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과 한국경제신문이 공동 기획한 오페라 ‘투란도트’가 지난 22일부터 26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칼라프 역을 맡은 테너 백석종(오른쪽)과 류 역을 맡은 소프라노 황수미가 열연하고 있다.  예술의전당 제공
예술의전당과 한국경제신문이 공동 기획한 오페라 ‘투란도트’가 지난 22일부터 26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칼라프 역을 맡은 테너 백석종(오른쪽)과 류 역을 맡은 소프라노 황수미가 열연하고 있다. 예술의전당 제공
푸치니 최후의 오페라 ‘투란도트’를 무대에 올리는 제작진은, 아니, 오페라를 무대에 올리고자 하는 사람은 그것이 어떤 작품이든 세 가지 질문에 맞닥뜨리게 된다.

첫째, 어떤 성악가를 각 배역에 맞춰 섭외하고 그들의 역량을 극대화해 보여줄 것인가? 둘째, 지휘자는 어떻게 전곡의 드라마를 음악적으로 완성도 높게 설계하며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이를 뒷받침하도록 할 것인가? 셋째, 연출과 무대, 의상은 이 음악에 부합하는 극을 어떻게 무대 위에 펼쳐내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 수수께끼는 세 개, 작품의 삶은 하나다.

예술의전당이 22~26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올해 초연 100주년을 맞은 ‘투란도트’를 올렸다. 22일 첫날과 마지막 날인 26일 무대에 칼라프 역 테너 백석종과 투란도트 역 소프라노 에바 프원카, 류 역 소프라노 황수미가 올랐다. 최근 칼라프 역으로 유럽 무대를 장악한 백석종은 자신의 이름이 이 시대 오페라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십분 입증했다.

그동안 우리가 만난 칼라프는 대체로 그랬다. 목소리가 영웅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반주부가 자신에게 무작정 맞춰주도록 요구하거나, 작곡가가 설계한 강약과 호흡선을 마음대로 바꿔버리거나. 백석종은 달랐다. 바리톤에서 테너로 전향한 그는 아래 음역에서부터 최고음에 이르기까지 강건하면서도 따뜻한 음색을 유지했고 영웅으로서의 도전부터 류에게 보내는 측은함의 표현까지 강약과 완급에 성실히 신경 썼다.

아리아 ‘잠들지 말라’의 높은 B음을 힘차게 뽑아낸 데 이어, 2막 ‘그대가 사랑에 불타기를 바랄 뿐이요’에서는 ‘대안(oppure)악보’로 제시된 하이C(높은 도)음까지 길고 시원하게 뻗어나갔다. 대안 악보는 어디까지나 선택 사항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테너는 곧이어 ‘잠들지 말라’를 부를 것을 고려해 성대의 부담을 주지 않으려 피하기 마련이다.

에바 프원카는 메조에서 전향한 ‘영웅적’ 소프라노라는 점에서 백석종과 공통점이 있다. 잘 벼른 칼날이 서 있는 듯한 그의 음성은 투란도트에 적역이었다. 황수미가 소화한 류도 그의 음성에 그려 맞춘 듯했다. 가녀린 호소 속에서도 무대 위에 번져가는 볼륨의 투과력이 일품이었다. 이렇게 강인함까지 갖춘 측은함이라면, 축출된 왕의 수만 리 넘는 방랑에 홀로 함께한 심지 굳은 여성에게 어울릴 것이다. 티무르 역 베이스 심인성 등도 자기 몫을 충분히 했다.

국립심포니와 함께한 지휘자 로베르토 아바도는 푸치니를 외면한 삼촌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달리 푸치니를 커리어의 주요 원천 중 하나로 삼았다. 그는 약간 당긴 템포로 세부의 음색 조합에 돋보기를 들이대며 색채감 있는 해석을 드러냈다. 칼라프 왕자의 1막 징 울리기 직전 중창과 합창 장면 등 곳곳에서 그의 설계는 빛을 발했다. 아쉬움이라면 첫날 공연에서 금관과 합창이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고, 금관과 남성 합창이 함께하는 부분에서는 거의 여지가 없었다는 점이다.

연출가 정선영은 1막에서 황궁의 높은 성벽 아래 극이 전개되도록 했고 2, 3막은 큰 선박을 연상시키는 무대장치를 선보였다. 이 장치들이 무대 공간의 큰 부분을 점유해 순간마다 돌변하는 군중들의 유기적인 움직임이 잘 부각되지 않았다. 2막과 3막에서 투란도트 공주가 자리한 공간은 높지도 낮지도 않은 어정쩡한 공간에 위치했고 움직임도 거의 없었다. 왕자가 모든 수수께끼를 맞춰 황제에게 문제 풀이의 무효화를 호소하는 순간에는 무대 중앙으로 나오는 것이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1막에서 칼라프 왕자는 투란도트의 아름다운 자태에 반해 도전에 나서는데, 이 장면에서 투란도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2막부터 모습을 드러낸 투란도트는 원작의 대사가 전하는 ‘베일’을 쓴 모습이 아니라 전사(戰士)에 가까운 모습으로 나왔다. 원작에서의 투란도트는 보복에 집착하는 공주지만 스스로 여성성을 박탈한 인물은 아니다.

제작진은 세 개의 질문지를 통과했을까? 오페라 무대의 역사는 ‘투란도트’의 내용처럼 하나의 승리로 완성되는 도전이 아니다. 전설적인 프랑코 제피렐리 버전의 ‘투란도트’만 해도 필요 이상 오래 살고 있다고 생각된다. 공연에서 승리하는 것보다 중요한 점은, 이 무대를 또 한 번 보고 싶어졌다는 사실일 것이다.

유윤종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