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韓·日 정상 지지율이 부른 변수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이재명 대통령의 고향인 경북 안동을 찾은 지난 5월, 일본 방송에선 이 소식을 곰 출몰 뉴스 다음에 배치했다. 한국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두 정상이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기억에서 희미해지고, 다카이치 총리가 안경을 들고 장난치는 모습만 국민들의 기억에 남았다.

요즘 양국 기자들 사이에서는 “한·일 관계가 너무 좋아서 기삿거리가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심심찮게 나온다. 과거에는 강제징용과 수출 규제, 독도, 역사교과서 문제 등을 둘러싸고 갖가지 이슈와 관련 기사가 꼬리를 물었다. 지금은 정상 간 소통이 원활하고 양국 정부가 갈등을 적극적으로 관리하면서 돌발 악재도 확산하기 전에 수습되는 사례가 많다.

반일·반한 카드 다시 나올까

이처럼 한·일 관계가 순풍을 타는 가운데 외교가에서는 최근 다른 목소리도 들리기 시작했다. 이 대통령과 다카이치 총리의 지지율이 나란히 하락하면서 양국 관계가 다시 국내 정치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두 정상이 지지층 결집을 위해 반일·반한 정서를 자극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양국 정상의 정치 기반은 한두 달 새 빠르게 약화됐다. 다카이치 내각 지지율은 최근 마이니치신문 조사에서 한 달 만에 10%포인트 떨어진 41%를 기록했다. 왕실전범 개정이 직접적인 트리거가 됐지만, 이면에는 엔저와 물가 상승에 대한 불만이 깔려 있다. 이 대통령 역시 경제·민생을 둘러싼 평가가 악화하면서 취임 초의 높은 지지율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경제와 민생 문제는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렵지만, 역사와 영토 문제에서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핵심 지지층에 선명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거나 독도 문제에서 강경 발언을 내놓으면 한국 정부도 국내 여론 때문에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총리 시절이 그랬다. 한쪽의 강경 대응이 상대방의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기묘한 공생관계가 형성됐다. 이 같은 갈등을 의도적으로 설계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이웃 국가와의 외교적 갈등이 국내 정치의 자산으로 소비된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협력과 역사 문제 분리 관건

방한 당시 보여준 친근한 모습에 가려져 있지만, 다카이치 총리는 야스쿠니 참배를 소신으로 삼아온 강경 보수 정치인이다. 이 대통령 역시 과거사 문제에서 쉽게 원칙을 양보하기 어려운 정치적 기반을 갖고 있다.

물론 지금의 한·일 관계에는 안전장치가 마련돼 있다. 중국의 군사적 부상, 미국 외교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한·일 협력의 전략적 가치가 이전보다 훨씬 높아졌기 때문이다. 반도체 공급망과 에너지 안보와 관련해서도 협력하지 않을 때 감수해야 할 비용이 커졌다.

한·일 관계의 지속 가능성은 정상들의 개인적 친분이 아니라 갈등을 얼마나 제도적으로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지지율이 높을 때 웃으며 드럼을 치고 상대 정상의 고향을 방문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어려운 것은 지지율이 떨어지고 정치적 압박이 커졌을 때에도 갈등 관리 프로세스가 효과적으로 작동하는지다. 이제 막 복원된 셔틀외교의 진짜 시험대는 두 정상의 인기가 하향 곡선을 타기 시작한 지금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