한 장은 거의 투명하지만, 자외선을 막으려고 넣은 옅은 잉크는 겹칠수록 짙어져 푸른 덩어리로 떠오른다. 김윤수는 "인간을 땅과 만날 수 있게 하는 발의 역할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개관 후 처음으로 공개하는 안채 격의 하린당에는 그가 골판지를 가늘게 잘라 감아 만든 조각이 놓였다.
김윤수의 '바람의 표면'. 연합뉴스
김윤수의 '바람의 표면'. 연합뉴스
김윤수가 하린당에 설치한 '바람'(투명한 사유에 관한 조각). SK·포도뮤지엄 제공
김윤수가 하린당에 설치한 '바람'(투명한 사유에 관한 조각). SK·포도뮤지엄 제공
올 가을 가장 화제가 되는 전시 중 하나다. 웬디 쉬 화이트큐브 아시아 매니징 디렉터도 "서울 아트위크 전시 중 선혜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문제는 표다. 관람료는 무료지만 예약 없이 들어갈 수 없다. 네이버 예약에서 매주 월요일 오전 10시마다 그 주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의 회차가 한꺼번에 열리는데, 매번 '광클' 경쟁 끝에 금세 동난다. 전시는 10월 31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