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억눌린 감정이나 마음속에 쌓인 응어리가 있을 거잖아요. 음악을 통해 분출하며 함께 치료할 수 있는 테라피를 추구합니다. 음악으로 제 인생이 치료됐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이끌고 그 테라피 속으로 함께, 깊숙이 들어가는 게 우리 무대의 의미예요.
오스트리아 빈에서 만난 힙노시스테라피의 제이플로우와 짱유. /백승균 작가
여름은 야외 음악 페스티벌의 계절이다. 수만, 수십만 명이 모여 벌판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광경은 그 자체로 예술적 유토피아를 상상하게 한다. 지구상 수많은 페스티벌 중 가장 큰 축제는 뭘까. 히피 문화의 정점과 종언을 상징하던 1969년 미국 우드스톡 페스티벌? 캘리포니아주 사막지대를 매년 음악의 신기루로 만드는 코첼라 페스티벌? 피라미드 무대의 위용과 뻘밭의 악명을 품은 영국의 글래스턴베리? 모두 오답이다. 뜻밖에 그 답은 중부 유럽의 소국 오스트리아에 있다.
매년 연인원 약 300만 명이 찾는 오스트리아 빈의 야외 음악 페스티벌 ‘도나우인젤페스트’ 얘기다. 기네스위원회가 인증했다. 무료 행사이긴 하지만 7월 초, 21㎞ 길이의 뱀처럼 긴 인공 중도(中島)인 도나우섬에 14개의 무대가 설치되면 유럽 전역의 남녀노소가 이곳에 모인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묘사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는 3일간 왈츠가 아니라 팝과 록, 랩과 일렉트로니카로 폭발하고 명멸한다.
한국 팝음악의 커버 댄스 경연 대회 ‘K팝 월드페스티벌-챔피언 쇼다운’. /주오스트리아한국문화원 제공
올해 14개 무대 중 섬 중앙에 설치된 무대는 한국 음악이 ‘접수’했다. 오후 5시, 관객 참여형 공연인 ‘K팝 랜덤 플레이 댄스’로 막을 올린 한류 페스티벌 ‘인스파이어 미 코리아(Inspire Me Korea) 2026’이 이틀간 이어졌다. 한국에서 날아간 듀오 힙노시스테라피, 싱어송라이터 윤마치, 밴드 지소쿠리클럽, DJ 겸 프로듀서 키라라가 이틀간 무대를 달궜다.
유럽을 최면 치료하는 ‘도파민 폭주’ 듀오
지난 3일 저녁 도나우섬의 피날레를 뜨겁게 장식한 이들은 ‘도파민 듀오’로 불리는 힙노시스테라피다. 2022년 결성된 전자음악 듀오 힙노시스테라피(짱유·제이플로우)는 세기말을 달군 그룹 프로디지, 케미컬 브라더스를 연상시키는 격렬한 빅 비트, 드럼과 베이스 사운드에 주문처럼 반복되는 한국어 속사포 랩을 결합한다. 이 음악은 결코 흘려들을 수 없다. 무대 앞에서 반드시 ‘겪어 봐야’ 끝장이 난다.
도나우섬 페스티벌의 공연 관객들. /백승균 작가
이날 공연장에선 순식간에 믿을 수 없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작은 무대 앞이 인산인해를 이루더니 곧 낯선 한국어 구호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한 번 더! 한 번 더! 한 번 더!”
“부셔! 부셔! 부셔! 부셔! 부셔! 부셔! 부셔! 부셔! 부셔!!”
이들을 지휘하는 두 명의 한국 젊은이. “미쳤다”는 말 없이 이 팀을 설명할 수 있을까. 그것도 정말 단단히 미쳤다. 현지 관객을 단 5분 만에 대동단결시켰다. “움직여! 움직여!” “빨리! 더 빨리! 더 빨리!” “앞으로! 앞, 앞, 앞으로!”
짱유가 외쳐대는 낯선 한국어에 현지인들은 홀린 듯했다. 뜻을 이해하기도 전에 방언이 터진 듯 외쳐댔다. 강박적으로 연호하는 한국어 가사는 곧 강력한 주문(呪文)이다. 짱유는 웃통을 벗어 던지고 장갑 끝에 달린 레이저를 객석에 쏘며 객석으로 뛰어내려 분위기를 끓는점까지 끌어올렸다.
“힙노시스테라피는 글자 그대로 ‘최면 치료’죠. 사람마다 억눌린 감정이나 마음속에 쌓인 응어리가 있을 거잖아요. 음악을 통해 분출하며 함께 치료할 수 있는 테라피를 추구합니다. 음악으로 제 인생이 치료됐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이끌고 그 테라피 속으로 함께, 깊숙이 들어가는 게 우리 무대의 의미예요.”(짱유)
래퍼 짱유의 공연 장면. /백승균 작가
이들의 최면은 조용히 누워서 하는 게 아니다. 누워 있던 사람을 일으켜 세운다. 서 있던 사람은 뛰게 하고, 진작에 뛰던 사람은 난폭자로 만든다. 고막에 때려 박는 한국어 랩, 자극적인 전자음, 둔중한 비트가 홍수를 이룬다. 1초, 1초가 고자극이요, 도파민 폭주다. 메탈 공연에서나 등장하는 ‘죽음의 벽’도 연출됐다. 객석을 홍해처럼 좌우로 가른 뒤 곡이 폭발하는 시점에 서로 부딪히며 즐기도록 하는 ‘월 오브 데스’ 말이다.
힙노시스테라피로 뭉치기 전 다년간 짱유는 힙합을 했고, 제이플로우는 소울과 R&B 음악을 했다. 짱유는 ‘쇼미더머니’에서 화제를 일으켰고, 제이플로우는 독특한 솔 밴드 ‘히피는 집시였다’의 멤버로 한국대중음악상을 받았다. 두 사람이 만나 일으킨 화학 결합은 ‘1+1=3’의 시너지. 결국 테라피로 화했다.
“(제이플로우) 형도, 저도 늘 아무도 안 하는 새로운 걸 찾아내 표현하려는 욕구가 강해요. 각자 힙합과 R&B를 오래 하면서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고, 그렇게 찾아낸 게 바로 ‘이거’예요.”(짱유)
음악적 실험은 치밀하고 진지했다. 그러나 무대에만 오르면 두 사람의 행동은 예측 불가, 다이너마이트다.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작정한 사람들의 초혼 의식이랄까. 짱유는 “평소 무대 매너는 따로 연습하지 않는다. 즉흥적 에너지 흐름에 몸을 맡길 뿐”이라고 했다.
유럽, 호주, 멕시코 이어 서울로
“오스뜨리이아아아아아아(Austria)~ 위 니드 모어 에너지! 에너지! 에너지!”
무대 뒤쪽에서 DJ 장비를 다루던 제이플로우는 공연 중 신내림을 받은 듯 외쳤다. 관객을 향한 ‘도발’이다. 보컬 짱유가 지배하던 무대 앞쪽으로 제이플로우가 튀어나오는 장면은 매번 하이라이트다.
“결코 준비된 음악을 재생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날, 그 순간의 관객 분위기에 따라 악곡 순서를 바꾸기도 하고 여러 즉흥적 요소를 추가하죠. 뒤에 빠져 관찰하다가 튀어 나가 짱유와 함께 불태우기도 하고요.”(제이플로우)
힙노시스테라피에 올해 여름은 더 뜨겁다. 6월 스페인 ‘프리마베라 사운드’, 7월 덴마크 ‘로스킬레 페스티벌’과 네덜란드 ‘다운 더 래빗 홀’까지, 세계적인 페스티벌을 종횡하며 온 유럽을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가는 곳마다 ‘테라피(치유의) 부흥회’를 만들었다. 선동적 비트에 얹힌 쉽고 짧은 한국어 단어는 매번 수백, 수천 명에 이르는 군중의 입에 들불처럼 번져갔다. 2024년 첫 유럽 투어에 이어 올해 세 번째 유럽 투어. CJ문화재단의 튠업(TUNE UP) 지원이 큰 역할을 했다.
“관객이 단 한 명만 있다고 해도 우리 무대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그들을 치유하고 우리도 치유되는 곳이 바로 무대죠.”(짱유)
프랑스와 멕시코 공연을 거쳐 9월 4일과 5일에는 한국에서 특별한 무대를 선보인다. 서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7~9월 열리는 탈경계 컨템퍼러리 문화 축제 ‘싱크넥스트 2026’의 마지막 무대를 책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