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보는 마음이 여러모로 불안하다. 냄비의 국숫가락이 체를 스치기만 한 뒤 그대로 미끄러져 싱크대 바닥으로 직행해 버릴 것 같다. 작정하고 일종의 위태로운 상황을 연출하고자 그렇게 그린 것인지, 아니면 원래 작가가 실생활에서 저렇게 대강 면을 삶고 체로 거르는지 헤아리기 약간 어렵다. 하지만 어떤 쪽이라도 작품 속 상황이 조리의 기본에 미뤄 볼 때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만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일단 면을 삶는 냄비부터 너무 작다. 그냥 작품에 보이는 것만으로 미뤄 짐작하건대 작은 냄비에 적어도 2인분, 즉 200그램은 되는 면을 욱여 넣고 삶은 것 같은데 아무래도 조리의 효율이 떨어진다. 스티븐 볼로(1988~)라는 미국인 작가의 작품임을 감안하면 면은 높은 확률로 파스타, 그것도 스파게티일 텐데 삶아 먹는 사람이라면 안다.
이를 막기 위한 비율도 있다. 대략 면 100그램에 물 1~1.5리터 정도로 잡는데, 앞서 말했듯 삶으면서 전분도 적당히 헹궈낸다고 생각하고 충분히 쓰는 게 좋다. 여기에서 차이가 있다면 단단한 듀룸 밀로 뽑은 파스타는 면 자체에 소금간이 안 되어 있고, 소면 등 연한 밀 반죽을 늘려 만든 제품은 간이 되어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파스타를 삶을 때에는 물 1리터당 꽃소금 1~2작은술을 더해 익히며 간도 같이 해준다.
냄비를 넓은 걸로 바꾸고 물을 넉넉하게 잡아 삶으면 상황이 나아지는 걸까? 그렇긴 할 텐데 위태로움은 아예 가시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파스타가 익고 있는 끓는 물이 담긴 냄비를 한 손으로 들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정석이라면 작품의 제목인 ‘체(Strainer)’는 사실 보이지 않아야 맞다. 싱크대 바닥에 올려 놓고 두 손으로 파스타 냄비를 최대한 꽉 잡은 뒤 부어 물기를 빼야 안전하고 확실하다.
그러니까 이 작품이 좀 더 요리의 기본 및 안전에 충실해지려면 체 자체가 눈에 띄지 않아야 한다는 건데, 그럼 작품의 제목이 사라져 버리므로 여러모로 난감해진다. 그렇다, 사실 이 작품은 보고 있는 것만으로 상당히 난감하다. 작은 냄비에 가득 채워 삶는 면도 그렇고 바닥만 뚫려 물기가 잘 안 빠질 것 같은 체도 조리 도구에 대한 책을 쓴 내가 보는 차원에서는 디자인 실격이다. 여러 모로 웃기는 작품이다.
이처럼 용도와 상황에 맞지 않는 용량 혹은 크기의 조리 도구를 쓸 때의 진짜 문제는 중간 상태를 추구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우리에게는 짜파게티 같은 라면으로 매우 익숙하지만 사실 파스타 또한 면 삶은 물을 조금 남겨 두는 게 정석이다. 그래야 삶은 면을 소스에 더해 버무릴 때 조금 뻑뻑하다 싶으면 간이 맞고 전분이 함유된 면수를 더해 조절할 수 있다.
그리고 면을 체에 받쳐 물기를 완전히 덜어낸 뒤 냄비든 대접이든 옮겨 담고 이후의 조리를 이어나가면 된다. 사실 이 요령은 파스타보다는 짜파게티에 훨씬 유용하다. 1984년 3월에 출시됐으니 사십 년 이상 끓여 먹었지만 아직도 물의 양을 잘 못 맞출 때가 있다. 하지만 미리 물을 옮겨 담아 두고 나머지를 다 버린 다음 필요한 만큼 더하면 편하다. 짜파게티 1개당 8스푼이고 1스푼이 15ml이니 120ml가 정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