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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차' 특유의 권위를 비우다… 볼보가 다시 쓴 플래그십車 공식 [조두현의 테이스티드라이브]
시선 압도하는 화려함 대신 평온함 선택
‘콰이어트 럭셔리’ 구현한 움직이는 북유럽 라운지
3점식 안전벨트에 첨단 라이다(LiDAR)까지
‘콰이어트 럭셔리’ 구현한 움직이는 북유럽 라운지
3점식 안전벨트에 첨단 라이다(LiDAR)까지
하지만, 이 엄격한 환경 속에서도 스웨덴 사람들의 삶은 묘하게 평온했다. 그 중심에는 과소비를 지양하고 딱 필요한 만큼의 삶을 추구하는 ‘라곰(Lagom)’이라는 시대정신이 자리하고 있었다. 화려한 명품 가방 대신 튼튼한 왜건에 유모차를 싣고 주말 숲으로 떠나는 삶. 거리의 이케아 매장에서 볼 수 있는, 과하지 않지만 세련된 거실 인테리어. 스웨덴 사람들에게 럭셔리란 남에게 과시하는 겉치장이 아니라, 거친 대자연으로부터 내 가족을 안전하게 지켜내고 일상에서 가장 편안한 휴식을 누리는 ‘안식처’ 그 자체였다.
'사장님 차'의 견고한 문법을 부수다
최근 한국 프리미엄 수입차 시장을 흔들고 있는 볼보자동차의 파격적인 행보는 바로 이러한 스웨덴식 실용주의와 안전 철학에서 기인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1억 원을 호가하는 대형 플래그십 세단 시장의 문법은 명확했다. 보닛 아래 자리 잡은 육중한 8기통 엔진, 실내를 휘감은 번쩍이는 크롬과 광활한 가죽 그리고 타인의 시선을 압도하는 권위적인 하차감.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와 BMW 7시리즈가 수십 년간 굳건히 쌓아 올린 이 철옹성은 결코 무너지지 않을 럭셔리의 절대 공식처럼 보였다.
가장 눈에 띄는 파격은 가격표다. 1회 충전으로 최장 706㎞(WLTP 기준)를 너끈히 달리는 이 거대한 플래그십 세단의 시작 가격은 7,294만 원이다. 대형 SUV인 EX90 역시 1억 원 초반대에 안착했다. 테슬라가 촉발한 전기차 가격 전쟁 속에서, 독일 3사가 독점하던 ‘1억 원 이상 하이엔드 시장’의 진입 장벽을 허문 것이다. 실내의 철학 역시 궤를 달리한다. 경쟁자들이 앞다투어 실내 전체를 거대한 디스플레이로 덮고 네온사인 같은 앰비언트 라이트로 미래적인 느낌을 과시할 때, 볼보는 오히려 화려함을 덜어내는 ‘비움(Minimalism)’을 택했다.
화려한 천연 나파 가죽 대신 재활용 소재를 활용한 테일러드 울 혼방 직물을 두르고, 스웨덴 남부 스몰란드(Småland)의 숲에서 영감을 얻은 오레포스 크리스털 기어 노브로 포인트를 줬다. 시각적 인지 과부하를 줄이기 위해 UI는 극도로 단순화됐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권위적인 공간이 아니라, 도심의 소음과 피로로부터 탑승자를 완벽히 분리해 내는, ‘움직이는 북유럽 라운지’가 현대 부호들의 새로운 지향점이 된 셈이다. 최근 패션계에서 로고를 감추고 소재의 본질에 집중하는 ‘콰이어트 럭셔리(Quiet Luxury)’가 대세가 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마력의 자리를 대체한 컴퓨팅 파워
물론 콧대 높은 하이엔드 생태계에서 이러한 볼보의 이단아적 행보를 향한 의구심도 적지 않다. 7천만 원대의 가격표는 대중성을 얻을 순 있지만, 럭셔리의 본질인 초월적 희소성을 스스로 훼손했다는 비판도 있다. 직물 소재와 미니멀리즘 인테리어 역시 보수적인 소비자들에겐 스웨디시 감성으로 예쁘게 포장한 원가절감이라는 뼈아픈 지적을 받기도 한다. 모기업인 중국 지리자동차의 플랫폼을 공유한다는 태생적 꼬리표도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다.
1959년의 3점식 안전벨트, 2026년의 라이다(LiD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