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위대한 개츠비' 스틸컷.
영화 '위대한 개츠비' 스틸컷.
"난 이렇게 성대한 파티가 좋아요. 남의 눈에 잘 띄지 않잖아요. 작은 파티에는 프라이버시가 없거든요."

F. 스콧 피츠제럴드가 쓴 <위대한 개츠비>의 주인공 제이 개츠비는 소설 속 대사처럼 화려하지만 속내를 알 수 없는 남자입니다. 1920년대, 부자들의 해변가 별장이 즐비한 미국 중서부 롱아일랜드에 갑자기 나타난 이 남자는 주말마다 수백 명을 집으로 초대해 성대한 파티를 열어요.

최근 국내 개막한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제작자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가 "아름다움을 극한으로 구현한 무대"라고 한 건 원작 소설에 묘사된 파티가 워낙 화려해서죠. 개츠비의 파티에는 솜씨 좋은 오케스트라, 정원수, 요리사가 총동원됩니다. 손님들을 대접할 주스를 만들기 위해 매주 금요일 뉴욕에 있는 과일 가게에서 다섯 광주리의 레몬과 오렌지를 사들일 정도죠.

그런데 정작 개츠비는 파티를 즐기는 데는 관심이 없어 보여요. 해협 너머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죠. 이 파티는 사실 오직 한 여자의 시선을 끌기 위한 몸부림이거든요.
'광기의 시대' 옛 연인을 붙잡는 데 인생을 바친 남자
'광기의 시대' 첫사랑 이야기

올해 출간 100주년을 맞은 <위대한 개츠비>는 미국 역사상 가장 화려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 남자의 욕망과 사랑, 좌절과 타락을 그립니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 스틸컷.
영화 '위대한 개츠비' 스틸컷.
가난한 청년이었던 개츠비는 오직 옛 연인 데이지를 되찾겠다는 목표를 향해 살아왔어요. 밀주 제조와 금융 사기 등 온갖 범죄로 큰 돈을 벌고 신분까지 세탁해 데이지 앞에 다시 나타납니다. 그치만 다른 남자와 결혼해 딸을 낳은 데이지는 재회한 개츠비에게 끌리면서도 가정을 버리기를 망설여요. 얽히고설킨 갈등 끝에 개츠비가 살해당하는데, 그의 장례식에는 단 3명만이 참석합니다. 그가 생전 과시했던 부와 명성이 무색해지도록 초라한 마지막이죠.
영화 '위대한 개츠비' 스틸컷.
영화 '위대한 개츠비' 스틸컷.
소설의 배경인 1920년대는 미국에서 '재즈 시대', '광란의 20년대(roaring 20s)'로 불립니다. 풍요와 광기의 시대였죠. 세계 제1차 대전 동안 미국은 군수물자를 유럽에 공급하며 제조업을 발달시켰고, 전쟁 이후 이를 기반으로 유례 없는 호황을 누렸어요.

여기에 중앙은행(Fed)이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며 주식시장도 활황이었어요. 다우존스 지수는 1921년부터 1929년까지 500% 넘게 폭등했습니다.

아메리칸드림의 상징 '초록 불빛'

개츠비는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드림의 화신처럼 보입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 (불법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엄청난 부를 이루고 옛 연인 앞에 섰어요.

하지만 개츠비가 아무리 자신을 옥스퍼드대 출신이라 꾸며도 파티에 초대된 손님들은 속으로 믿지 않아요. 그의 행동이 어쩐지 상류층 사람 같지 않다는 거죠. 사람의 태도와 취향은 사실 어린 시절부터 접해온 계급적 환경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니까요. 한 사회의 소득 불평등과 세대 간 소득 탄력성 사이 상관관계를 분석한 통계 그래프를 '위대한 개츠비 곡선'으로 부르는 이유죠.
영화 '위대한 개츠비' 스틸컷.
영화 '위대한 개츠비' 스틸컷.
개츠비가 밤마다 바라보는 해협 너머, 데이지의 집 앞 부둣가에 켜진 초록색 불빛은 절대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 좌절된 아메리칸드림의 꿈처럼 보입니다. 소설 끝부분에 화자 닉은 말합니다. "개츠비는 그 초록색 불빛을, 해마다 우리 눈앞에서 뒤쪽으로 물러가고 있는 극도의 희열을 간직한 미래를 믿었다."

<위대한 개츠비>는 첫사랑 이야기, 치정과 욕망에 대한 소설 그 이상입니다. 대공황 직전 호황에 취해 있던 동시에 불평등, 허무주의가 퍼지던 격동의 1920년대를 배경으로 아메리칸드림과 현실의 괴리를 보여줍니다. 2000년을 앞두고 랜덤하우스 출판사가 '20세기 영어로 쓰인 가장 위대한 소설'을 선정했을 때 <위대한 개츠비>가 2위를 차지한 까닭입니다.

피츠제럴드의 경험 녹아들어
스콧 피츠제럴드.
스콧 피츠제럴드.
개츠비는 사실 피츠제럴드의 분신입니다. 재즈 시대의 아이콘이었고, 계급 차이로 연인과 헤어져야 했던 자신의 경험을 소설에 녹여냈습니다.

피츠제럴드는 1896년 미국 미네소타주 세인트폴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글쓰기에 재능을 보였고 프린스턴대에 입학했어요. 나름 촉망받는 청년이었지만 부유한 은행가의 딸 지니브러 킹과 열애하다 '가난한 작가와 결혼시킬 수 없다'는 집안 반대에 부딪혀 헤어져야 했습니다.

낙심한 그는 제1차 세계대전 중 대학을 중퇴하고 미군에 입대합니다. 이 시기에 판사의 딸 젤다 세이어를 만났지만 역시 가난을 이유로 파혼 당했죠. 이후 <낙원의 이편>을 출간하고 명성을 얻으면서 젤다와 겨우 결혼할 수 있었습니다. <위대한 개츠비> 속 데이지의 모습에는 지니브러와 젤다가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데이지를 욕망의 대상으로만 묘사한 '너무나 남성 시각의 소설'이 탄생한 건 자전적 경험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젤다와 스콧 부부는 재즈 시대 사교계의 유명 인사였습니다. 두 사람은 프랑스 파리와 미국 뉴욕 등을 오가며 유럽 예술가, 부유층과 교류했어요. 이들의 불륜과 갈등, 파티, 여행 소식이 연일 신문을 장식했죠.

둘은 서로의 뮤즈로 머물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동료 예술가이기도 했습니다. 젤다는 화가이자 소설가이고 무용수였죠. 젤다가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스콧이 알콜중독에 빠지자 젤다는 한동안 '남편을 망친 미치광이 아내' 취급을 받았지만, 스콧이 젤다의 일기장을 훔쳐보고 심지어 베껴서 글을 쓰기도 했다는 사실이 나중에야 드러납니다.

두 사람이 합장된 무덤에는 <위대한 개츠비>의 마지막 문장이 새겨진 묘비가 서 있습니다. 첫 문장이 유명한 작품은 있어도 마지막 문장까지 극찬을 받기는 쉽지 않은데, 이 소설은 그 어려운 걸 해냈거든요.

"그리하여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 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So we beat on, boats against the current, borne back ceaselessly into the past.)"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