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전시의 영상 작품 대표작 '패시브 멕'.
이번 전시의 영상 작품 대표작 '패시브 멕'.
영국 작가 에드 앳킨스(44)는 지금 세계 미술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작가 중 하나다. 그는 컴퓨터그래픽(CG)으로 만든 영상 작업을 통해 현대인의 고독과 공허를 깊이 조명하면서 미술계 슈퍼스타로 떠올랐다. 지난해 영국 런던 테이트 브리튼이 앳킨스의 대규모 회고전을 연 게 이를 증명한다. 40대 초반의 작가가 영국의 주요 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여는 건 이례적이다.

앳킨스의 첫 한국 전시가 지금 서울 한남동 글래드스톤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앳킨스를 스타로 만들어준 CG 작품은 이번에 오지 않았지만 대신 골판지와 흑연, 필름 사진으로 만든 신작 24점이 왔다.

이번 전시작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상실감'이다. 전시장 1층에서 처음 만나는 작품은 작가의 아버지가 판지로 만든 작품이다. 아버지는 예술가를 꿈꿨지만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했다. 그러다 2009년 암을 진단받은 후 여섯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앳킨스는 "아버지가 만든 작품들은 제 예술세계의 토대와도 같다"고 설명했다.

지하 전시장에서는 아홉 살짜리 딸과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들이 나와 있다. 전시 제목인 '1 데이 인 스페이스'부터가 작가의 딸이 지어낸 놀이 이름에서 가져온 것이다. 앳킨스는 "아버지를 잃으며 느낀 감정도 상실감이었지만, 아이가 자라는 걸 보며 '이 순간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상실감을 느꼈다"며 "이런 감정들을 작품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그 중심에 30분짜리 영상 '패시브 멕(Passive Mech)'이 있다. 이 작품을 촬영하기 위해 앳킨스는 먼저 자택 마당에 골판지로 무대 세트를 지은 뒤, 어린 딸의 방 창가에 카메라를 세워 한 달 동안 1분에 사진을 한 장씩 자동으로 촬영했다. 시간의 흐름을 빨리감기로 보여주는 타임랩스와 같은 기법이다. 사진 4만3200장을 이어붙인 영상 속에서 겨울이었던 계절은 봄으로 바뀌고, 골판지로 지은 무대 세트는 비와 바람에 의해 조금씩 허물어진다. 앳킨스는 "사진 여러 장을 빠르게 이으면 영상이 된다는 영화의 원리를 활용했다"고 말했다.
영상 작품의 한 장면을 인화한 사진 작품들.
영상 작품의 한 장면을 인화한 사진 작품들.
전시장에는 이 영상에서 골라 인화한 사진들도 만날 수 있다. 제목은 전부 '2026년 5월 15일 16시 09분 55초' 같은 촬영 시각으로 지어, 사진이 영상의 어느 대목에서 뽑힌 것인지 알 수 있다.

딸이 사용하던 침대 시트에 종이를 얹고 문질러 무늬를 떠낸 작품도 있다. 동전 위에 종이를 얹고 연필로 문지르면 무늬가 떠오르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앳킨스는 "눈앞에 있는 장면을 그대로 떠낸다는 점에서 사진과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가족의 침대 시트를 떠낸 작품.
가족의 침대 시트를 떠낸 작품.
글래드스톤은 2022년 청담동에 서울 지점을 냈지만, 공간이 지나치게 협소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올해 한남동 한남빌딩 2개 층으로 옮기면서 전시 면적이 두 배가 됐다. 내부 공간은 건축가 조민석이 설계했다. 이번 전시는 글래드스톤이 한남동으로 이전한 뒤 '간판 작가'를 데려와 야심차게 연 개관전이다. 전시는 10월 31일까지 열린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