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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츠·몽블랑·리모와…독일 명품이 오래 사랑받는 이유 [김혜경의 브랜드 테루아]
독일, 기능이 만든 럭셔리
기술과 구조, 끝까지 다듬어
쓰임을 럭셔리의 기준으로
기술과 구조, 끝까지 다듬어
쓰임을 럭셔리의 기준으로
독일은 한 나라의 궁정이나 수도가 취향의 기준을 독점한 나라가 아니었다. 1871년 통일 이전까지 여러 왕국과 공국, 자유도시가 나뉘어 존재했고, 각 지역은 저마다 다른 산업과 기술을 발전시켰다. 함부르크는 북해와 유럽 내륙을 연결하는 무역과 상업의 도시로, 작센의 글라슈테는 정밀 시계 산업의 도시로, 슈투트가르트와 뮌헨은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그렇다면 독일은 왜 장식보다, 쓰임과 구조에서 품격을 찾아오게 됐을까.
기계가 만든 품격
자동차는 패션이나 주얼리 중심의 럭셔리와는 성격이 다르지만, 독일의 고급 이미지를 설명할 때 빼놓기 어려운 산업이다. 1886년 칼 벤츠가 가솔린 엔진으로 움직이는 삼륜 자동차에 대한 특허를 받았을 때, 그것은 단순한 이동수단의 출현만은 아니었다. 엔진과 금속가공, 연료와 부품, 설계와 차체 구조가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맞물려야 비로소 움직이는 새로운 산업의 시작이었다. 독일에서 자동차가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동차는 기술이 어떻게 품격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분야다.독일에서 자동차 산업이 발달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19세기 독일은 영국보다 늦게 산업화에 뛰어들었지만, 철강과 기계, 화학, 정밀공학 분야에서 빠르게 성장했다. 기술 교육과 연구 기반이 강했던 독일에서 자동차는 그 산업적 역량이 응축된 발명이었다.
이후 자동차는 독일 제조업을 대표하는 산업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라인강의 기적’이라 불린 서독의 경제 성장 과정에서 자동차 산업은 회복된 산업력과 수출 경쟁력의 중심에 있었다. 폭스바겐이 대중차 시장을 넓혔다면, 메르세데스-벤츠와 BMW, 포르쉐는 고급차 시장에서 정밀한 설계와 성능을 독일식 고급의 언어로 바꾸어갔다.
장식을 덜어낸 자리
군더더기 없는 직선, 단순한 형태, 불필요한 장식을 배제한 디자인은 오늘날 미니멀한 디자인을 떠올릴 때 자주 언급되는 문법이다. 그 뿌리를 따라가면 20세기 초, 표면을 꾸미기보다 구조와 쓰임을 중시한 독일 산업디자인과 바우하우스(Bauhaus)의 기능주의가 있다.
당시 유럽에는 아르누보에서 아르데코로 이어지는 장식적 미학이 강하게 남아 있었지만, 바우하우스는 장식보다 기능, 개별 장인의 표현보다 산업 시대의 생산 방식을 디자인의 기준으로 삼았다. 그들이 내세운 ‘예술과 기술의 새로운 통합’은 아름다움을 장식의 문제가 아니라 쓰임과 구조, 생산의 문제로 바라보게 했다. 잘 작동하는 것, 오래 견디는 것, 필요한 기능을 정확히 수행하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울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물론 바우하우스가 독일 럭셔리 브랜드를 직접 만든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은 독일이 아름다움을 기능과 구조로 이해해온 방식을 설명하는 중요한 문화적 기준이 된다. 독일 브랜드들이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도 이 관점과 맞닿아 있다. 아름다움은 겉에 더하는 장식이 아니라, 쓰임을 방해하는 것을 덜어내고 필요한 구조만 남기는 과정에서 생겨난다는 생각이다.
독일 럭셔리에서 물건의 품격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잘 보이기 위해 꾸미는 것이 아니라, 오래 쓰이기 위해 정확해지는 것. 이 태도는 자동차의 엔진에서 만년필의 펜촉, 시계의 무브먼트와 트렁크의 홈 구조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반복된다.
보이지 않는 곳의 완성
몽블랑에서 근무하던 시절 독일 함부르크에 있는 몽블랑 필기구 매뉴팩처를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그곳에서는 만년필로 종이 위에 8자형 곡선을 반복해 그리며 필기감을 테스트했다. 잉크의 흐름, 펜촉의 부드움, 손끝에 전해지는 감각과 소리까지 살피는 과정이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제품이 제 기능을 다하는지를 끝까지 확인하는 일이었다. 정제된 외형과 손끝에서 확인되는 안정된 사용감이 함께 쌓일 때, 작은 만년필 하나도 브랜드의 기준이 된다.
독일식 럭셔리의 토양은 이 분산된 산업 기반 위에서 만들어졌다. 여러 도시가 각자의 기술과 전문성을 축적했고, 그 차이는 독일 브랜드가 기능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게 했다. 여기에 쓰임을 집요하게 다듬어온 태도와 바우하우스가 디자인으로 정리한 기능의 미학이 겹치며 독일식 품격이 만들어졌다.
함부르크 매뉴팩처에서 보았던 필기 테스트도, 단순한 품질 확인 과정으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독일 럭셔리가 물건을 대하는 방식을 압축한 장면에 가깝다. 잉크의 흐름, 엔진의 구조, 무브먼트의 정교함, 트렁크의 홈처럼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부분까지 끝까지 맞추는 일. 독일의 브랜드 테루아는 바로 그 집요한 확인과 완성의 태도 안에서 품격을 만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