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추천 뉴스
[이슈프리즘] 두 점의 무게, 도전자 된 인간
AI 스승에 도전하는 신진서
두 점 승부에 담긴 응전 의지
김형호 한국경제TV 콘텐츠본부장
두 점 승부에 담긴 응전 의지
김형호 한국경제TV 콘텐츠본부장
10년 만에 인간은 도전자로 내려왔다. 수천년간 인간계 최고 자리에서 바둑의 신을 향한 도전을 꿈꿔온 인류가 이제 상대가 핸디캡을 받아야만 싸울 수 있는 처지가 된 것이다. 이 역전의 속도와 폭을 직시하지 않으면 이번 대국의 의미와 그 너머의 함의를 읽을 수 없다.
2016년 3월, 알파고는 이 9단과의 다섯 번 대국에서 네 번 이겼다. 세계에 충격을 안긴 대결에서 인간은 단 한 번 승리했다. 이 9단의 78번째 수, ‘신의 한 수’는 인류가 AI와의 맞바둑에서 이긴 마지막 기록으로 바둑 역사에 남아 있다. 그 이듬해 알파고는 당시 세계 1위 중국 커제 9단마저 3전 전승으로 꺾고 바둑계를 은퇴했다. 여기까지가 일반이 기억하는 ‘알파고 쇼크’의 전말이지만 AI는 그 이후 무섭게 진화했다.
오픈소스 기술을 기반으로 등장한 바둑AI 카타고는 ‘신공지능’(신진서+인공지능)으로 불리는 신 9단조차 맞바둑으로 상대할 수 없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이전의 알파고가 증기기관차라면 카타고는 자기부상열차라고 할 만한 기력 차다. 이제 세계 프로기사들은 카타고로부터 바둑을 배운다. 스승이 된 AI 앞에서 인간은 이미 학생이다. 바둑판에서 벌어지는 일만이 아니다. AI는 법률 회계 의료 금융 등 전문직 영역부터 하나씩 점령해나가고 있다. 바둑은 이런 현실의 상징이자 거울이다.
그렇다면 이번 대국은 패배를 알면서 뛰어드는 의미 없는 도전일까. 그렇지 않다. 2점 접바둑은 한계를 받아들이는 표시가 아니라 그 경계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를 가늠해보는 인간의 응전이다. 신 9단이 이를 수용한 것은 인간 능력의 한계를 직접 확인해보겠다는 의지의 천명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바둑의 신 AI에 두 점으로 버틸 수 있음을 증명하고 싶다”고 했다. 이번 대국의 증명 대상은 AI가 아니라 인간 자신이다. 카타고는 수당 20초, 신 9단에게는 초읽기 제한 없이 합산 5시간이 허용된다. 속도가 아니라 깊이로 싸우겠다는 의미다.
AI에 핸디캡을 줘야 인간 최강과의 게임이 성립한다는 것 자체가 AI 혁명의 현주소를 가장 솔직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AI가 등장하기 전 초일류 고수 사이에서는 “만약 바둑의 신과 겨룬다면 석 점을 깔고 두겠다”는 말이 있었다. 이제 그 신은 실재한다. 인간 최강은 석 점이 아니라 두 점으로 도전한다. 한 점의 차이가 작아 보이지만 그 한 점을 줄여 다시 도전하는 데 10년이 걸렸다. 두 점은 인류가 AI에 대해 갖고 있는 자존심의 마지막 거리인지 모른다.
두 점 승부의 끝에 어떤 결과가 기다리든, 이번 대국의 진정한 가치는 그 전개 과정에 있다. 어떤 상황에서 카타고가 흔들리고, 신 9단의 어떤 묘수가 예상 밖 국면을 만들어내는지를 지켜보는 것 자체가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돌아볼 기회다. 10년 전 완패의 끝자락에서 인간 창의성에 영감을 불어넣은 이세돌의 78수처럼 두 점을 깔고 앉아 바둑의 신을 향해 돌을 놓는 신 9단은 격변의 AI 시대를 헤쳐나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