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는 긴 여름휴가가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는 9월, 10월에 브라드리(Braderie)라는 행사가 열린다. 브라드리는 여름 동안 팔고 남은 물건을 세일 가격에 내놓는 큰 할인 행사이다.

브라드리라는 말은 프랑스어 브라데(Brader)에서 온 말인데, 이는 '헐값에 팔다' 혹은 '손해 보고 팔다'라는 뜻이다.

이 행사는 주로 노천 광장이나 도로에서 열리며, 상점들이 정품을 저렴하게 판매하기도 하고 중고품 장터나 벼룩시장 형태로 진행된다. 또한 거리 공연과 음악회,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이 함께 열려 도시 전체가 축제 분위기에 휩싸인다.
프랑스 Lille에서 매년 9월에 열리는 브라드리 모습, 2024 / 사진. © F.Giltay / FTV
프랑스 Lille에서 매년 9월에 열리는 브라드리 모습, 2024 / 사진. © F.Giltay / FTV
릴의 대규모 브라드리

매년 9월 첫째 주말이면 프랑스 북부 도시 릴에서는 세계 최대 규모의 벼룩시장과 도시 축제가 열린다. 다채로운 색감과 화려한 건축미로 가득한 플랑드르 도시인 릴에서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이어온 대규모 브라드리(La grande Braderie de Lille)가 올해도 어김없이 9월 6일과 7일에 개최되었다.

릴 브라드리의 기원은 12~13세기 중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릴에서는 가을 수확 철을 맞아 상인과 농민들이 거리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이 열렸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시장은 단순한 재래시장을 넘어 골동품, 의류, 가정용품 등을 판매하는 유럽 최대 규모의 벼룩시장으로 발전하였다. 20세기에 들어서는 관광객과 시민을 위한 축제로 자리 잡아 먹거리, 음악, 거리 공연 등이 더해지면서 문화적이자 사회적인 큰 연중행사로 자리 잡았다.
Edouard Boldoduc, 릴 브라드리, 1893 / 사진. © Lille 시립 도서관
Edouard Boldoduc, 릴 브라드리, 1893 / 사진. © Lille 시립 도서관
릴 브라드리에는 매년 1만여 명의 상인과 골동품상, 시민들이 참여해 거리에 물건을 내놓고, 프랑스 전역과 해외에서 약 200만 명의 방문객이 이곳을 찾는다. 무려 100km에 달하는 도로에 장터가 펼쳐질 만큼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이 벼룩시장은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할 뿐 아니라, 프랑스 안팎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축제 중 하나로 손꼽힌다. 릴 브라드리에서는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고, 다양한 빈티지와 레트로 아이템을 찾아내며, 무엇보다도 프랑스 북부 지방 특유의 따뜻하고 친근한 분위기 속에서 축제의 열기를 만끽할 수 있다.

또한 릴을 대표하는 별미인 홍합 요리도 빼놓을 수 없다. 물 프리트(Moules frites)라 불리는 이 홍합 요리는 감자튀김과 곁들여 먹는데, 브라드리가 열리는 주말 동안에는 식당 앞에 먹고 난 홍합 껍데기를 산처럼 쌓아두는 전통이 있다. 매년 릴의 레스토랑, 맥줏집, 카페에서는 약 500톤의 홍합과 30톤의 감자튀김이 소비된다고 한다. 주최 측에서는 홍합 껍데기가 가장 많이 쌓인 레스토랑에게 상을 주기도 한다.
레스토랑 앞에 쌓인 홍합 껍데기 / 사진. © Philippe Huguen ©AFP
레스토랑 앞에 쌓인 홍합 껍데기 / 사진. © Philippe Huguen ©AFP
친구와 가족이 함께 하는 브라드리 창고 세일

며칠 전, 파리에서 서쪽으로 약 250km 떨어진 작은 도시에 사는 친구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그 지역에서는 매년 9월 첫째 주말에 지역 상업, 산업, 공예 연합이 주최하는 브라드리가 열리는데, 올해로 벌써 56회를 맞이한다고 한다.

이 행사에는 전문 앤티크, 빈티지 상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1~3만 원 정도의 참가비만 내면 누구나 판매에 참여할 수 있다. 방문객들은 다양한 앤티크와 빈티지 물품, 중고품은 물론 지역 특산 와인과 농산물을 구매할 수 있으며, 먹고 마시며 활기찬 주말을 보낸다.
La Ferté Macé 시청 앞에 설치된 Solidar’momes 매대, 판매액은 전 세계 불쌍한 어린이들에게 전달된다. 2025 / 사진 © 정연아
La Ferté Macé 시청 앞에 설치된 Solidar’momes 매대, 판매액은 전 세계 불쌍한 어린이들에게 전달된다. 2025 / 사진 © 정연아
친구는 3년 전부터 이 행사에 참여해 왔는데, 나에게 판매를 도와주지 않겠냐고 제안하여 주말여행 겸 그곳에 다녀왔다. 브라드리는 물건을 팔아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기도 하지만, 쓰지 않는 물건을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주거나 저렴하게 판매하고, 앤티크 애호가들과 교류하며 서로 배우고 정보를 나누는 기회이기도 하다.
La Ferté Macé 가라지 세일에 내놓은 앤티크, 2025 / 사진 © 정연아
La Ferté Macé 가라지 세일에 내놓은 앤티크, 2025 / 사진 © 정연아
친구와 판매할 물건들을 매대에 진열하고, 흥정을 즐기기 위해 일부러 조금 높게 가격을 매기며 장사 놀이 준비를 마치고 가라지 세일 오픈전에 브라드리를 한 바퀴 돌아보며 보물찾기를 시작했다. 시청 앞과 성당 주변의 크고 작은 매대를 지나 인형 박물관 앞에 이르렀을 때, 드디어 눈에 띄는 보물을 발견했다.

평생 프렌치 인테리어와 가구 복원 아틀리에를 운영했던 분이 은퇴하며, 작업실에 남아 있던 커튼, 소파, 의자 덮개 등 인테리어와 가구에 쓰이는 원단을 판매하고 있었다. 이런 원단들은 이제는 럭셔리 브랜드의 한정판 컬렉션에 쓰이거나, 전수할 기술자가 부족해 아틀리에가 문을 닫으면서 점점 구하기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 희귀하고 값비싼 원단들을 단돈 5유로에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브라드리의 가장 큰 재미 중 하나이다.
La Ferté Macé 원단 판매대, 2025 / 사진 © 정연아
La Ferté Macé 원단 판매대, 2025 / 사진 © 정연아
매년 약 400명이 참가하고, 주차가 어려울 정도로 활기가 넘치던 브라드리는 올해 참가자와 방문객이 절반가량으로 현저히 줄었다고 한다. 이곳에서도 프랑스의 어려운 경제 상황이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것 같아 무척 안타까웠다.

프랑스 문화유산에 열정을 가진 사람들

브라드리의 또 다른 매력은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판매자와 구매자는 가격을 흥정하며, 앤티크 구매와 복원에 관한 지식과 노하우를 서로 공유한다. 이 과정에서 대화는 끊이지 않고 흥미롭게 이어진다.

행사 중 특히 인상 깊었던 만남이 있었다. 한 남자 손님에게 루이 15세 양식의 의자를 소개했더니, 그 손님은 네오 루이 15세 양식이라고 바로잡아 주었고 대화 속에서 프랑스 문화유산에 대한 서로의 열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브라드리에 나를 초대해 준 친구는 현재 160년 된 샤토(Château)라고 불리는 귀족과 부유층의 대저택을 사서 10년 넘게 복원하며 살고 있다. 지붕 공사, 배관, 전기 공사 등 집 전체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프랑스 샤토에 산다>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 이야기를 전하자, 이 남자 손님은 자신도 17세기 대저택인 마누와(Manoir)를 구입해 지금 직접 복원 중이라며 원하면 현장을 구경시켜 주겠다고 우리를 초대했다. 프랑스 사람들은 첫 만남에도 서로의 관심사가 같으면 곧바로 집에 초대하거나 금방 가까워진다.

브라드리를 마감하고 방문한 마누와에는 30대 젊은 부부가 17세기 양식을 최대한 지켜가며 복원에 전념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고성 복원에는 10년 이상 긴 시간과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 복원이 끝나더라도 지속적인 보존 관리가 뒤따라야 하므로, 진정한 열정과 노력 그리고 복원 비용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프랑스 전역에는 수많은 고성이 남아 있지만, 복원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방치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반면, 프랑스 건축과 역사에 대한 애정을 갖고 그것을 지키려는 열정으로 수십 년에 걸쳐 복원에 나서는 사례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복원 공사 중인 17세기 마누와 / 사진 © 정연아
복원 공사 중인 17세기 마누와 / 사진 © 정연아
노르망디=정연아 패션&라이프스타일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