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스타 첸 L&G자산운용 투자스튜어드십 공동총괄 및 AIGCC 한국 의장은 한국의 최근 지배구조 변화와 관련해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면서도 정책 개혁과 투자자 스튜어드십, 기업 인센티브를 강화하여 근본적 변화를 이끌 것을 주문했다.
[한경ESG] 글로벌 리더 - 트리스타 첸 L&G자산운용 글로벌 투자스튜어드십 총괄, 아시아 기후변화 투자자 그룹(AIGCC) 한국 워킹그룹 의장
사진=본인 제공
트리스타 첸은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리걸앤제너럴(Legal & General, L&G) 금융그룹 산하 L&G자산운용의 글로벌 투자 스튜어드십 공동총괄(Co-lead)을 맡고 있다. L&G자산운용은 영국의 연금·보험 자금을 운용하고 있는 유럽 최대 자산운용사 중 하나로서 국내 삼성전자, SK, 현대차 같은 대형 상장사 주식을 보유한 글로벌 기관투자자다.
첸은 L&G자산운용에서 장기적인 관점으로 인권, 기후, 사람, 거버넌스, 자연에 중점을 둔 기업 전반 주제별 및 부문별 인게이지먼트를 이끌고 있다. 아시아 스튜어드십 총괄에서 글로벌 총괄로 직무를 더 넓힌 첸은 최근 초대 아시아기후변화투자자그룹(AIGCC) 한국 의장을 맡으며 한국 시장에 대해 더욱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그는 <한경ESG>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의 지배구조 변화 정책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아직 변화를 지켜봐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한국의 상법 개정과 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은 매우 의미 있고 긍정적인 조치”라고 평가하면서도 “규제에만 머무르지 않고 한국 기업들이 지배구조와 기후 이슈를 실제 경영 전략과 자본배분 의사결정에 내재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 ESG 컨설팅과 자산운용 양측을 경험하는 커리어를 쌓았다. 기업가치 측면의 관점 변화가 있었나.
“ESG 컨설팅(ERM)과 투자 스튜어드십(L&G자산운용) 양측을 모두 경험하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이슈 자체가 아니라 의사결정의 관점이었다. 기업 인수합병(M&A) 중심의 컨설팅은 빠른 평가와 단기적인 시각을 필요로 해 마치 탁구에 가깝다. 반면 투자 스튜어드십은 훨씬 긴 시간축에서 이루어지며, 장기적이고 누적적인 영향력을 통해 성과를 만들어 가는 테니스에 가깝다. 기업이 직면한 ESG 리스크와 기회는 동일할 수 있지만 그 중요성, 시기, 자본배분 방식 등을 평가하는 접근법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자산운용사로서 우리는 고객을 대신해 투자자 권리를 행사하고, 자본을 배분하며, 재무적으로 중요한 리스크와 기회를 관리할 책임이 있다. L&G는 투자 스튜어드십을 통해 기후와 자연, 사회적 회복력, 기업지배구조와 관련된 시스템적 리스크를 다루며 장기적 가치를 보호하고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 올해부터 AIGCC의 한국 워킹그룹 의장을 맡게 되었는데 포부는.
“AIGCC의 한국 워킹그룹 의장을 맡게 된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다. 이는 L&G의 오랜 한국 시장 관여 경험과 함께 한국이 글로벌 투자자에게 점점 더 중요한 전략적 시장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반도체뿐 아니라 기술, 중공업, 자동차 산업 전반에서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기후 및 에너지 정책은 국내를 넘어 글로벌 경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현재 한국은 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 상법 개정, 스튜어드십 코드 개정, 지속가능성 공시 의무화, 에너지 정책 개혁 등 다양한 정책 변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중요한 시점에 있다. 한국 워킹그룹은 이러한 전환기에 투자자들의 관점을 조율하고 정책결정자들과 건설적으로 소통해 한국이 신뢰할 수 있고 투자 가능한 동시에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시장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개인적으로도 할머니가 한국분이셔서 한국과 인연이 있는 만큼 매우 의미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 최근 한국의 정책 개혁과 기업가치 프로그램 등을 어떻게 평가하나.
“글로벌 투자자 관점에서 최근 한국의 상법 개정과 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은 의미 있고 긍정적인 방향성을 가진 조치다. 이사의 충실의무를 확대하고 자본효율성에 대한 관심을 높인 것은 지배구조의 질과 주주가치가 중요하다는 분명한 신호를 시장에 전달하고 있으며, 실제로 이사회 차원의 투자자 인식 제고에도 기여하고 있다. 다만 규제만으로 경영진 행동의 근본적 변화를 이끌어 내기는 어렵다. 지속가능한 변화는 정책 개혁과 투자자 스튜어드십, 기업 인센티브가 서로를 강화할 때 가능하다. 이런 측면에서 향후 예정된 스튜어드십 코드 개정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국내 기관투자자들이 글로벌 투자자들과 함께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할 경우 보다 일관되고 건설적인 관여 문화가 정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 한국의 최근 정책은 일본과 비교할 때 어떤 점에서 비슷하고 다른가.
“일본은 참고할 만한 사례다. 일본은 지난 10년간 지배구조 및 스튜어드십 개혁과 함께 자본효율성 제고를 강하게 요구해 왔다. 도쿄증권거래소는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은 기업들에게 자본비용을 상회하는 수익률을 달성하기 위한 계획을 설명하도록 요구했고, 이사회 독립성 강화와 공시 개선, 지속적인 투자자 대화가 결합되면서 개혁이 형식적 변화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 변화로 이어졌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이사회 독립성 강화, 자본배분의 투명성 제고, 지배구조와 지속가능성 이슈를 기업 전략 및 성과와 보다 긴밀하게 연결하는 측면에서 개선 여지가 남아 있다. 이러한 변화가 이뤄질 때 현재의 정책 모멘텀은 기업 행동의 실질적 변화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 실제 L&G자산운용의 투자자 관여가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진 사례를 소개한다면.
“대표적인 사례로는 L&G의 기후 영향 서약(Climate Impact Pledge, CIP) 프로그램을 통해 진행한 중국 멍뉴유업(China Mengniu Dairy)과의 관여 활동을 들 수 있다. 지속적인 관여와 단계적 압박을 통해 멍뉴유업은 산림파괴 관련 거버넌스를 강화했고, 자연 관련 재무정보공개협의체(TNFD)에 부합하는 자연 관련 공시를 도입했으며, 기후 및 자연 리스크를 기업 전략에 보다 효과적으로 통합하는 성과를 거뒀다. 한국 기업은 기업설명회(IR) 부서와의 소통은 비교적 원활한 편이지만, 최고경영진이나 이사회와의 직접적인 대화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경우가 많다. 또한 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이나 최근 상법 개정과 같은 정책 변화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만 앞으로의 과제는 규제 준수 자체에 머무르지 않고 지배구조와 기후 이슈를 실제 경영 전략과 자본배분 의사결정에 내재화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형식적인 대응에서 벗어나 기업 경쟁력과 장기 가치 창출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변화가 필요하다.”
현재 L&G의 CIP 프로그램에서 한국 기업의 순위는 어떠한가.
“L&G의 기후 영향 서약(CIP)은 정량평가와 정성적 관여를 결합한 체계로 운영된다. 전 세계 5000개 이상의 기업을 대상으로 20개 기후 핵심 산업군에 대해 일관된 최소 기대 수준을 적용하며 한국 기업도 평가 대상에 포함된다. 평가는 거버넌스, 전략, 리스크 관리, 지표 및 목표 등 네 가지 영역으로 이뤄지며 80개 이상의 데이터 포인트와 자체 기후모델링 결과를 활용한다. 또한 신호등 체계를 통해 공시의 질과 신뢰성을 평가하고 있으며 일부 평가는 의결권 행사에도 반영된다. 한국은 현재 평균 CIP 점수가 낮은 국가 중 하나지만 동시에 가장 빠르게 개선되고 있는 시장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점수가 낮은 기업은 대체로 의지나 목표가 부족해서라기보다는 투자 의사 결정에 유용한 기후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는 전환계획과 자본지출 간의 연계 부족, 스코프3(가치사슬 전반의 배출) 리스크 관리에 대한 설명 부족, 이사회 차원의 적극적인 감독 근거 부족 등이 지적된다. 이는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 기반 지속가능성 공시 체계로의 보다 빠른 전환 필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 최근 한국이 논의 중인 지속가능성 공시 기준을 평가한다면.
“글로벌 투자자 관점에서 한국이 ISSB 기반 기후공시 기준을 도입하고 국제회계기준(IFRS) S1(일반)과 S2(기후)를 중심으로 제도를 설계한 것은 매우 긍정적인 진전으로 평가된다. 특히 대형 상장기업부터 적용하기로 한 것은 현실적이면서도 효과적인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여전히 보완이 필요한 부분도 존재한다. 현재 적용 범위는 MSCI코리아 지수 구성 종목의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으며, 정유·조선·배터리 소재와 같은 전환 핵심 산업 일부가 제외돼 있다. 반면 금융기관 비중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또한 2029년 이후 적용 범위를 어떻게 확대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로드맵도 아직 제시되지 않은 상태다. 반면 기업들의 준비 수준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높다고 판단한다. 이미 상당수 한국 대기업들이 스코프3 배출량을 자발적으로 공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책 방향성과 적용 범위 확대 계획이 보다 명확해지고 시행 예측 가능성이 높아진다면 공시 정보의 투자 활용도가 크게 높아질 것이며, 자본배분과 배출권거래제 운영, 한국의 전환 목표 달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 한국 이사회가 올해 가장 중요하게 논의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
“기후 거버넌스를 논하기에 앞서 기업 지배구조 자체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다. 글로벌 투자자 관점에서 현재 한국 이사회가 가장 중요하게 다뤄야 할 과제는 최근 지배구조 개혁이 형식적인 준수에 그치지 않고 실제 의사결정 과정에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최근 이사 충실의무 관련 제도 변화는 이사회가 기후 및 전환 리스크와 같은 전략적 위험이 장기 기업가치와 주주 성과에 미치는 영향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따라서 기후 리스크는 단순한 공시나 보고의 문제가 아니라 전략과 자본배분의 핵심 의제로 다뤄져야 한다. 투자자들은 기업의 전환계획이 신뢰할 수 있는지, 충분한 재원을 확보하고 있는지, 정책 및 시장 환경과 부합하는지, 그리고 경영진 보상체계를 포함해 이사회 차원에서 적절히 감독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자 한다. 기후, 지배구조, 인권 문제는 결국 장기 기업가치와 자본비용(cost of capital)의 문제다.”
- 한국은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앞두고 있다. 투자자가 원하는 신호는.
“투자자 관점에서 에너지 전환은 목표의 수준만큼이나 신뢰성과 실행 가능성이 중요하다. 최근 한국은 일부 긍정적인 정책 신호를 제시해 왔지만 에너지 시장의 구조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명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로드맵은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현재 시장 구조, 한국전력의 역할,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의존도, 재생에너지 확대를 가로막는 제약 등은 여전히 투자자들의 우려 요인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문제는 전환의 속도와 실현 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는 단순히 기후목표 달성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과도 직결된다. 특히 RE100(재생에너지 100% 조달)에 참여하는 수출기업들은 재생에너지 조달과 전력망 병목 현상을 가장 큰 제약 요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 재생에너지 조달에 대한 정책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것인가.
“국내에서 충분한 재생에너지 공급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글로벌 고객사와 공급망, 자본시장 접근성 측면에서 경쟁력이 약화될 위험도 존재한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기대하는 것은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명확하고 현실적인 경로다. 이를 위해서는 전력망 투자, 인허가 개혁, 전력시장 개혁 등이 함께 추진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정책 일관성도 중요하다. 장기 투자자들은 점진적인 전환은 수용할 수 있지만 정책의 변동성과 상충된 신호에는 매우 민감하다. 에너지 안보를 고려하면서도 석탄을 중심으로 한 화석연료 감축 방향을 명확히 제시하고, 에너지·기후·금융 정책 간 정합성을 높인다면 한국은 보다 신뢰할 수 있는 전환시장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