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착한 가게'라는 뻔한 눈가림
‘제가 이렇게 가격을 올렸어요.’

워싱턴 특파원으로 부임한 2024년 7월, 상당수 주유소의 주유구에는 해맑게 웃으며 숫자를 가리키는 조 바이든 당시 미국 대통령의 얼굴과 함께 이 문구를 담은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바이든 재임 기간 급등한 기름값을 비꼬는 것이었다. 스티커에는 코로나19와 그에 따른 공급망 교란이 물가에 미친 영향 등에 관한 긴 설명을 모두 무력화하는 정치적 효과가 있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치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 스티커의 얼굴이 자신으로 바뀔까 우려하고 있다. 미국 민주당은 그런 스티커를 떠올리지도 못할 정도로 지리멸렬하지만, 트럼프 정부와 지지자들은 벌써 그 대응책을 마련해 둔 모양이다. 이른바 ‘프리덤 퓨얼(freedom fuel·자유의 기름)’이다.

시세보다 싼 '프리덤퓨얼'

지난달 말 델라웨어에 설립된 법인 ‘프리덤 퓨얼 네트워크’가 운영하는 펜실베이니아와 뉴저지 주유소 25곳은 갤런당 3.47달러(약 5190원)에 기름을 공급한다고 홍보해 사람들이 줄을 서게 만들었다. ‘3.47’의 ‘47’은 47대 대통령인 트럼프 대통령을 뜻한다. 다른 곳에서 파는 것보다 평균 50센트 싸다. 영업을 시작하기 직전 트럼프 대통령이 트루스소셜에 “이 소매업체가 앞장서고 있으며 다른 업체들도 따라야 한다”고 글을 올려 홍보를 거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이 “미국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애국심은 중요하지만, 25곳의 주유소가 어떻게 원가보다 낮은 가격에 기름을 팔고 있는지는 미스터리다. 트럼프 정부는 자신들이 관여하지 않는다고 언론에 밝혔다. 해당 업체는 홈페이지에서 “민간이 소유한 자랑스러운 애국기업”으로 “주유소 기름 가격을 낮추라는 트럼프 대통령 촉구에 응답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격은 시장 상황에 따라 변동한다. 하지만 주유소 기름값을 비교하는 사이트 가스버디의 애널리스트인 패트릭 드 한은 이들이 추구하는 가격 수준에서는 수익을 내지 못할 것이라고 타임지에 말했다. ABC뉴스는 참여 주유소들이 매달 25만달러 이상 손실을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선착순으로 혜택 나눠주는 정치

프리덤 퓨얼 측은 주유소별 판매량이 평균 50% 넘게 늘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박리다매도 이익이 나야 하는 것이다. 이 애국심의 비용을 누군가 대신 치러주고 있을 것이라는 추정이 쏟아지는 배경이다.

프리덤 퓨얼은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착한 가게’다.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이 도입을 약속한 공공 식료품 가게도 유사한 접근법이다. 선착순으로 소수에게 혜택을 나눠주는 방식이다. 기왕 혜택을 줄 거라면 소득이 낮은 이들에게 우선권이 돌아가게 하면 좋을 텐데, 그렇게 하면 평범한 복지정책이 되고 인기도 없다. 트럼프 정부도 저소득자에게 유가 바우처를 지급해 기름값 부담을 덜어줄 수 있었겠지만 그런 소식은 없다.

누군가의 보조금이 개입하는 착한 가게를 만들어 물가 문제를 해결한 듯 보이게 하는 것은 정치인들의 뻔한 수법이다. 전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우니 문제를 해결한 척 하는데 머무는 위선이다. 물론 표 계산에는 확실히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