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통을 들이밀며 물고기를 받으려 경쟁하는 상인들 ©서병철
플라스틱 통을 들이밀며 물고기를 받으려 경쟁하는 상인들 ©서병철
“삶이 힘들 땐 시장에 가라”는 말이 있다. 어린 시절 시골 재래시장에서 자란 탓일까, 그 말에 격하게 공감하곤 한다. 그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꿈틀거리는 삶의 생명력을 너무 일찍 경험한 덕분인지 모르겠다. 남들처럼 휴가도 마음대로 가지 못하고 매일 가게 문을 열고 닫으며, 물건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필사적이고도 절실한 상인들의 모습. 그 치열한 생의 현장을 마주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시장이다.

인도양 푸른 바다에 몸을 던진 상인들, 그리고 깨달음

아프리카 탄자니아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꼭 가보고 싶은 나라다. 특히 세렝게티와 마사이어로 ‘큰 구멍’을 뜻하는 거대한 분화구인 응고롱고로 국립공원은 이 나라를 찾는 관광지들이 반드시 들르는 곳 중 하나다. 약육강식의 세계가 보여주는 생생한 장면, 그리고 동시에 평화롭게 공존하는 다양한 야생 동물을 가까이에서 관찰하다 보면 흥분을 좀처럼 감추기 어렵다.

아프리카 대륙 최고봉으로 지구에서 가장 큰 휴화산인 킬리만자로(5,895m) 등반도 인기가 높다. 제한된 일정으로 정상까지는 가지 못했지만, 마랑구 게이트에서 만다라 산장까지 왕복 16km를 트레킹하면서 열대우림 숲을 만나고 신성한 기운을 받았다.

또 다른 인기 목적지로는 항구 도시인 잔지바르가 있는데, 그룹 퀸(Queen)의 리더 프레디 머큐리 탄생지로 유명한 곳이다. 전통적으로 향신료와 노예를 거래하는 시장으로 번영했던 섬인데, 특히 스톤타운 미로 골목길을 구석구석 거닐면 건물에 새겨진 독특한 문양과 함께 아프리카 스와힐리, 이슬람, 페르시아, 인도, 유럽 문화가 혼재된 독특한 매력을 즐길 수 있다.

잔지바르 여행을 할 때 결코 빠뜨려선 안되는 코스가 있다면 바로 시장이다. 동행의 제안으로 새벽 6시, 잔지바르 항구의 어시장을 찾았다. 쏟아지는 잠을 깨울 새도 없이, 새벽 시장의 공기는 단숨에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했다. 이미 좌판에는 거대한 참치부터 손가락만 한 물고기까지 빼곡히 널려 있고, 값을 흥정하는 이들의 목소리로 사방이 북적인다.

저 멀리 아스라한 바다 위에 원양 어선과 함께 작은 배들이 작은 점처럼 떠 있다. 작은 배 한 척이 포구 근처에 닿자, 갑자기 상인들이 인도양 푸른 바다에 줄줄이 몸을 던졌다. 이윽고 플라스틱 통을 들이밀며 서로 먼저 물고기를 받으려는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한 상인은 팔을 길게 뻗어 지폐 한 장을 건네며 빨리 담아달라고 재촉하기도 했다.
물고기를 팔고 거스름돈을 건네는 두 상인 ©서병철
물고기를 팔고 거스름돈을 건네는 두 상인 ©서병철
지폐 한 장을 건네며 물고기를 담아달라 재촉하는 상인 ©서병철
지폐 한 장을 건네며 물고기를 담아달라 재촉하는 상인 ©서병철
그 치열한 풍경을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것은 단순히 가족과 자신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넘어, 삶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마주해야 하는지에 대한 무언의 가르침 같았다. 이토록 활력 넘치는 공간 한편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어렵게 잡힌 작은 생선들을 느긋하게 포식하고 있었다. 그럼도 누구 하나 이 작은 생명체를 내쫓지 않는 모습은 생의 현장에 묘한 정겨움을 더했다.
상인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느긋하게 포식하는 고양이 한 마리 ©서병철
상인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느긋하게 포식하는 고양이 한 마리 ©서병철
문득 갓 잡아 올린 생선처럼 내 가슴도 팔딱팔딱 뛰기 시작했다. 그 공간에 발을 들이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무뎌진 일상에 가려져 있던 ‘살아 있음’이라는 감각이 훅 하고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낯선 세계에서 나 자신을 이토록 생생하게 되돌아볼 수 있는 것, 이것이야말로 여행이 주는 진짜 매력이자,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원동력이 아닐까. 잔지바르 섬이 내게 준 선물도 바로 이것이었다.

낙담하는 대신, 다시 숨 쉬는 시장 한복판으로

여행을 마무리한 뒤 일상으로 돌아왔다. 나이가 든 사람은 든 사람대로, 젊은 사람은 젊은 사람대로의 고민을 마주한다. 즐거움보다 힘듦이란 감정이 더 자주 등장하는 것이 인생이다. 여전히 삶은 변화무쌍하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다. 때로는 사소한 시련 앞에서 현실을 원망하는 자기 모습이 못내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내가 너무 나약했던 것은 아닐까’ 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순간들이다.

리얼리즘 사진작가인 고(故) 최민식 작가는 ‘시장’을 "가장 정직한 노동이 있고, 위선이 없는 삶의 본질이 역동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증명하듯 원초적인 생명력이 팔딱이던 잔지바르 항의 새벽 바다가 다시금 눈앞에 고스란히 펼쳐진다.

다행인 것은 시장이 그 땅에만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굳이 멀리 아프리카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의 수산시장이나 재래시장 어디든 괜찮다. 그곳에는 오늘 하루를 온 힘을 다해 살아내려는 정직한 땀방울이 있다. 세상의 속도에 치여 나 혼자만 뒤처진 것 같고 삶의 의욕이 바닥을 보인다면, 주저앉아 낙담하는 대신 살아 숨 쉬는 시장의 한복판으로 걸어가 보자. 당신의 멈춰 있던 심장도 다시금 뜨겁게 뛰기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