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에 있는 한 빌딩에 법무법인 간판이 빼곡히 걸려 있다.  /임민규 기자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에 있는 한 빌딩에 법무법인 간판이 빼곡히 걸려 있다. /임민규 기자
“규제를 행정심판·소송으로 해결하는 전통 방식은 정부기관과 충돌해야 하고 상당한 기간·비용이 소요됩니다. 법제컨설팅은 법령의 제·개정, 올바른 유권해석의 확보 등을 통해 짧은 시간 내에 문제를 해결합니다.”(법무법인 광장 홈페이지)

대형 로펌이 기존 송무를 넘어 법제·경영·세무·노동 컨설팅으로 영역을 확대하며 몸집을 불리고 있다. 기업 규제 강화에 힘입어 연매출 10조원 시대를 활짝 열어젖히며 새로운 전성기를 맞고 있다.

◇ 규제 강화가 부른 ‘로펌 특수’

기업 규제가 키운 로펌…컨설팅·로비 영역까지 장악했다
8일 국세통계포털에 따르면 변호사 직종 매출(부가가치세 신고 기준)은 2015년 4조6373억원에서 2025년 10조3749억원으로 10년 새 두 배 이상으로 커졌다. 이 기간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법률시장 비중도 0.26%에서 0.39%로 높아졌다.

이 같은 성장세의 배경에는 대형 로펌의 ‘컨설팅펌화’가 있다. 한 대형 로펌의 건설부문은 최근 민간 시행사에 수익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개발 프로젝트를 먼저 제안하기도 했다. 과거엔 건설회사가 연루된 소송이나 재건축·재개발 사업장 법률자문 등이 로펌의 주된 역할이었는데, 이제는 부동산 컨설팅사가 할 법한 사업 아이템 제시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로펌 관계자는 “5년 전만 해도 ‘제로’(0)에 가깝던 프로젝트 기획과 건설현장 안전 관리, 부동산 자산관리 등 컨설팅 업무의 매출 비중이 현재 15%까지 올라왔다”고 했다.

요즘 로펌은 국회 국정감사에 불려나가게 된 기업인 등을 대상으로 발언 및 자세, 표정 등을 ‘코칭’해주기도 한다. 로펌이 국회의원을 설득할 논리를 제공해 기업 총수를 증인 명단에서 아예 빼주는 사례도 있다. ‘입법 로비’로 불리는 법제 컨설팅 수요 역시 늘고 있다. 한 로펌은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의원 질의를 이끌어내 문제를 공론화하는 방식으로 기업 고객이 필요로 한 금융 분야 시행령 개정을 이끌어냈다.

국내 입법 로비 시장은 2017년 이후 크게 성장했다. 국정농단 사태로 대기업들이 직접 정치권과 상대하는 것을 꺼리면서 법무법인에 의존하게 됐다.

지난달 출범한 지평의 ‘인공지능(AI) 인프라 센터’는 지역 민원 대응 서비스도 제공한다. 국내 방위산업 업체들이 로펌의 문을 두드리는 일도 많아지고 있다. 미국 전쟁부(국방부) 납품에 필수적인 CMMC(사이버보안 성숙도 모델 인증) 컨설팅을 받기 위해서다. 로펌들은 관료와 국회, 기업 출신 등 다양한 분야의 비법조인 전문가를 경쟁적으로 영입하며 컨설팅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 개인정보 사건도 급증

갈수록 정부 규제가 촘촘해지는 것도 로펌시장의 ‘파이’를 키우고 있다. 2020~2021년 중대재해처벌법 규제와 맞물려 법률시장 매출 증가율은 10% 안팎으로 가파르게 올랐다. 검·경 수사기관 외에 고용노동부,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원, 국세청 등 행정기관의 조사·제재가 잇따르면서 규제 자문 수요가 폭발했다. 지난해에는 SK텔레콤과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까지 터지면서 개인정보 사건 대응 수요도 급증했다.

실적이 이를 방증한다. 지난해 김앤장법률사무소(1조6000억원 추정)가 독보적 1위를 유지하는 가운데 태평양이 매출 4402억원을 올리며 6년 만에 2위를 탈환했다. 세종(4363억원)은 19년 만에 3위로 올라섰고, 광장(4309억원)과 율촌(4080억원)도 나란히 4000억원을 넘겼다. 화우(2812억원)는 40.4%의 매출 급증세를 보였다. 10대 로펌 합산 매출은 4조1090억원으로 전체 법률시장의 약 40%를 차지한다.

다만 법률시장도 AI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않다. 강석훈 율촌 대표변호사는 “대형 로펌은 이미 효율 경쟁 단계에 진입했다”며 “리걸테크 도입과 고부가가치 업무 집중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중장기 실적을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란/김유진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