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위대한 예술가들을 '자유로운 창작자'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의 붓은 교황과 군주의 주문에 따라 움직였다. 성당의 벽화는 교회의 권위를 확장했고, 궁전의 장식은 군주의 권력을 과시했다. 미켈란젤로나 라파엘로의 걸작들은 아름다움을 내뿜으면서도 권력의 질서를 내재하고 있다.

특히 건축은 그 속성이 더욱 강하다. 거대 자본을 가진 발주자는 특정 목적의 공간을 요구하고, 건축가는 그것을 조율해 도면으로 표현한다. 그렇기에 건축가가 순전히 개인적 목적과 만족만을 위해 건물을 짓는 일은 거의 없다. 특히 건축은 거대한 규모와 영속성 때문에 권력의 유혹에 더욱 취약하다.

영화 <1987>에 등장하는 남영동 대공분실은 바로 그 유혹의 산물이다. 대공분실은 공산주의 세력과 반체제 인사들을 색출하기 위해 설치된 수사기관을 말한다. 국가 안보와 질서를 내세워 세워진 이 건축물은 곧 폭력의 현장이 되었다. 사회적 혼란을 일으킨다는 명목으로 불법 연행된 수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고문을 당했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하나의 시선으로는 읽어낼 수 없는 건축물이다. 때문에 권력자, 건축가, 피해자 그리고 오늘의 우리까지 각각의 시선으로 공간을 읽어내고자 한다.
영화 <1987> 스틸컷. 해양연구소로 위장된 남영동 대공분실로 들어가는 응급차 / 사진. ©넷플릭스
영화 <1987> 스틸컷. 해양연구소로 위장된 남영동 대공분실로 들어가는 응급차 / 사진. ©넷플릭스
권력자의 시선 : 대공수사처장의 일상

“국가가 무너져선 안 된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운다. 체제를 무너뜨리려는 자는 어디든 숨어들 수 있다. 놈들을 관리하고 처벌해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가 활동할 건물이 있어야겠지. 내부 공간은 반듯해야 해. 한눈에 모든 것이 보여야 통제가 쉬우니까. 창은 불필요하다. 희망은 방해만 될 뿐, 필요한 건 침묵과 질서다. 위치는 남영동이 좋겠다. 놈들을 빠르게 잡아들일 수 있고, 남영역의 전철 소음은 우리를 가려줄 것이니. 물론 대외적으로는 이곳의 정체를 숨겨야겠지. 그렇다면 보안 시설인 연구소로 하자. 그래, '국제 해양연구소'가 좋겠다. 두꺼운 철문으로 세상과 단절된, 나만의 요새.”

영화 <1987>은 바로 그 ‘해양연구소’ 간판을 단 건물로 들어서는 구급차 장면으로 시작된다. 1987년 1월 14일, 회색빛 건물 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유신 체제는 ‘국가 안보’를 내세워 반대자를 색출했고 무고한 이들에게 빨갱이 낙인을 씌워 위험을 제거해 나갔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그 폭력의 최전선이었다. 그러나 시민 대부분은 이곳의 정체조차 몰랐다. 건축은 진실을 가리는 위장막이자 폭력을 제도화하는 장치였다.
영화 <1987> 스틸컷. “대공업뭅니다. 찍으십쇼”  / 사진. ©넷플릭스
영화 <1987> 스틸컷. “대공업뭅니다. 찍으십쇼” / 사진. ©넷플릭스
권력은 체제 유지를 위해 온갖 행위를 합리화했고, 남영동은 그 무대가 되었다. 하지만 이곳에는 또 다른 풍경도 공존했다. 이곳의 총책임자 대공수사처장은 누군가의 비명 앞에서 테니스를 치며 여가를 즐겼고 대문 앞에 몰린 피해자 가족을 성가시게 여기며 면도를 이어갔다. 이곳은 누군가에겐 지옥이었고, 다른 누군가에겐 일상이었다.

이 모순은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속 장교가 담장 너머 유대인의 절규에 무감각했던 것처럼 남영동의 권력자들도 절규를 일상의 배경음으로 삼았다. 그들은 스스로를 죄인으로 여기지 않는 무감각한 행위자들이었다.
영화 <1987> 스틸컷. 훤히 불이 켜진 조사실(5층)과 테니스 치는 권력자들 / 사진. ©넷플릭스
영화 <1987> 스틸컷. 훤히 불이 켜진 조사실(5층)과 테니스 치는 권력자들 / 사진. ©넷플릭스
영화 <1987> 스틸컷. 마당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반장실(3층)에서의 일상 / 사진. ©넷플릭스
영화 <1987> 스틸컷. 마당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반장실(3층)에서의 일상 / 사진. ©넷플릭스
건축가의 시선 : 김수근의 설계

“건축가는 발주자의 요구를 도면으로 표현하는 사람이다. 남영동 대공분실의 대지는 2000평이 조금 안 되는 면적. 철로와 맞닿은 서측은 놔두고 동측으로 진입하도록 계획하자. 건물은 남향으로, 중앙 마당을 ㄱ자로 감싸는 배치가 좋겠다. 테니스장은 햇빛이 잘 드는 남측에 두자. 요구된 공간들을 배치하기 위해선 5층이 적절하겠다. 나의 건축사사무소 ‘공간사옥’과 같은 층수다. 검은 벽돌과 나선계단 등 나에게 익숙한 언어로 디자인하자. 5층으로 바로 연결되는 나선계단의 출입문은 건물 뒤편으로 빼 별도의 동선으로 만들 것이다. 면회실, 숙직실, 회의실, 실장실, 조사실… 기능에 따라 방을 나누고 동선을 합리화하자. 이것이 나의 역할이다.”

김수근은 워커힐 호텔, 자유센터, 국립부여박물관 등 국가 주도 프로젝트로 이름을 알린 건축계의 거장이다. 남영동 대공분실 역시 그 연속선상의 프로젝트로서 그는 권력의 공간을 충실히 구현했다. 1~4층은 직원들의 업무 공간으로, 5층은 끌려온 사람들을 심문하는 조사실로 계획했다. 특히 조사실의 좁은 창, 고정된 가구, 철망으로 덮인 형광등, 벽면 흡음판, 외시경과 감시 장치 그리고 욕조까지. 조사 업무를 위한 합리적 배치라는 미명 아래 완성된 5층 조사실은 고문의 무대가 되었다.
영화 <1987> 스틸컷. 연행해 온 사람을 발로 차 5층 조사실 안으로 집어넣는 경찰 / 사진. ©넷플릭스
영화 <1987> 스틸컷. 연행해 온 사람을 발로 차 5층 조사실 안으로 집어넣는 경찰 / 사진. ©넷플릭스
1976년 박정희 정권 말기, 김수근은 남영동 대공분실의 설계를 맡는다. 고문실을 설계하라는 노골적인 지시는 없었겠지만 그는 남영동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김수근은 서울대와 도쿄대를 거친 엘리트 건축가이자, 남산 국회의사당 설계 당선을 시작으로 많은 국가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정계와 관계를 맺어온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4·19 혁명과 5.16 군사정변을 목격한 그가 권력의 칼날이 어떻게 휘둘려왔는지 모를 리 없었다.

그렇다면 건축가로서 그는 어떻게 대응했어야 했을까. 그가 거절했더라도 권력은 다른 건축가를 찾아 결국 그 건물을 세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의도를 벗어난 부분이 있다면 고치고 또 고쳐 본래의 목적대로 건물을 완성했을 것이다. 김수근은 한국 건축사에서의 업적과 함께 남영동이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함께 짊어지고 있다. 건축은 사회적 요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남영동은 지금도 그 질문을 던지고 있다.

피해자의 시선 : 박종철의 절규

“여기가 어디지… 사나운 고함과 거친 손에 이끌려 나선계단을 오른다. 잠시 후 몇 층인지 알 수 없는 곳에 멈춰 섰다. 컥, 발에 채여 쓰러진다. 쾅, 문이 닫히는 소리가 복도에 크게 울린다. 시야를 가리던 두건이 벗겨진 순간, 욕설과 주먹이 날아온다. ‘종철아, 여기 남영동이야. 너 하나 죽어 나가도 아무 일 안 생겨.’ 하지만 나는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해줄 수 없다. 어깨와 다리를 붙잡은 그들이 내 머리를 욕조로 눌러 넣는다. 숨이 쉬어지질 않는다. 그들은 이 와중에도 농담을 주고받고 노래까지 부른다. 시야가 흐려진다. 어머니가 보고 싶다…”
영화 <1987> 스틸컷. 박종철의 목숨이 스러져간 509호 조사실 / 사진. ©넷플릭스
영화 <1987> 스틸컷. 박종철의 목숨이 스러져간 509호 조사실 / 사진. ©넷플릭스
1987년 1월 14일, 민주화 운동가이자 서울대학교 학생 박종철은 경찰들의 고문에 의해 스물두 살의 짧은 생을 마친다. 좁은 창, 단단한 철문, 붉게 칠해진 벽은 공간감과 시간 감각을 잃게 만든다. 18개의 조사실이 나열된 복도는 발자국 소리를 증폭시켰고 나선계단은 방향 감각을 빼앗는다. 조사실 내부의 고정된 의자와 책상, 철망으로 보호된 형광등. 그리고 조사실 내부를 감시하는 외시경과 숨겨진 마이크와 카메라까지. 모든 요소가 하나의 시스템처럼 얽혀 고문을 가했다. 건축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폭력 그 자체였다.

“철아, 잘 가그래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데이.”

임진강에 아들의 유해를 뿌리던 아버지의 탄식은 권력 앞 개인으로서의 무력감을 드러낸다. 그러나 박종철의 죽음은 사회를 뒤흔들었다.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거짓 해명은 시민의 분노를 키웠고 남영동에서의 비명이 거리로 터져 나왔다.

방문객의 시선 : 우리의 대화

남영동 대공분실이 권력의 상징이라면, 광장은 시민의 상징이다. 권력은 비밀스런 공간을 원한다. 벽을 세워 시야를 막고 소리를 새어 나가지 않을 공간을 만든다. 반면 시민은 열린 공간, 모일 수 있는 공간을 원한다. 광장에서 개인은 공동체로 변한다. 광장은 권력의 건축과 정반대의 공간이다.
영화 <1987> 스틸컷. 권력의 공간과 정반대의 공간, 광장 / 사진. ©넷플릭스
영화 <1987> 스틸컷. 권력의 공간과 정반대의 공간, 광장 / 사진. ©넷플릭스
그때의 남영동 대공분실은 현재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바뀌었다. 표지판과 안내문이 붙었고 더 이상 비명은 들리지 않지만, 차가운 벽과 무거운 문 그리고 그 욕조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며 과거를 증언한다. 절망스런 시선으로 그들을 따라 걷고 손끝으로 벽을 더듬다 보면 그들의 경험이 체온으로 전해진다.

역사가 E.H.카가 말했듯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다. 남영동의 기억은 과거에 종결된 사건이 아니라 지금까지 이어지는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니 제안하고 싶다. 그 현장을 방문해 과거와 대화해보길. 지도 앱에 민주화운동기념관의 주소를 입력하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진다. 권력의 폭력이 이름 모를 어딘가에 숨어 있던 것이 아니라, 우리 가까이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기념관에서는 남영동 대공분실의 설계 도면도 살펴볼 수 있다. 도면을 한 장씩 넘기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김수근은 어떤 마음으로 이 공간을 설계했을까?
민주화운동기념관 (용산구 한강대로71길 37) / 출처. 민주화운동기념관
민주화운동기념관 (용산구 한강대로71길 37) / 출처. 민주화운동기념관
최영균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