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프리즘] 1000억달러에 산 6엔
지난달 31일 미국 뉴욕의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 딜링룸에 뉴욕연방은행의 매도 주문이 들어왔다. 달러당 160엔을 넘어선 일본 엔화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서였다. 미 재무부가 환율안정기금(ESF)의 유로화를 팔아 엔화를 사들였다. 미국이 엔화 환율에 직접 개입한 것은 1998년 6월 이후 28년 만이다. 미·일이 30일부터 이틀간 쏟아부은 자금은 약 1000억달러로 추정된다. 그렇게 되돌린 엔화 가치는 이날 종가 기준 약 6엔. 달러당 환율을 1엔 끌어내리는 데 154억달러가 들었다. 1998년 개입할 때는 3억달러가 쓰였다. 51배 차이다. 합동작전 이후 장중 155엔대까지 갔던 엔화 환율은 최근 159엔대로 뛰었다. 개입 효과는 열이틀 만에 반토막이 났다.

미국이 지키려는 것은 엔화가 아니다. 일본 정부가 보유한 미 국채를 팔지 않도록 공동 방어선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4~5월 일본이 외환시장에 단독 개입한 전후 미 국채 보유액은 한 달 만에 667억달러 줄었다. 2022년 9월 이후 최대 감소폭이다. 처분한 것은 대부분 1년 이내 단기 국채라 장기 금리를 흔들 규모는 아니었다. 워싱턴이 두려워한 것은 그다음이다. 일본 금리가 오르면 생명보험사와 연기금이 미국 장기채를 접고 돌아온다. 일본이 가진 미 국채는 1조1431억달러어치다. 결국 문제는 일본이 실제로 판 양이 아니다. 언제든 팔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다.

미 재무부의 개입 과정에서 ‘의문의 1패’를 당한 쪽은 유로화다. 달러를 팔면 강달러 정책을 접었다는 신호로 읽힌다. 달러를 마련하자니 미 국채를 팔아야 한다. 국채를 지키려다가 국채를 흔드는 꼴이다. 그래서 재무부는 환율안정기금의 유로화 154억달러 중 3분의 1~3분의 2를 처분했다. 사전에 유럽 측에 통보하지도 않았다. 기금의 약 80%는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으로 묶여 있고 남은 유로도 넉넉하지 않다. 앞으로 쓸 실탄이 없다는 얘기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이 미 중앙은행(Fed)에 손을 내민 것도 이런 상황 때문이다. Fed가 외국 중앙은행에 미 국채를 담보로 달러를 빌려주는 창구(FIMA)의 한도를 늘려달라는 요구다. 하루 600억달러인 국가별 한도를 키워 일본이 미 국채를 팔지 않고도 달러를 구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환율안정기금까지 풀었는데도 장기 국채 금리는 꺾이지 않았다.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예상대로 3.4%에 그치자 10년 만기 금리는 소폭 떨어졌다. 그런데 30년 만기는 꿈쩍하지 않고 있다. 30년 만기 금리는 연 5.25%로 2007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장기 금리를 끌어올리는 것이 물가가 아니라 재정과 정책 신뢰라는 의미다. 미·일 합동작전은 엔화도, 미 국채도 지키지 못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이제 관심은 케빈 워시 Fed 의장이 이 요구를 수용할 것인지에 쏠린다. 한도 확대는 소위원회 위원장인 Fed 의장이 결정한다. 워시 의장은 지난달 29일 기자회견에서 “중앙은행이 늘 어디서나 무대 중앙에 설 필요는 없다”며 시장과의 거리를 강조한 인물이다.

워시의 결정은 남의 일이 아니다. 한국은행은 2021년부터 이 창구에 600억달러 한도를 갖고 있다. 한도가 나라별로 균일해 미국이 일본을 위해 한도를 풀면 우리 방어선도 협상 없이 함께 올라간다. 외환보유액의 절반 이상을 미 국채로 들고 있어 담보도 넉넉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5월 베선트 장관에게 통화스와프를 요청했다가 “한국은 외환보유액이 부족하지 않다”는 답을 들은 그 방어선이다. 대통령의 직접 요구에도 꿈쩍하지 않던 문이 일본을 위한 결정에 얹혀 열릴 수 있다는 뜻이다. 워시의 결정을 예의주시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