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서울 롯데콘서트홀 공연 리뷰
우승자 파가노·준우승자 김태연 한 무대에
파가노, 카잘스가 쓰던 1733년산 명기 연주
김태연, 베토벤 소나타서 강렬한 개성 드러내
서로 다른 음색 비교한 앙코르 ‘아리랑’
올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최고 평가를 받은 두 첼리스트가 나란히 한국에 왔다. 지난 5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2026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위너스 콘서트’에서 올해 이 콩쿠르 우승자인 에토레 파가노와 준우승자인 김태연이 무대에 올랐다. 지난해 이 대회에서 준우승한 와타루 히사스에가 협연했다.
지난 5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2026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위너스 콘서트'. 이주현 기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는 서유럽을 대표할 만한 음악 콩쿠르다. 벨기에 바이올리니스트 외젠 이자이의 이름을 따서 1937년 시작됐다. 첫 대회 우승자가 바이올린계의 전설로 불리는 다비트 오이스트라흐였다. 그 이듬해 피아노 콩쿠르가 추가된 뒤 1951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란 이름으로 새로 시작했다. 1998년 성악 부문, 2017년 첼로 부문이 신설된 뒤 한 부문씩 차례를 돌아가며 매년 열리고 있다.
1733년산 첼로와 무대 오른 파가노
올해 경연에서 우승한 파가노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난 23세 첼리스트다. 2022년 하차투리안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20세기 전반부를 대표하는 첼리스트로 꼽히는 파블로 카잘스가 다뤘던 1733년산 첼로와 함께 무대에 올랐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자에게 카잘스 파운데이션에서 4년 간 대여해준 명기다.
지난 5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결선에서 1위에 오른 첼리스트 에토레 파가노. ⓒ Queen Elisabeth Competition-Thomas Leonard
파가노는 카잘스의 곡 ‘새의 노래’로 시작하며 이 첼로의 옛 주인을 기렸다. 반주를 맡은 히사스에가 경쾌한 손놀림으로 새의 지저귐을 연출하면 파가노가 활의 압력을 세밀히 조절하며 현의 그윽한 질감을 또렷하게 전달했다. 5분도 안 되는 연주였지만 1733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제작된 명기의 음색을 분명하게 드러내기엔 충분했다.
전채 요리처럼 산뜻했던 파가노의 첫 연주가 끝나자 김태연이 이어 무대에 나타났다. 그는 이번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결선에 오른 12명 중 가장 어린 20세로 준우승을 차지하며 단번에 유럽 음악계의 이목을 끌었다. 선명한 분홍빛이 반짝이는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김태연은 베토벤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3번’을 연주했다.
지난 5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결선에서 2위를 차지한 첼리스트 김태연. ⓒ Queen Elisabeth Competition-Alexandre de Terwangne김태연, 강약 대비 살리며 피아노와 소리 나눠
김태연은 1악장에서부터 다부진 보잉으로 폭넓은 다이내믹(음량 조절)을 표현하는 것으로 자신의 기량을 보여줬다. 긴 호흡으로 연결감을 살린 프레이징을 계속하는 가운데 안정적인 기량을 드러냈다. 2악장에선 강약을 오가는 당김음을 살려 피아노와 쫓고 쫓기는 듯한 연출이 돋보였다.
갑작스럽게 강세를 키울 때는 피아니스트와 첼리스트 모두 거침없어서 마치 고수와 소리꾼이 소리를 주고받는 듯한 풍경이 연출됐다. 3악장 알레그로 비바체 구간에선 흡입력이 돋보였다. 날렵한 인상의 소리를 내기보다는 강세 표현에 중점을 둬 밝은 음색을 또렷이 살리려는 모습이었다. 연주자의 에너지가 느껴져 개성이 분명했다.
지난 5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2026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위너스 콘서트'. 이주현 기자
인터미션 없이 다음 곡은 다시 파가노가 맡았다. 라흐마니노프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사단조’를 연주한 그는 첼로의 그윽한 중음역을 조금씩 키워가면서 관객의 집중도를 높였다. 피아노를 압도할 정도로 음압을 키우면서 솔리스트로서의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심지가 묵직하면서도 울림이 풍성한 소리였다.
두 첼리스트 매력 공존한 무대
파가노는 2악장에선 현 가까이 귀를 기울이며 섬세하게 소리를 세공했다면 3악장에선 또렷하지만 둥근 울림으로 서정적인 주선율을 이끌었다. 이 곡과 똑같이 1901년에 작곡된 라흐마니노프의 인기곡인 피아노 협주곡 2번에서 들을 수 있는, 유려하면서도 굴곡진 선율이 두드러진 순간이었다. 4악장에서 반복되는 멜로디를 조금씩 다르게 표현하면서도 피아노 선율을 살려야 할 때 슬며시 소리를 죽이는 유연함도 인상적이었다.
지난 5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2026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위너스 콘서트'. 이주현 기자
마지막 코다에선 소소한 해프닝이 있었다. 파가노가 연주에 몰입한 나머지 마지막 보잉에서 활대로 악기 몸통을 쳐버려 ‘탁’하는 소리가 났다. 연주가 끝나자마자 악기가 상하지 않았을까 나뭇결을 살펴보는 파가노의 모습에 관객들은 미소를 띠었다. 마지막 공연 곡은 파가노와 노란 드레스로 갈아입은 김태연이 함께한 파가니니의 ‘이집트 모세’ 주제에 의한 변주곡. 첼로의 A현을 집중적으로 파고들며 고음역을 재빠르게 오가는 첼리스트의 손놀림은 이날 많은 관객들이 새롭게 발견했을 첼로의 또 다른 매력이었다.
앙코르는 히사스에를 포함해 세 명이 함께 선율을 주고받았던 ‘아리랑’이었다. 파가노가 “이제 저희는 아리랑을 하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시작된 연주였다. 아리랑 멜로디가 반복되며 일종의 기준이 된 덕분에 두 첼리스트가 순간순간 빚어내는 섬세한 소리들을 비교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 이어졌다. 파가노와 김태연은 오는 15일 노원문화예술회관에서도 리사이틀을 연다. 파가노는 단독으로 12일 서울 거암아트홀에서도 공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