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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말차 생산지 '우지'…그 초록빛 시간 속으로 [김현주의 재팬코드]
트렌디한 녹색 음료 '말차'에 담긴 시간과 정성
몸과 마음의 균형을 찾으려는 시대상 반영
우지 여행에서 느린 삶의 태도 느낄 수 있어
몸과 마음의 균형을 찾으려는 시대상 반영
우지 여행에서 느린 삶의 태도 느낄 수 있어
음료로서의 말차는 커피보다 부드럽고 에너지 드링크보다 오래 간다. 몸과 마음의 균형을 찾으려는 이 시대에, 말차는 어느새 가장 ‘트렌디하고 건강한 색’이 됐다. 초록의 향이 나는 도시, 일본 교토의 남쪽 우지(宇治)를 향했다.
아침의 교토역은 여행자들의 열기로 가득했다. 도시의 바람 속엔 커피 향이 섞여 있었지만, 그 속에서 나는 다른 향을 찾고 있었다. 커피보다 느리고, 물보다 깊은 향. 열차를 타고 약 30분쯤 남쪽으로 내려가자, 도시의 색이 서서히 바뀌었다. 논 사이로 안개가 깔리고, 멀리서 초록빛 지붕이 이어진다. 우지(宇治)에 도착했을 때, 첫인상은 하나였다. ‘공기가 다르다.’
세계 3대 말차 생산지 '우지'를 거닐다
우지는 교토에서 약 30분 거리에 있는 세계적인 말차 산지다. 세계 말차 트렌드가 이어지는 지금, 교토를 방문한다면 우지를 추천한다. 특히 야외를 걷는 일이 많아 한국보다 기온이 다소 높은 시기에는 선선한 바람이 불 때 돌아보면 쾌적하다. 우지는 연평균 기온이 비교적 온화해 차 재배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우지에서는 차즈나(茶づな), 우지 역사 공원, 뵤도인, 말차 거리 등 주요 스폿을 도보로 이동하며 둘러볼 수 있다.
1층 전시관에는 말차의 역사부터 재배 과정, 우지의 차 문화까지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중국에서 시작된 말차가 어떻게 일본으로 건너왔고, 우지에서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차나무의 성장 과정과 우리가 마시는 말차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차는 카멜리아 시넨시스라는 차나무에서 얻어진다. 신기하게도 이 찻잎은 한가지이지만 녹차, 말차, 홍차 등 다양한 차로 탄생한다. 가장 대표적으로 녹색을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차는 녹차와 말차로 두 차의 가장 큰 차이는 색과 형태이다. 녹차는 말린 찻잎을 물에 우려먹는 차로 옅은 연두색의 차를 마신다. 말차는 덖은 말차를 가루형태로 만들어 물에 타 먹는 것으로 짙은 녹색의 차를 마시게된다. 찻잎 전체를 가루로 만들어 물에 타 마시기 때문에 잎에 있는 카테킨, 카페인 등의 영양소를 모두 섭취할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그만큼 향산화 성분을 섭취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 슈퍼푸드로 인정받으면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같은 차나무에서 나는 만큼 어떤 차를 만들지에 따라 재배방식도 달라진다. 차나무는 햇빛을 가려 키우는 덮개 재배(그늘 재배)로 기른다. 수확 전 약 20일 정도 차밭에 검은 천을 씌워 그늘에서 키우는데, 이렇게 하면 찻잎이 햇빛을 찾으려 더 많은 엽록소를 만들어 더 진한 초록색과 감칠맛을 낸다. 이 방식이 말차의 특징 중 하나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다양한 디저트에 말차를 사용해 녹색이 갖는 특징적인 맛을 더욱 끌어내고 있다.
체험관에서는 지역 어르신들이 다구를 사용해 한창 말차를 체험하고 있었다. 다구를 다루는 손놀림과 표정에서 생활로서의 말차 문화가 읽혔다.
“말차는 물에 타는 게 아니라 공기를 머금게 하는 거예요”라고 설명하는 선생님의 목소리를 따라 차선으로 말차를 함께 젓는 모습, 문화를 존중하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잔 위로 초록의 거품이 일어나는 순간, 공기 속의 시간마저 느려진 듯했다. 일본의 차 문화는 단지 음료가 아니라 속도를 조절하고 천천히 시간을 음미하는 ‘선’의 행위인 것이다.
차즈나에서 우지강을 건너면 뵤도인(平等院) 이 나온다. 세계유산인 뵤도인은 일본의 10엔 동전과 1만 엔 지폐에 그려진 건축물로도 유명하다. 이 지역은 여러 차례 전란을 겪었지만 아미타당은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어 11세기 귀족문화의 건축과 회화, 정원 양식을 엿볼 수 있다.
뵤도인 정원에 들어서면 물에 비친 봉황당이 잔잔히 자리하고 있다. 천년의 시간을 되새기며 걷다 보면 정원의 돌길 사이로 스며드는 흙과 물, 비의 냄새가 감각을 채운다.
초록빛으로 물든 우지 말차거리
각 가게는 고유의 말차 배합과 농도를 내세운다. 같은 메뉴라도 집집마다 맛이 다르기 때문에 우지 말차 거리에서 다양한 집의 맛을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다른 가게에서는 말차를 직접 갈아보는 체험도 제공한다. 작은 맷돌에 건조 찻잎을 올려 천천히 돌리면 진한 초록 가루가 나온다. 직접 간 신선한 말차는 시판 제품과 다른 향과 풍미를 선사한다.
길을 걷다 보면 의외의 곳에서도 말차를 만난다. 빵집의 말차 크림빵, 화과자 가게의 말차 양갱, 심지어 우지 말차 타코야키까지. 한 가게에서 발견한 말차 소금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말차 가루를 소금과 섞어 만든 이 제품은 튀김이나 구이에 찍어 먹을 때 새로운 풍미를 준다. 말차 맥주, 말차 사케도 판매되고, 말차 성분을 넣은 화장품(비누·로션·마스크팩)까지 다양하다. 여기서는 말차가 단순한 음료를 넘어 지역 산업과 일상 전반에 스며들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한국과는 무엇이 다를까. 한국에도 보성·하동·제주 등 차 생산지는 많지만, 일상적 소비의 비중에서는 아직도 커피 비중이 더 큰 편이다. 그래서 ‘왜 일본은 여전히 말차를 즐기는가’라는 물음이 생겼고, 우지에서 그 이유를 직접 체감했다. 말차는 음료를 넘어 삶의 일부이고, 느림의 미학이며 정성의 결과물이었다.
우지의 오후는 느리게 흘렀다. 햇살이 강가 표면에 부딪혀 반짝였고, 바람은 말차 향을 실어 나르며 머리카락을 스쳤다. 이 고요한 도시는 ‘집중’이라는 단어가 어울렸다. 무엇이든 하나에 몰입하는 순간, 마음은 단순해진다. 그 단순함이 일본 사람들이 말차를 사랑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돌아오는 기차 안, 머리카락에 은은한 찻잎 냄새가 남아 있는 느낌이었다. 관광 가이드북의 정보보다 이 도시의 진짜 초록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었다. 찻잎을 말리는 손끝, 비에 젖은 흙의 냄새, 말없이 차를 올리는 노부인의 손목. 그런 느린 움직임들이 우지를 완성하고 있었다.
우지를 떠나며 생각했다. 일본의 말차가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이유는 단지 맛 때문만은 아니다. 그 뒤에 흐르는 시간, 숨을 고르는 방식, 누군가의 삶의 속도가 함께 담겨 있기 때문이다.
말차는 더 이상 전통 속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지금의 리듬이 되었고, 새로운 세대의 트렌드 언어가 되었다. 커피의 속도를 잠시 멈추게 하는 초록빛, 그 안에는 천년의 시간이 고요히 녹아 있었다.
김현주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