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볼 일 없다면…오라, 이곳으로

Cover Story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세계 천문대
뉴질랜드 남섬 테카포 마을 언덕 위에 자리 잡은 마운트 존 천문대. 뒤로 은하수 띠가 밤하늘에 펼쳐져 있다. /뉴질랜드관광청 제공
별은 과거의 흔적이다. 우리가 밤하늘에서 보는 작은 점 하나는 수십 년, 길게는 수천 년을 날아온 빛이다. 그 불가사의한 과학적 발견 끝에서야 인류는 신화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천체물리학자 칼 세이건이 말했듯이 우리 각자는 별의 먼지에 불과하지만, 그래서 별은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돌아갈 정령의 고향이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천문 관찰을 통해 천동설을 깨기 전까지, 밤하늘은 권력의 독점물이었다. 고대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이는 황제, 제사장, 철학자 같은 노동에서 해방된 이들이었다. 그리스 자연철학의 시조 탈레스가 우물에 빠지는 것도 모를 만큼 별을 보며 걸을 수 있었던 것은 낮의 노동을 감당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왕조 국가에서 하늘을 읽는 행위는 권력의 기초였다. 세종이 장영실을 앞세워 ‘자주적 하늘’을 얻으려 했던 건 당시 명나라가 정해놓은 규율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천문이 과학의 영역으로 자리 잡은 덕분에 이제 하늘은 평범한 이들의 품으로 다시 돌아왔다. 천문학 덕분에 우리는 별을 통해 지구와 인류의 시간에 관한 많은 것을 읽어낼 수 있게 됐다. 19세기 분광학이 발전하면서 별빛 속에는 온도, 화학 조성, 속도, 연령 등 정량화 가능한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요제프 폰 프라운호퍼가 태양빛에서 흡수선을 발견한 이후 천문학은 관측 기록을 넘어서 물리법칙을 검증하는 천체물리학으로 확장됐다.

현대 천문학자들은 별빛을 통해 그 별이 어떤 원소를 태웠고, 어떤 단계의 진화를 거치고 있으며, 빛이 출발하던 시점에 어떤 상태였는지를 복원한다. 특정 파장의 흡수·방출선은 항성의 온도와 성분을 알려주고, 도플러 편이는 별이 우리에게 가까워지는지 멀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심지어 별빛이 지구에 도달하기까지 지나온 성간물질의 농도와 성질까지 추적할 수 있다. 별이 내보낸 빛은 단순한 광채가 아니라 그 항성과 주변 환경이 남긴 복합적 기록물인 셈이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천문대를 가보라. 철학자 칸트가 ‘별이 빛나는 하늘과 우리 안의 도덕법칙’이라는 구절을 남긴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그곳에선 모두가 침묵의 즐거움에 빠진다. 밤의 정령들이 꾸미는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무대를 보고 있으면, 우주의 끝 모를 깊이에 압도당하고, 시간의 장엄함에 매료되며, 비로소 사유의 자유에 이르게 된다. 휴대폰과 컴퓨터의 푸른 불빛에서 해방되고 싶다면, 지금 당장 천문대로 떠나자.

관측소의 돔이 열리자…시드니는 작은 우주가 됐다
호주의 명물 '시드니 천문대'를 가다

① 지난달 30일 한 관람객이 시드니 천문대에 설치된 반사망원경을 통해 달을 보고 있다. /최영총 기자 ② 시드니 천문대 관측 돔이 열리며 모습을 드러낸 망원경. 오른쪽에는 시드니의 대표 관광 명소인 하버브리지가 보인다. ③ 시드니 천문대 전경. 왼쪽에 망원경이 설치된 푸른색 관측 돔이 자리하고 있다. /시드니 천문대 제공
“천문대는 더 이상 멀리 가야 하는 곳이 아니다.” 지난달 30일 호주 시드니 ‘천문대 언덕(Observatory Hill)’에서 만난 천문대 가이드는 도심형 천문대의 존재 이유를 한마디로 정리했다. ‘도시에서 별을 만나는 경험’은 특별함의 연속이다. 초입 주변엔 술집과 상점이 즐비하고, 일요일 저녁이면 트램과 버스에서 관광객들이 쏟아진다. 하지만 언덕을 오르기 시작하면 알게 된다. 이곳을 찾는 이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사암으로 지어진 건물과 시계탑, 언덕 위 정원이 한 장면처럼 펼쳐지는데, 그 순간 내 몸에 화석처럼 쌓여 있던 도시의 속도가 한 걸음쯤 느려지는 신기함을 경험할 수 있다.

어둠 대신 도시를 끌어안은 ‘오아시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밀러스포인트 어퍼포트스트리트에 세워진 시드니 천문대는 1850년대 항만 도시의 시간·기상·천문을 관측하기 위한 거점으로 출발했다. 현재는 공공 천문대와 박물관·교육 기능을 함께 품은 도심의 대표 과학·문화 공간으로 진화 중이다. 도심형 천문대는 ‘최신 연구’에 집중하기보다 ‘최초의 관측 경험’을 선사하는 데 중점을 둔다. 지난달 30일 시드니에 거주한다는 관람객은 “도시 한가운데에서 전문 망원경으로 달과 행성을 볼 수 있는 곳이라 주말 밤 데이트 장소로 골랐다”고 말했다.

관측관의 돔이 열리자 직경 16인치 슈미트-카세그레인식 반사망원경이 달과 토성을 차례로 포착했다. 오리온자리의 허리띠를 이루는 세 개 별도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가이드는 “도심에선 아주 먼 심우주 천체보다 달과 행성, 성단과 성운처럼 밝은 대상을 관측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별자리에 얽힌 옛이야기를 듣는 재미도 쏠쏠했다. 호주 원주민은 은하수의 어두운 부분을 호주에만 서식하는 조류인 에뮤의 형상으로 보고, 그 모습이 언제 어떻게 보이느냐에 따라 계절의 흐름과 생활의 시기를 짐작했다고 한다.

이 느슨한 호흡 위에 시드니의 야경이 더해지면, 언덕은 콘서트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화려해진다. 사위가 온통 어두운 일반 천문대와는 확실히 색다른 경험이다. 특별함을 만드는 것 중 하나가 ‘빛’이다. 천문대는 숙명적으로 빛을 피해야 하지만, 역설적으로 시드니의 빛은 체험을 더 풍성하게 한다. 언덕 아래로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리지의 야경이 펼쳐지고, 그 위로 별이 반짝이면 방문객들은 야경이 주는 낭만에 빠져든다.

관측이 끝난 뒤 실내로 들어서면 이 언덕이 쌓아온 시간을 전시한 공간을 만날 수 있다. 1874년 제작된 직경 29㎝ 굴절망원경과 각종 천문 기록, 약 4000년 전 호주 북부 헨버리 운석 충돌 당시의 운석 조각 등은 시드니 천문대가 단순한 관람형 시설이 아니라 도시의 역사와 과학이 겹친 현장임을 보여준다.

연구는 산간으로, 도시 하늘은 도심으로

천문 연구 관측이 산간 등 어둡고 높은 관측지로 이동하는 흐름 속에서 옛 천문대들은 다른 방향으로 활로를 찾고 있다. 인근에 도시가 들어서면서 교육·체험 중심으로 기능을 바꾸고 있다. 시드니 천문대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이런 변화가 ‘과학적 역할의 소멸’을 의미하진 않는다. 도시의 빛이 밝아진 만큼 도심형 천문대가 해석해야 할 대상이 달라질 수 있어서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콤플루텐세 국립대(UCM)에 있는 천문대는 빛 공해의 주요 광원 분포를 식별하고, 밤하늘 밝기와 대기 물질을 측정하는 방향으로 기능을 확장하고 있다. 이는 도심형 천문대가 ‘빛 때문에 관측이 어려운 공간’이 아니라 도시의 빛을 과학적으로 해석하는 관측소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도심형 천문대의 미래는 두 갈래로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 하나는 시드니처럼 도시 중심에서 별자리를 보는 체험의 거점, 다른 하나는 마드리드 사례처럼 도심 하늘의 데이터를 읽는 관측 거점이다. 별을 보기 위해 멀리 떠나는 시대는 이어지겠지만, 도시에서 별을 만나러 떠나는 밤도 좋지 않을까.

"천문대는 별을 보며 나를 돌아보는 곳"
에드워드 크루프 美 그리피스 천문대 관장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밤하늘 아래 둥근 돔을 은은하게 비춘 조명과 도시의 불빛이 맞부딪친다. 영화 ‘라라랜드’에서 두 주인공이 현실을 잠시 잊고 꿈과 사랑을 만끽하며 춤을 추던 바로 그 장소다. 그리피스 천문대는 스크린을 넘어 실제 세계에서도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는 힘을 지닌 공간이다. 이곳을 찾는 수백만 명의 방문객은 마치 세바스찬과 미아가 된 듯, 일상에서 벗어난 새로운 감각을 경험한다.

50년 넘게 그리피스 천문대를 지켜온 에드워드 크루프 관장(사진)은 “인류는 고대부터 하늘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이해해 왔다”고 강조했다. 천문 관측은 인간이 우주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는 “인간은 본능적으로 패턴을 찾는 존재”라며 “우주는 가장 오래 관찰해 온 무대”라고 설명했다.

이런 감각은 인류가 지녀온 가장 오래된 생존 본능과도 연결된다. 고대인들은 하늘의 패턴을 읽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이집트·메소포타미아 등 여러 문명은 별과 태양, 달의 움직임을 생존 지침으로 삼았다.

크루프 관장은 고대 문명과 천문학의 관계를 연구하는 고대천문학(archaeoastronomy) 분야를 대표하는 학자다. 이집트·멕시코·중국·페루·미국 남서부 등 전 세계 2000여 곳의 고대 천문 유적을 답사해 왔다. 그는 이집트 사원, 스톤헨지, 첨성대 등을 살펴보며 “천문학이 종교·정치·예술 등과 모두 연결돼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천문학을 깊게 들여다보면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과 삶의 방식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천문대를 “사람들이 우주 속 자신을 다시 생각하는 공간”으로 기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피스 천문대는 LA에서 최초로 개인용 컴퓨터(PC)와 인터넷을 도입한 공공기관이다. 최초로 공식 웹사이트를 제작하기도 했다. 이 모든 선택은 천문대를 대중이 우주를 가장 생생하게 체감하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그의 철학에서 비롯됐다. 도시의 불빛 아래에서도 밤하늘은 여전히 인간의 감각을 깨우고 우리가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다시 묻게 한다. 크루프 관장은 천문대를 “그런 질문을 기억하게 하는 장소”라며 “사람들이 우주를 바라보는 일을 멈추지 않는 한 인간은 자기 자신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애 기자/시드니=최영총 기자 0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