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북한산 백운대를 오르다 처음으로 인수봉을 봤다. 수직의 거대한 바위에 점처럼 매달린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장면이 묘하게 끌렸다. ‘멋지다. 나도 한 번쯤 인수봉에 올라가 보고 싶다.’는 마음이 2023년 봄, 코오롱등산학교 입학으로 이어졌다.

등산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당연히 인수봉만 오를 줄 알았지만, 첫 실전 멀티피치(Multi-pitch, 긴 암벽을 여러 구간으로 나누어 오르는 등반)는 북한산 노적봉에서 진행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등산학교 다닐 때를 제외하고 따로 노적봉을 가본 적 없다. 북한산 횡종주를 하다 저 멀리 둥그런 노적봉이 보이면, 아직도 울화(?)가 치밀어 오르기까지 한다. 노적봉에서 겪었던 아찔했던 고도감과 뼛속까지 스며들던 칼바람이 여전히 생생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비 오는 날의 실내 계단 훈련, 동료의 생명이 걸린 후등시스템

멀티피치는 후등자를 끌어 올려주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건 확보하고 후등빌레이를 보는 ‘시스템’이다. 멀티피치를 나가기 전 이 시스템을 몸에 익히는 교육부터 받았다. 토요일에 굵은 장대비가 내리면서 야외 교육은 취소됐고, 등산학교 근처 건물의 비상계단을 훈련장으로 활용했다. 1층을 출발점, 2층을 1피치(구간), 3층을 2피치, 4층을 3피치 도착점으로 가정하고 교육을 진행했다.

리드 클라이밍을 꽤 해봤기에, 로프를 다루는 ‘빌레이(Belay, 확보)’만큼은 자신 있다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멀티피치에서 밑에 있는 동료(후등자)를 위로 끌어올리는 기술은, 땅에서 위를 보며 줄을 내어주던 리드 클라이밍의 빌레이와는 완전히 달랐다.
노적봉 정상에 도착하니 푸른 물결이 넘실대고 있었다. / 사진. ©고태강
노적봉 정상에 도착하니 푸른 물결이 넘실대고 있었다. / 사진. ©고태강
가장 큰 차이는 안전을 책임지는 장비(확보기)를 거는 위치였다. 리드 클라이밍에서는 확보기를 내 몸의 하네스(안전벨트) 고리에 직접 연결하지만, 후등자를 끌어올릴 때는 벽의 쇠사슬(앵커 체인)에 잠금비너와 확보기를 세팅해야 했다. 줄이 꼬이지 않게 정리하고, 후등자의 무게를 지탱할 제동 방향을 맞추는 과정은 계속 헷갈리기만 했다.

두 선생님의 시범 이후 동기들끼리 계단을 오르며 연습을 진행했다. “그 다음 순서가 뭐였죠?” 당황한 동기의 질문에 나도 모르게 “하아…” 하고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동기는 머쓱해하며 미안하다고 했지만, 사실 그 한숨은 동기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머리로는 분명 이해했는데 손은 좀처럼 움직이지 못한 채 더듬더듬 허공을 맴돌기만 했다. 빠릿하게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하는 굼뜬 나 자신에게 스스로 실망해 터져 나온 탄식이었다.

비상계단에서 시스템을 연습하며 동기들 사이에서 멋쩍은 웃음이 터져 나왔을 때, 평소 다정하시던 선생님은 “웃지 마세요. 지금 여기서 이 시스템을 완벽하게 숙지하지 못하면, 바위 위에서는 절대 동료를 끌어올릴 수 없습니다.”라고 하셨다. 그 엄한 질책의 무게를 온몸으로 실감하게 된 건, 얼마 뒤 노적봉 바위에 매달리고 나서였다.
노적봉 반도 A길을 등반하고 있는 본인. / 사진. ©고태강
노적봉 반도 A길을 등반하고 있는 본인. / 사진. ©고태강

산에서 봄날은 늦게 온다…4월의 매서운 칼바람

4월 중순, 서울 도심에는 벚꽃이 지고 완연한 봄기운이 가득했지만, 북한산의 시계는 여전히 늦가을 혹은 초겨울 언저리에 머물러 있었다. 등산로를 따라 암장까지 걸어갈 때만 해도 땀이 비 오듯 쏟아지면서 몸이 후끈거렸다. 배낭 속 경량 패딩이 짐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노적봉 반도 A길 시작점에 다다르자, 날씨는 180도 달라졌다. 땀이 차갑게 식으면서 한기가 몸을 맴돌았다. 배낭에서 경량 패딩을 꺼내 입고 등반을 시작했지만, 허공을 가르는 매서운 바람은 마치 바위에 붙은 내 몸을 떼어내려는 듯 거칠게 불어댔. 내 차례가 되어 등반할 때는 몸에 열이 나기도 했지만, 패딩을 벗을 수 없었다. 멀티피치는 내가 바위를 오르는 시간보다, 앞사람이 다음 피치까지 도착하는 걸 기다리거나 내 뒤를 이어 오르는 사람의 빌레이를 보는 시간이 훨씬 길기 때문이다.

찬바람을 온몸으로 맞다 보니, 불현듯 ‘산에서 사람이 얼어 죽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스쳤다. 매년 가을이나 초봄만 되면 ‘설악산이나 지리산에서 저체온증으로 등산객이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다’는 안타까운 기사가 종종 나오곤 한다. 등산을 본격적으로 다니기 전에는, ‘도심은 9월이나 10월에도 한창 따뜻한데 왜 산에서 저체온증 사고가 날까’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노적봉의 깎아지른 바위에 매달려, 온몸으로 찬바람을 맞고 나서야 그 무서운 자연의 섭리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왼쪽의 침니 구간을 지나서 오른쪽 바위 면으로 몸을 붙여서 가야하는 문제의 코스 / 사진. ©고태강
왼쪽의 침니 구간을 지나서 오른쪽 바위 면으로 몸을 붙여서 가야하는 문제의 코스 / 사진. ©고태강

다리 사이로 고꾸라지는 아파트, 공포에 얼어버린 몸

백운대 하단에서 줄에 매달려 슬랩을 연습했을 때는 비교적 완만하게 뻗어있는 바위만 마주했지만, 노적봉은 차원이 달랐다. 실내 암장에서나 리드 클라이밍을 할 때는 전혀 보지 못했던 크랙(바위가 갈라진 틈), 침니(몸이 들어갈 정도로 넓고 깊은 바위 틈) 구간들을 연이어 마주했다.

침니 구간을 지날 때는 몸이 자꾸 바위 틈 안쪽을 파고들었다. 위에서는 선생님이 “안으로 들어가지 말고 밖으로 나와야 등반이 된다”고 소리쳤다. 억지로 손을 밖으로 빼내서 거친 바깥 면의 돌을 더듬더듬 찾아 홀드로 사용했다. 무사히 이 구간을 지나 3피치에 확보를 하고 나니, 왼편에는 아득한 허공 아래로 아파트 단지들이 성냥갑처럼 빽빽하게 줄지어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먼저 등반하는 동기를 보니 그 아파트 단지를 마주하고 양옆으로 다리를 길게 벌린 뒤 오른쪽 바위로 몸을 붙여서 올라갔다. 선등을 맡았던 선생님과 빌레이를 맡은 동기 모두 그 방법대로 바위를 올랐다. ‘저 방법 밖에는 없구나’라고 속으로 마음을 다독이며, 바위에 왼쪽 다리를 얹어두니 다리 사이로 바람이 매섭게 휘몰아쳤다. 겨울철마다 여의도에서 매섭게 불어오는 빌딩풍보다 더 차갑게 느껴졌다.

바람도 매서웠지만, 두 눈에 펼쳐진 고도감에는 말 그대로 현기증이 났다. 롤러코스터 가장 꼭대기에서 바닥을 내려다볼 때처럼, 아득히 먼 허공 아래로 서울 시내의 아파트 단지들이 성냥갑처럼 펼쳐졌다. 내 몸이 당장이라도 아파트들을 향해 곤두박질칠 것만 같은 공포가 휘몰아쳤다.

공포에 질린 뇌는 끊임없이 최악의 시나리오를 만들어냈다. ‘지금 나를 지탱하고 있는 이 로프가 바위에 쓸려 끊어지면 어쩌지?’, ‘내가 저 멀리 튕겨나가는 건 아닐까?’… 한 번 시작된 상상은 꼬리를 물고 걷잡을 수 없이 부풀어 올랐다.

사람의 뇌는 공포에 짓눌리면 현실을 왜곡하고, 그 상상을 현실로 믿어버린다고 한다. 고장이 난 냉동 창고에 갇힌 사람이 ‘춥다’는 뇌의 착각에 사로잡혀 실제로 동사했다는 기괴한 실화가 떠올랐다. 노적봉에 매달려 있던 나도 스스로 만든 ‘가짜 공포’에 사로잡혀 한참을 돌처럼 얼어붙어 있었다.
 바위 틈을 파고드는 크랙과 침니로 다양한 루트가 특징인 노적봉 반도 A길 / 사진. ©고태강
바위 틈을 파고드는 크랙과 침니로 다양한 루트가 특징인 노적봉 반도 A길 / 사진. ©고태강

“결국, 내가 스스로 움직여야 오를 수 있다”

그때, 위에서 로프가 팽팽하게 내 몸을 당겼다. 추위를 떨며 위에서 나를 끌어올려 주고 있는 동기, 그리고 밑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을 동기가 번뜩 떠올랐다.

‘결국 여기서 발을 떼지 않으면 단 1cm도 올라갈 수 없다.’ 등산학교 교육 과정에서도 ‘빌레이어가 후등자를 억지로 허공으로 끌어 올려서 정상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설명은 들어본 적 없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아찔한 허공을 외면하고 오른쪽 바위 면에만 시선을 고정했다. 시야를 극단적으로 좁히자, 아주 미세하게 두 손가락으로 꼬집어서 잡을 수 있는 홀드가 보였다. 오른손으로 잡아야 하는 홀드였는데, 왼발을 떼지 않고 잡으려고 하니 손이 닿지 않았다. 두세 차례 시도해봤지만, 158cm인 사람에게는 꽤 먼 홀드였다.

간신히 공포를 이겨냈는데, 또 다른 시련을 마주하니 무기력감이 밀려왔다. ‘이거 못 가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자, 손에 힘이 빠졌다. 하지만 허리춤에 있는 줄은 여느 때보다 강하게 당겨지고 있었다. 아래서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떨고 있을 동기에게 더 이상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책임감이 마음을 짓눌렀다.

바람이 한층 더 매섭게 몰아치자, 역설적이게도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과감하게 왼발을 떼고 오른쪽 벽으로 몸을 바짝 던지듯 붙였다. 그 순간, 얕은 돌기가 손끝에 탁 걸렸다. 속으로 ‘살았다!’고 탄성을 내질렀다. 나는 그 작은 돌기에 의지해 한 발씩 몸을 밀어 올렸다.

마침내 다음 피치에 안전하게 도착했고, 그 다음부터는 슬랩과 약간의 홀드가 있는 페이스성 루트가 이어졌다. 더 이상 허공을 등지고 아슬아슬하게 바위를 건너뛰어야 하는 구간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안도감이 느껴졌다.
노적봉 정상에 도착하니 멀리보이는 아파트 단지가 평화로워 보였다. / 사진. ©고태강
노적봉 정상에 도착하니 멀리보이는 아파트 단지가 평화로워 보였다. / 사진. ©고태강

“안녕 노적봉”…성장의 밑거름이 된 4월의 매서운 추억

마침내 도착한 노적봉 정상에서도 바람은 계속해서 내 뺨을 후려쳤다. 땀은 완전히 식었고 손가락은 곱아들었으며, 턱 끝까지 숨은 차올랐지만 이상하게 마음만은 한결 평온했다. 산 아래에는 내 몸을 얼어붙게 만들었던 도심의 풍경 대신, 푸르른 나무들이 물결을 이루며 넘실댔다.

정상 확보줄에 몸을 묶고 숨을 고르며,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즐거웠고, 다신 보지 말자 노적봉!’ 내 생애 첫 멀티피치 무대였던 노적봉은 아찔했던 공포와 지긋지긋한 칼바람의 기억으로 깊게 각인되었다. 하지만 그날의 뼈저린 경험은 멀티피치 등반에서 가장 중요한 태도를 내 몸에 새겨줬다. 바로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점이다.
노적봉 정상에 도착하니, 어느덧 무서웠던 공포감은 사라지고, 성취감이 느껴졌다 / 사진. ©고태강
노적봉 정상에 도착하니, 어느덧 무서웠던 공포감은 사라지고, 성취감이 느껴졌다 / 사진. ©고태강
맨 처음 길을 뚫고 나가는 ‘선등자’의 역할, 그 뒤에서 생명을 책임지는 ‘빌레이어’의 역할, 그리고 마지막에 바위에 설치된 장비들을 회수하며 올라오는 ‘말구(마지막 등반자)’의 역할까지. 그리고 이 역할을 맡지 않은 세 번째 혹은 네 번째 등반자들도 모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시스템과 로프는 내 생명을 지켜주는 ‘최소한의 안전망’일 뿐, 내가 써야 할 에너지를 대신해 주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완벽한 시스템이 받쳐준다 한들, 결국 다음 홀드를 움켜쥐고 체중을 실어 일어서야 하는 건 철저히 나 스스로 해내야 할 몫이다. 바위에서는 하나의 로프로 묶인 모두가 각자의 몫에 최선을 다할 때 비로소 ‘완등’이라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사회에서는 남들보다 ‘어떤 특별한 강점’이 있느냐가 더 중요하게 여겨져, 정직하게 땀 흘리는 ‘최선’의 가치를 잊어버리곤 한다. 하지만 산에서만큼은 다르다. 두려움에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나를 위에서 끌어주는 동료와 밑에서 기다리는 동료를 생각하며 기필코 다음 홀드를 움켜쥐는 것. 그 우직한 최선이 결국 목표에 닿게 만드는 유일한 길이었다.

등산학교를 졸업하고 3년이 흘렀지만, 나는 아직도 노적봉을 다시 찾지 않았다. 실내 암장에서 홀드를 잡다 벽에 막힐 때면, 이따금 4월의 매서운 눈바람을 맞으며 노적봉 허공에 덜덜 떨며 매달려 있던 그날을 떠올려 보곤 한다. 아직까지는 그곳에 다시 매달리고 싶은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지만, 세월이 더 흘러 내 등반의 여유가 깊어지는 날이 온다면, 어쩌면 그 혹독했던 노적봉의 칼바람이 그리워질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