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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 돌벽에 수놓인 한글…아비뇽의 낯선 주인공이 되다
세계 최대 공연예술 축제 80주년
기립박수 터진 이자람 판소리 '눈, 눈, 눈'
김치전 등장한 구자하 연극 '하리보 김치'
한국문학도서전, 이우환 특별전까지…
아비뇽 거리 곳곳 한국 예술로 뒤덮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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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뇽 거리 곳곳 한국 예술로 뒤덮여
축제가 80주년을 맞은 올해, 이 오래된 도시의 풍경에는 작은 변화 하나가 더해졌다. 교황청 돌벽 사이로 낯선 한글이 걸렸고, 생루이 회랑에서는 한국어가 관객을 맞았다. 사상 처음 한국어를 공식 초청 언어로 선택해 프로그램 47편 가운데 9편이 한국 작품으로 채워졌다. 한국경제신문은 프랑스 관광청의 후원으로 아비뇽을 찾았다.
폭염도 관객의 발길을 돌려세우지 못했다. 낮 최고기온이 40도에 육박했지만 냉방시설이 없는 학교 체육관과 교황청 야외무대, 오페라 극장에서도 관객들은 부채와 팸플릿으로 연신 바람을 일으키며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공연이 끝날 때마다 객석에서는 박수와 함께 “브라보” “마니피크”라는 환호가 터져 나왔다.
소리꾼 이자람은 가장 화제가 된 예술가 중 한 명이었다. ‘눈, 눈, 눈’ 공연 도중 이자람이 “부채를 펴서 흔들면 눈보라 소리를 내달라”고 청하자 관객들은 일제히 입으로 “쉬~” 소리를 내며 무대 위 눈보라를 함께 완성했다. 공연이 끝난 뒤에는 긴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독일에서 온 관객은 “한 명의 예술가가 쏟아내는 에너지와 고수의 호흡이 이토록 완벽할 줄 몰랐다”고 했고, 프랑스 관객은 “자막을 보지 않아도 표정과 음색, 부채의 움직임만으로 인물의 감정이 전달됐다”고 말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도 특집판 1면에 이자람의 무대 사진을 싣고 판소리와 톨스토이의 고전을 결합한 그의 작업을 집중 조명했다.
아시아인 최초로 국제 입센상을 받은 구자하도 한국 공연예술을 대표하는 창작자로 주목받았다. ‘쿠쿠’와 ‘한국 연극의 역사’ ‘하리보 김치’는 연이어 매진됐다. ‘하리보 김치’가 끝난 뒤 관객들이 무대 위 포장마차로 몰려가 김치전과 오이 미역냉국, 소맥(소주+맥주)을 맛보는 모습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축제 풍경이 됐다.
공연장 밖에서도 한국 문화는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한국문학도서전에는 한강을 비롯해 조남주, 박경리, 이문열, 천명관 등의 번역서가 진열됐다. 한강 책은 준비된 물량이 소진돼 추가 주문에 들어갈 정도로 현지 독자에게 호응을 얻었다. 교황청에서는 이우환의 전시가 이어졌고, 인근 아를에서는 박찬욱 감독의 첫 유럽 사진전이 관람객을 맞았다. 공연과 문학, 미술과 영화가 서로 맞물리며 한국 문화는 축제의 일부를 넘어 도시 곳곳에서 마주치는 일상 풍경이 됐다.
밤 11시가 넘어도 아비뇽은 쉽게 잠들지 않았다. 골목에서는 배우들이 다음 공연을 알렸고, 노천카페마다 방금 본 작품을 두고 대화가 이어졌다. 축제의 휴식 공간인 ‘마하바라타 바’에는 닭강정과 만두, 잡채 등 한국 음식이 차려져 밤늦도록 관객들로 붐볐다. 사람들은 맥주잔을 기울이고 한낮의 열기를 식히며 축제의 밤을 즐겼다.
아비뇽=설지연/허세민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