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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프리즘] 파주 LCD 공장이 남긴 교훈
선제적·파격적 규제 완화
반도체 속도전에 참고해야
장창민 산업부장
반도체 속도전에 참고해야
장창민 산업부장
LG필립스LCD(현 LG디스플레이)는 2003년 초 경기 파주 일대 165만㎡ 부지에 약 15조원을 투자해 세계 최대 LCD단지를 짓기로 했다. 하지만 시작부터 벽에 부딪혔다. 경기 북부 지역은 수도권 공장 총량 규제에 따라 대기업 생산설비 신·증축이 제한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휴전선과 가까운 군사지역이어서 셀 수 없는 중첩 규제에 짓눌린 상태였다.
꼬인 실타래를 푼 건 정부였다. 그해 2월 취임한 노 전 대통령은 첫 국무회의에서 ‘파격적 규제 완화’를 주문했다. 정부는 곧바로 지방자치단체, 한국전력, 한국수자원공사 등과 합동 전담반을 꾸렸다. 수도권에 새 공장을 지을 수 있도록 한시적으로 시행령까지 바꿨다. ‘기업 특혜 논란’을 정면 돌파하고 나선 것이다. 지자체는 군과 수십 차례 협의한 끝에 군사시설 이전에 합의했다.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전력, 도로 등 인프라 건설을 지원한 덕분에 통상 4~5년 넘게 걸리는 산업단지 조성을 2년여 만에 마무리했다. 2006년 4월 공장 준공식 때 노 전 대통령은 이런 소회를 남겼다. “잘한 결정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파주LCD단지는 당시 중국의 파상 공세 속에서 K디스플레이의 위상(출하량 기준 세계 1위)을 지켜냈다. 지금은 비록 LCD 시장을 중국에 내줬지만,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디스플레이 생산라인으로 탈바꿈해 세계 시장을 호령하고 있다.
파주LCD단지가 남긴 교훈은 선명하다. 정부가 정치적 리스크를 감수하면서도 선제적으로 규제 예외를 인정해준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전남광주 군공항 부지에 초대형 팹 4기를 짓는다. 이 과정에서 전력과 용수 등 핵심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과감한 지원이 필요하다. 군공항 이전과 토지 정화 작업도 마찬가지다. 얼마나 빨리, 어느 범위까지 기존 규제의 틀을 깨느냐가 속도전의 성패를 가른다.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원스톱 패스트트랙’ 전략도 중요하다. 파주LCD단지 건설 당시 정부와 지자체는 분묘이전대책반까지 꾸렸다. 6개월간 밤낮으로 주민을 설득한 끝에 수백 기의 묘지 이장을 마쳤다. 호남 반도체 공장도 맨땅에 전력망과 송배전 선로를 신설해야 하기 때문에 주민과 지난한 협상을 하고 보상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시간을 줄일 획기적 비책(秘策)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정부는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의 중장기 비전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지역 균형의 상징’으로 여기면 곤란하다. 글로벌 인공지능(AI) 패권 전쟁에서 살아남을 ‘특공대’로 키워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대규모 고급 인력을 붙잡는 데 공을 들여야 한다. 주거, 교통, 교육 등 정주 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중장기적이고 파격적인 세제 혜택 등 지원 방안이 필요하다. 과거 노무현식 실용주의가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을 일궈냈듯, 이재명식 실용주의가 반도체와 AI 산업을 지켜내길 기대한다. 기업과 기업인은 준비가 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