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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불후의 성역’ 허물고 ‘소멸의 시학’을 세웠다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展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5월 3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5월 3일까지
부패와 소멸이 내쫓긴 불후의 성역을 찾은 관람객들은 종종 이런 물음을 던진다. ‘미술은 왜 영원해야 할까.’ 그도 그럴 것이 사라지고 작별한다는 게 꼭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곰팡이가 피고, 부서지고, 언젠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순환의 이치다. 김치나 막걸리의 발효처럼 썩는 대신 삭는 개념으로 접근하면 소멸은 또 다른 탄성, 혹은 농익음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순백의 성역을 뒤덮은 흙더미
국내외 15인(팀)의 회화, 조각, 설치 등 50여 점이 관객과 만난다. 전시를 기획한 이주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의 말을 빌리면 “언젠가 썩어 갈 운명을 시인하는 작품, 차라리 무엇도 남기지 않기로 마음먹은 작품, 자신의 분해를 공연히 상연하는 작품들”이다.
이은재의 그림 ‘이제 근대 모서리를 닦아라-서문’(2023)부터가 그렇다. 이 작품은 누가 팔아달라고 사정해도 작가가 “팔 수 없다”고 거절하는 그림이다. 나무 패널에 달걀노른자를 재료 삼아 그렸기 때문이다. 언뜻 중세 유럽의 템페라 기법을 부린 듯하지만, 부패를 방지하는 안료를 섞지 않는 반항을 부렸다. 서서히 바래갈 운명이라 오래 두고 볼 그림이 아닌 것이다.
2년 전 베니스 비엔날레 일본관 작가로 선정됐던 유코 모리의 ‘분해’(2025)는 부패와 소멸이 또 다른 생성의 시발점임을 암시한다. 죽은 사람의 몸이 썩어가는 아홉 단계를 그린 일본 전통 불화 ‘구상도’에서 영감을 받은 이 작품은 익어가는(부패해 가는) 과일에 전극을 꽂아 수분 변화를 빛의 깜박임, 소리의 음정의 높이로 보여준다. 물질에 깃든 에너지를 새롭게 환기하는 셈이다.
전시는 여느 미술관에서 볼 수 없는 작품을 눈에 담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불후를 유지하려 시간과 돈을 쏟는 매뉴얼이 친환경적 창작을 지향하고,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그린 뮤지엄’ 등 21세기 들어 미술관이 맞닥뜨린 새로운 과제와 상충할 수 있음을 느낄 때 비로소 전시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약간의 이해를 돕자면, 이 학예연구사는 작가그룹 라이스 브루잉 시스터즈 클럽(RBSC)이 2023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에 선보였던 ‘우무피막’(2023)이 기획 계기가 됐다고 밝힌다. 부산 영도 앞바다에서 채취한 우뭇가사리로 만든 설치 작품인데 지속가능한 재료인데다, 해녀 노동의 산물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또 전시가 종료되면 낙동강 하구로 돌아가 물살이의 먹이가 되는 친환경 개념을 아울렀다. 그런데 정작 미술관에서 반입에 난색을 표하는 ‘문제적 작품’ 취급을 받았다고 했다.
이 학예연구사는 “곰팡이가 자라 미술관 전체를 오염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 반입까지 상당한 논란이 있었다는 것”이라며 “미술관은 지속 가능성을 지향하는데, 막상 자연에서 왔고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작품은 들어오기 곤란하다니 모순이었다”고 설명했다.
시간과 여유가 허락한다면 전시는 두 번 봐도 좋다. 미술관 정원에 놓인 고사리 작가의 ‘초(草)사람’ 때문이다. 잡초를 베어 눈사람 형태로 뭉쳤다. 3개월여의 전시 동안 햇살과 비, 바람을 맞으며 조금씩 분해돼 삭아갈 예정이다. 전시는 5월 3일까지.
유승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