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美 월마트의 AI 동행
한국인은 정부가 추진 중인 ‘인공지능(AI) 강국’ 정책에 대체로 수용적인 편이다. 그러나 정작 AI 기술과 산업을 선도하는 미국에서는 경계와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 빅테크의 대규모 인력 감축 소식은 많은 사회 초년생을 불안에 떨게 했다. 뉴욕 대형 회계법인들이 AI 도입과 함께 주니어 회계사를 집단 해고한 것처럼, 고용 불안은 산업 전체로 확산하고 있다.

지난 5월 각 대학 졸업식에서는 초청 연사들이 AI의 중요성을 언급하자 졸업생의 야유가 쏟아져 연설이 중단되기도 했다. 몇 달 전 인디애나주에서는 정치인의 집에 총격을 가한 뒤 집 앞에 AI를 겨냥한 ‘데이터센터 반대’ 쪽지를 남기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미국인 10명 중 7명은 자신의 지역에 데이터센터가 들어서는 것을 반대한다는 여론조사도 있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AI의 기능은 인간 노동력을 대체하는 것”이라며 ‘데이터센터 중단’ 법안을 제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도 의회 청문회 때 데이터센터가 건설된 조지아주 지역에서 가져온 갈색으로 변한 물을 보여주며 수질 오염 문제를 제기했다. 실리콘밸리를 지역구로 둔 로 칸나 하원의원도 AI 시대에 대비해 ‘미국을 위한 일자리 정책’을 제안하고 AI 기업이 조성한 슈퍼팩(정치자금후원단체)은 정치 관여를 제한하도록 한 법안을 제출했다. 민주당 차기 유력 대선 주자인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주지사 역시 ‘AI가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는 행정명령’을 통해 실업 원인 조사와 대응책 마련에 들어갔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대표 유통기업인 월마트가 산업 현장에서 찾은 현실적인 해결책이 눈길을 끈다. 온라인 유통 절대강자인 아마존에 맞서 자구책을 찾던 월마트는 10여 년 전부터 기술 도입을 직원의 업무능력 향상과 결합해 성공 사례를 만들었다. 2014년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더그 맥밀런은 ‘직원’을 회사의 핵심 가치로 선언하고, 근로자를 첨단 기술로 훈련시키기 시작했다. 창고 자동화 라인도 현장 직원과 함께 설계했다. 그 결과 그동안 공급업체 10곳의 물품을 지게차로 운반하던 직원이 100곳의 물품을 다루는 데이터 관리자로 변신했다.

직원 210만 명을 거느린 월마트는 AI를 현장 노동자의 업무 조력자로 배치하면서 감원 대신 신규 채용을 이어갔다. 지난해 말에는 스스로 정보기술(IT) 기업 변신을 선언하며 나스닥으로 이전 상장했다. 한국에서도 이런 성공 사례를 산업에 이식하고자 필자가 참여한 ‘모두를 위한 AI 포럼’이 최근 서울대에서 ‘일하는 사람과 일터, 모두를 위한 AI 아이디어톤’을 열기도 했다. AI가 단순 자동화 수단이 아니라 인간의 판단을 돕는 도구로 기능할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 사업화를 핵심으로 한 ‘사람 중심 AI 정책 제안서’를 마련했다.

2024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다론 아제모을루 교수는 이를 ‘친노동 AI(Pro-worker AI)’라는 명확한 언어로 정의했다. AI를 인력 감축의 수단이 아니라 근로자의 역량과 창의성을 극대화하는 조력자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만 AI 호황의 성과가 자연스럽게 사회 전체에 배분될 수 있다.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친 대립은 조만간 한국의 문제가 될 수 있다. AI와 데이터센터, 인프라 건설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역기능과 고용 충격에 대한 정교한 대비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