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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브랜드 불러들이고 지분까지 투자…'K패션 킹메이커'
그들은 어떻게 백화점 넘었나
◇5200억원의 무이자 실험
24일 무신사에 따르면 2015년 이후 회사 파트너 펀드를 통해 집행한 브랜드 누적 자금 지원액은 5200억원을 넘어섰다. 지원한 브랜드만 1260곳. 이 생산 자금은 브랜드 성장의 생명줄이었다. 무신사 관계자는 “몇몇 인기 브랜드에만 기댈 게 아니라 허리 역할을 하는 중소 브랜드를 키워야 회사도 같이 산다는 확신이 있었다”고 설명했다.무신사는 2001년 운동화 전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시작했다. e커머스 플랫폼인 무신사 스토어를 연 시기는 창업한 지 한참 뒤인 2009년이다. 브랜드 입점 방식으로 시스템을 확 바꾼 2012년이 성장사의 변곡점이 됐다. 개성 넘치는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가 물밀듯 들어왔다. 당시 한국에서는 소규모 패션 브랜드가 설 자리가 거의 없었다. 디자이너가 직접 브랜드를 만드는 것보다 패션 대기업에 임원으로 합류하는 것이 성공의 척도인 시절이다.
무신사는 브랜드 화보를 찍어주고 사무실을 제공했다. 브랜드가 한곳에 모이자 이용자도 저절로 따라붙었다. 커버낫, 쿠어, 디스이즈네버댓 등 수많은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가 무신사 생태계에서 몸집을 키웠다. 한 인디 패션 브랜드 대표는 “입점 초기에 매출이 잘 나지 않더라도 무신사 입점 자체가 시장에 데뷔했다는 시그널로 여겨진다”고 했다.
무신사는 이후 유망 브랜드에 지분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2018년 설립한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무신사 파트너스는 80여 개 브랜드에 1000억원을 투자했다. 브랜드가 성공하면 무신사도 같이 돈을 버는 구조다. 2021년 피스피스스튜디오에 10억원을 투자한 뒤 2년 만에 95억원을 회수한 게 대표적이다. 한 벤처캐피털(VC) 심사역은 “2018년 당시 패션은 일부 엔젤 투자를 제외하고는 벤처투자의 불모지였다. 개별 브랜드를 발굴해 초기부터 전문적으로 투자한 곳은 무신사 파트너스가 거의 유일했다”고 했다.
◇“브랜드 살아야 플랫폼도 산다”
2024년 12월, 무신사에 뼈아픈 고지서가 날아들었다. 입점 브랜드 라퍼지스토어의 패딩 충전재 표기(솜털 80%)가 잘못돼 실제 솜털 비중이 3%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커머스 플랫폼의 근간인 신뢰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는 위기였다. 무신사는 사과문 한 장으로 사태를 덮지 않았다. 업계 처음으로 ‘전수조사’라는 정면 돌파를 택했다. 약 100일에 걸쳐 덕다운과 캐시미어가 들어간 7968개 상품 전체의 혼용률을 검증했다. 플랫폼이 입점 상품의 품질까지 책임지겠다는 선언이었다. 물류 경쟁력이 압도적인 쿠팡과 막강한 트래픽을 앞세운 네이버쇼핑보다 무신사의 팬덤이 탄탄하다고 평가받는 이유다.백화점 입점 심사에 목매던 중소 디자이너 브랜드가 최근엔 백화점에서 러브콜을 먼저 받는다. 무신사에서 검증된 브랜드가 2030세대를 오프라인으로 모으는 핵심 콘텐츠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유통 권력의 지형을 뒤집은 K패션의 킹메이커’라는 평가를 받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무신사의 진짜 경쟁력은 단순히 옷을 잘 파는 것이 아니라 K패션 브랜드를 키우는 생태계 자체를 구축했다는 데 있다”고 분석했다.
고은이/강윤지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