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이란은 꽤 먼 나라다. 거리도, 문화적으로도 그렇다. 하지만 예술영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이란은 그리 멀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수많은 걸작과 위대한 영화인들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사회를 말하는 방식이 궁금하다면, 이란 영화를 떠올려도 좋다. 역설적으로 이란은 영화에 대한 규제와 검열이 강하기로도 유명한 나라다. 이 모순은 늘 흥미롭다. 척박한 환경이 오히려 예술가들의 창작욕을 자극하는 걸까.
알리 압바시의 <성스러운 거미> 역시 그런 계보 위에 놓인 작품이다. 영화는 2000년대 이란 최대의 종교 도시 마슈하드에서 성 노동자 16명이 연쇄적으로 살해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범인은 피해자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살해한 뒤, 시신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도르로 감쌌고, 그로 인해 ‘거미 살인마’라는 별명을 얻었다. 영어 제목 <Holy Spider>는 이 끔찍한 범행 방식에서 따온 이름이자, 종교가 개인의 삶과 정신을 어떻게 옭아매고 있는지를 떠올리게 하는 은유처럼 읽힌다.
영화 <성스러운 거미>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의 주인공은 여성 기자 라히미다. 그녀는 거미 살인마를 취재하기 위해 성지 마슈하드에 도착한다. 경찰과 종교 지도자 등을 찾아다니지만 돌아오는 것은 무관심과 회피, 그리고 노골적인 성희롱뿐이다. 그 사이 피해자는 계속 늘어나고, 결국 라히미는 스스로 미끼가 되기로 결심한다. 성매매 여성으로 위장해 거리로 나서는 것이다. 죽음 직전까지 몰린 끝에 범인을 붙잡는 데는 성공하지만, 사건은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연쇄살인범 사이드는 ‘성지에서 부정한 여성을 처단한 인물’로 영웅처럼 떠받들어지기 시작한다. 법원 앞에는 지지자들이 모여들고, 가족들마저 그를 순교자처럼 말한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우리가 익히 아는 스릴러의 구조를 보이고 있다. 연쇄살인범이 등장하고, 그를 쫓는 주인공이 있으며, 수사를 가로막는 구조적 장벽이 드러난다. 그리고 마침내 대결의 순간이 찾아온다. 감독 알리 압바시는 이 익숙한 틀 위에 세련된 연출을 덧입힌다. 드론으로 내려다본 도시의 야경, 맥박처럼 울리는 음악, 인물을 집요하게 포착하는 카메라는 데이비드 핀처의 영화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특히 사이드가 오토바이를 타고 마슈하드의 밤거리를 가로지를 때의 장면들은 스릴러 특유의 쾌감을 충분히 자극한다. 그는 초라한 범죄자라기보다, 어떤 사명을 수행하는 인물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영화 <성스러운 거미>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이 지점에서 <성스러운 거미>는 적지 않은 비판을 받았다. 이 영화는 피해자들이 살해당하는 과정을 가해자의 시점에서 여과 없이 보여준다. 그래서 실제 사건의 피해자들이 겪었을 고통을 관객의 흥미를 위해 소비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를 스릴러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순간, 폭력은 볼거리가 되고 피해자는 서사의 장치로 밀려나기 쉽다. 그래서 관객에게는 “이 이야기를 이렇게 흥미롭게 만들어도 되는 걸까?”라는 찝찝함이 남는다.
하지만 이 비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이 영화가 향하는 방향이 다소 복합적이라고 느껴진다. 영화 속 폭력이 사이드 개인의 욕망이나 시점에만 머무른다고 확신하기 어렵다. 나에겐 피해자의 목을 조르는 그 손길은 한 개인의 범죄라기보다, 여성 혐오와 종교적 확신이 뒤엉킨 사회 전체의 손길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 영화가 집요하게 재현하려는 것은 범죄의 그 자체의 장면이 아니라, 그 범죄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사회적 시선이라는 것이다. 이 영화가 불편한 이유는 폭력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라기보다, 그 폭력이 아무렇지 않게 가능해진 사회의 엄혹함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들기 때문은 아닐까.
영화 <성스러운 거미>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성스러운 거미>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그래서 영화 후반부, 사이드가 법정 앞에 서는 순간은 더욱 참담하다. 사람들은 16명을 죽인 연쇄살인범을 “성지에서 더러운 사람을 처단한 인물”이라며 칭송한다. 이때부터 영화는 범인을 잡는 이야기에서 벗어나, 왜 이런 범죄가 가능했고 또 용인되었는지를 묻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분명 스릴러인데, 보고 나면 남는 건 사회에 대한 질문이다. 사건은 끝났지만, 구조는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선명해진다.
알리 압바시는 이 사건을 다룬 2002년 다큐멘터리를 보고 처음 강한 끌림을 느꼈다고 한다. 인터뷰에 등장한 사이드 하네이는 연쇄살인마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평온했고, 오히려 정직해 보이기까지 했다고 한다. 자신의 이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말조차 거리낌 없이 내뱉는 태도는 감독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가 주목한 것은 사이드의 심리보다, 그런 확신이 가능했던 배경이었다. 문제는 한 개인의 광기가 아니라, 그 광기를 ‘의로움’으로 받아들인 사회 그 자체였다는 깨달음, <성스러운 거미>는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 영화처럼 보인다.
영화 <성스러운 거미>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한국에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많다. 하지만 그 출발이 언제나 창작자의 문제의식에서 비롯되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소재이기 때문에 실화가 선택되는 경우도 많아 보인다. 먼저 관객의 기대를 계산하고, 여기에 익숙한 장르의 틀을 얹는 방식이다. 그런 영화 중 일부는 큰 흥행을 거두고, 때로는 천만 관객을 넘기기도 한다. 그리고 성공과 함께 늘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된다. 재미있다는 평가와 함께, 재현 윤리에 대해 불편함이 동시에 제기되는 것이다. 실화를 다루는 영화가 늘 쉽지 않은 이유다.
그런 점에서 <성스러운 거미>가 연쇄살인범을 쫓는 장르 스릴러이면서도 동시에 이란 사회의 여성 혐오, 종교적 위선을 드러내는 사회극으로 작동하는 좋은 예시처럼 보인다. 실화 기반 영화는 사건을 흥미롭게 재구성하는 데 멈출 수도 있다. 하지만 사건 너머의 구조를 끝까지 바라볼 때, 비로소 예술로서의 힘을 얻는다. 그래서 실화를 다룬다는 것은 재미를 얻는 대신, 그만큼의 책임을 함께 짊어지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장르적 재현에만 골몰하는 수많은 한국 영화에 질문을 던지는 중요한 표본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