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겸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 부장이 29일 서울남부지검에서 경제신문기자 등의 선행매매 사건 중간수사 결과 발표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김태겸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 부장이 29일 서울남부지검에서 경제신문기자 등의 선행매매 사건 중간수사 결과 발표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증권사 HTS(홈트레이딩시스템)와 포털사이트에 노출되는 '특징주 기사'를 주가 부양 수단으로 악용해 93억원대 부당이득을 챙긴 회계사와 전·현직 경제신문 기자들이 무더기로 재판에 넘겨졌다. 기사 배포 직전 텔레그램으로 종목을 공유하고 주식을 미리 사들인 뒤, 기사가 나가 주가가 오르면 곧바로 되파는 수법이다.

'제목 장사'로 투자자 오인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부장검사 김태겸)는 29일 회계사 출신 유사투자자문업체 대표 A와 경제신문 기자 6명, 일반투자자 1명 등 7명을 자본시장법 위반(사기적 부정거래), 배임수·증재,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고 밝혔다. 별도로 특징주 기사를 이용해 선행매매를 반복한 현직 기자 H에게는 자본시장법 위반과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검찰에 따르면 일당은 특징주 기사가 HTS·MTS와 포털사이트를 통해 투자자들에게 즉시 노출돼 매수세를 유발한다는 점을 노렸다. 투자자들이 제목만 보고 투자를 결정한다는 점을 악용해 투자자들을 오인시킬만한 자극적인 기사 제목을 올리기도 했다. 일례로 HTS에 노출되는 기사 제목은 "OO바이오 탈모 극복 기대"이지만, 막상 기사 내용을 보면 줄기세포로 모낭을 만든 주체는 해당 업체와 관련 없는 일본의 한 연구팀인 식이다.

이들은 기사가 배포되기 전 미리 해당 종목을 사들인 뒤, 기사 노출 직후 주가가 오르면 매도하는 전형적인 '선행매매' 방식으로 거액의 시세차익을 챙겼다.
선행매매 범행 조직도/서울남부지검 제공
선행매매 범행 조직도/서울남부지검 제공
주범인 A는 2020년 10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약 4년 8개월 동안 거래량이 적거나 변동성이 큰 중·소형주를 골라 특징주 기사 초안을 만들고 이를 기자들에게 전달했다. 기자들은 자기 기사 송출 권한으로 이를 배포했고, 일당은 모두 1800여건의 특징주 기사를 이용해 약 85억5000만원의 부당이득을 취득한 것으로 조사됐다. A는 기사 1건당 30만원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기자들을 섭외했으며 범행에는 기자 5명이 조직적으로 가담했다.

범행은 메신저를 통해 더욱 은밀하게 이뤄졌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ㄹㄷ'를 보내 기사 송출 시점을 맞췄다. 대화 내용이 남지 않도록 메시지가 하루 뒤 자동 삭제되는 기능도 사용했다.
일당이 주식 매수 시점을 공모한 텔레그램 대화 내역/사진=서울남부지검 제공.
일당이 주식 매수 시점을 공모한 텔레그램 대화 내역/사진=서울남부지검 제공.

7억원 규모 단독 범행도


검찰 보완수사 과정에서 기자들에게 거액의 '기사값'이 오간 사실도 새롭게 밝혀졌다. 검찰은 A와 기자 B가 기자 E에게 약 1억5000만원을, A가 기자 D에게 약 1억1600만원, 기자 F에게 약 2800만원을 각각 지급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에 배임수·증재 및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를 추가 적용하고 기자 B와 E를 추가로 구속기소했다. 현금은 체크카드를 건네 ATM에서 인출하게 하거나 헬스장 사물함에 넣어두는 방식으로 전달된 것으로 조사됐다.
범행에 가담한 기자가 기사 작성에 대한 대가를 교부받는 모습./사진=서울남부지검 제공
범행에 가담한 기자가 기사 작성에 대한 대가를 교부받는 모습./사진=서울남부지검 제공
현직 기자 H는 조직 범행과 별도로 자신이 가진 기사 송출 권한을 악용했다. 2022년 10월부터 2024년 7월까지 특징주 기사 340건을 직접 작성·송출하며 선행매매를 반복해 약 7억4000만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는다. 기사 한 건을 이용한 선행매매로 평균 약 200만원, 많게는 3823만원의 시세차익을 올린 것으로 조사됐다. 금융당국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지인 명의 차명 증권계좌를 사용한 사실도 드러나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가 추가됐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이번 수사에서는 2200건의 기사와 100기가바이트 상당의 1일 체결 데이터에 대한 AI 분석 프로그램이 이용됐다. 이성진 금융감독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국 수사3팀 팀장은 "범행을 통해 614만개가 넘는 계좌에서 거래가 발생해 자본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며 "자본시장 교란 수법이 진화하는 가운데 확대된 수사 역량으로 앞으로도 적극대응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사건 송치 이후 사건 관계자 전원을 다시 조사하고 압수한 텔레그램 대화와 계좌를 분석해 범행 내용을 파악했다고 밝혔다. 서울남부지검 범죄수익환수부를 통해 피고인 재산에 대한 추징보전도 진행했다. 특히 A와 기자 C는 압수수색을 받은 뒤 부동산을 처분해 추징을 피하려 한 것으로 조사됐고, 기자 C는 배우자 명의로 새 부동산을 취득한 사실이 확인돼 추가 동결 조치가 이뤄졌다.

김태겸 부장검사는 "금융감독원과 수사 초기부터 핫라인을 구축해 실질적으로 협력한 결과 조직적 선행매매와 기사 배포 대가 수수, 범죄수익 은닉까지 밝혀낼 수 있었다"며 "주식시장을 교란하는 금융·증권범죄에 대해 범죄수익을 끝까지 추적·환수해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김유진 기자 magiclam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