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하락 공포감 여전…기관 '현물 ETF' 매도세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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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 속
한달간 가격 추락 뒤 주춤
1억3000만원선 지지가 변수
◇美 금리 인하 기대에 멈춘 추락
비트코인 가격은 사상 최고가를 쓴 10월 9일(1억7987만원) 이후 가파른 내리막을 타며 지난달 22일 한 때 1억2100만원 수준까지 주저앉았다. 44일간 30% 이상 하락하며 지난 4월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미국 기준금리가 인하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다시 조성되면서 투자심리가 다소 회복됐다는 분석이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지난달 26일(현지시간) 고용은 소폭 감소하고 물가는 완만한 상승세를 보인다는 내용을 담은 베이지북을 공개했다. 베이지북이란 Fed가 미국 전역의 지역별 경기 상황을 정리한 경제 동향 보고서로 1년에 여덟 번 발표한다.
Fed는 이번 베이지북을 통해 “일부 지역에서 해고 공고가 증가했음에도 다수 기업이 채용 동결, 자연 감소 등 직접적인 해고를 피하는 방식으로 인력 조정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물가에 관해선 “제조업과 유통업에서 관세와 원가 상승 압력이 지속되고 있다”고도 전했다.
베이지북의 이 같은 내용은 Fed가 조만간 추가로 기준금리를 내릴 수 있다는 기대를 한층 더 자극했다는 평가다. 미 금융시장에선 존 윌리엄스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가 지난달 21일 칠레 중앙은행이 주최한 행사에서 “Fed는 가까운 시기에 기준금리를 내릴 여지가 있다”고 말한 뒤 금리 인하를 점치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던 차였다. 현지 시장에선 이 발언이 나오기 직전만 해도 12월 미국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인하될 가능성을 30%로 봤지만 지금은 80% 수준까지 뛴 상태다. 금리가 내려갈수록 주식과 비트코인 등 위험자산 선호심리가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
◇줄잇는 기관 매도세…ETF서만 5조 순유출
비트코인 가격이 소폭 반등했지만 금융시장에선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쉽게 낙관하진 못하는 분위기다. 기관투자가와 법인들이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를 잇달아 매도하고 있어서다. ETF닷컴에 따르면 지난달 1~24일 미국 증시에 상장된 11개 비트코인 현물 ETF에서 순유출된 금액은 약 36억8790만달러(약 5조3928억원)에 달했다. 비트코인 가격이 22% 떨어졌던 지난 2월(35억6040만달러)을 넘어 사상 최대기록을 새로 썼다.비트코인 현물 ETF 가운데 가장 순자산이 큰 ‘아이셰어즈 비트코인 트러스트’(IBIT)에서만 이 기간 23억5000만달러가 유출됐다. ‘피델리티 와이즈 오리진 비트코인’(FBTC·6억5494만달러) ‘아크 21셰어즈 비트코인’(ARKB·2억3158만달러)에서도 대거 자금이 빠져나갔다.
비트코인 현물 ETF는 지난해 1월 미국에서 처음 출시된 후 대형 기관들의 투자를 이끌어내면서 비트코인 시세에 영향을 미치는 한 축으로 자리잡았다.
마커스 틸렌 10X리서치 최고경영자(CEO)는 “비트코인 현물 ETF 시장에서 대규모 순유출이 발생한 것은 기관들이 비트코인 매수를 위해 신규 자금을 투입하지 않기로 했음을 의미한다”며 “이들의 매도세가 이어지는 한 비트코인 가격이 반등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지난 10월 10일 발생한 사상 최대의 강제 청산 사태로 가상자산 투자자들의 공포감이 남아있다는 것도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이날 하루에만 암호화폐 선물시장에서 191억5600만달러(약 27조4000억원)의 포지션이 강제 청산됐다. 이 사태 이후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비트코인 가격의 하락세가 이어졌다. 매년 10월에는 비트코인 가격이 오른다는 이른바 ‘업토버(Uptober)’ 속설도 7년 만에 산산조각 났다.
전문가들은 일단 비트코인 가격이 9만달러(1억3200만원) 이상을 얼마나 유지하느냐가 첫 번째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가상자산 분석가 스큐는 “지금은 비트코인 가격이 9만~9만2000달러에서 움직이며 중기 추세를 결정하는 국면에 있다”며 “8만8000달러선이 무너지면 반등 도전은 실패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