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오는 날 임윤찬의 '라벨'… 재즈의 흥과 여운으로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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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임윤찬 공연 리뷰
4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 협연
라벨 피아노 협주곡 국내 첫선
날쌔게 튀어 오르는 타건으로
긴장감 넘치는 선율, 리듬 표현
2악장 '관크'에도 흔들리지 않고
긴밀한 진행으로 사색적 악상 강조
임윤찬은 이날 지휘자 다니엘 하딩이 이끄는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의 협연자로 무대에 올랐다. 피아노 세팅이 끝나고 무대 뒷문이 열리자, 턱선까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임윤찬이 기다렸다는 듯 빠르게 걸어 나왔다. 들릴 듯 말 듯 조심스럽게 1악장의 첫 소절을 시작한 임윤찬은 서서히 건반을 누르는 힘의 세기와 소리의 명도를 높이며 작품의 생동감과 입체감을 살려냈다. 누군가 손을 위에서 낚아채듯 날쌔게 튀어 오르는 타건으로 재즈풍의 긴장감 넘치는 선율과 경쾌한 리듬을 연신 선명하게 드러냈다.
모차르트의 영향을 받은 2악장에선 긴 피아노 독주가 이어지는데, 임윤찬은 수분을 머금은 듯한 독보적인 음색과 모든 음을 하나의 줄로 꿰어내는 듯한 긴밀한 진행으로 사색적이면서도 우아한 악상으로 순식간에 장면을 전환했다. 임윤찬은 라벨이 고통스러울 만큼 치밀하게 다듬었다고 알려진 이 악장의 한음 한음을 천천히 곱씹으며 오묘한 분위기를 불러냈다.
연주 중 돌연 객석의 한 휴대전화에서 남성의 큰 목소리가 약 30초간 이어지는 소란이 일기도 했으나, 임윤찬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완전히 자신의 음악 세계에 빠져있단 반증이기도 했다. 오히려 그는 건반을 누르는 깊이와 무게, 페달 움직임, 피아노의 배음과 잔향 효과, 장식음의 처리 등을 더 예민하게 조율하면서 때론 붉게 타오르는 노을처럼, 때론 하얗게 반짝이는 윤슬처럼 장면이 전환되는 듯한 시각적 효과를 일으켰다.
연주를 끝낸 임윤찬이 몇 번의 인사를 한 이후에도 박수는 끊이지 않았고, 그가 직접 편곡한 ‘고엽’과 코른골트의 ‘아름다운 밤’을 앙코르로 선보인 뒤에야 무대를 떠날 수 있었다. 임윤찬의 라벨은 한순간도 무겁지 않았고, 모든 음이 명랑하면서도 정교했다. ‘25분이 마치 2분처럼 짧게 느껴진 연주.’ 관객에게 고민보단 즐거움과 기쁨을 선사하겠다던 라벨의 의도를 빈틈없이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