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美의 '페니' 주조 중단을 보며

박신영 뉴욕 특파원
미국은 최근 ‘페니’로 불리는 1센트 동전 주조를 중단했다. 1센트 동전 제조 비용이 개당 1.69센트로 액면 가치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1센트 동전 제조 중단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1센트 동전은 1793년 처음 주조돼 지난 232년간 발행돼 왔다. 미국 화폐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미국의 역사와 함께해 왔다.

미국 연방정부가 이 같은 정책 결단을 내린 가장 큰 이유는 재정적자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다양한 분야에서 재정 감축을 추진해 오고 있다. 1센트 주조 중단에 따른 비용 절감 효과는 연간 5600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재정적자로 1센트 생산 중단

다만 이런 노력에도 재정적자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미국 연방정부 부채는 현재 약 33조8000억달러이며 지난해 재정적자는 1조7800억달러에 달한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한때 수장으로 몸담았던 미국 정부효율부(DOGE)는 사실상 해체된 것으로 전해졌다. 머스크는 정부효율부가 1750억달러의 연방 예산을 절약했다고 주장했지만 제출 자료 부족으로 검증이 불가능하다.

이처럼 미국 정부는 작은 절감 조치부터 조직 개편, 관세 확대 같은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지만 이런 단편적 조치로는 재정 구조를 바꾸기 어렵다. 현재 미국 정부의 재정 관리는 부채 한도를 늘리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빚을 갚기보다 마이너스 통장 한도를 올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미 의회가 지난여름 연방정부의 부채 한도를 41조1000억달러로 늘렸지만 이 한도는 2년 안에 꽉 찰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급증하는 사회보장비와 의료비, 국채 이자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한때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수입으로 재정 적자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비현실적인 계산법이다. 관세는 기본적으로 미국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부작용이 있는 데다 연방 대법원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가 법적으로 유효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韓, 美보다 재정관리 엄격해야

한국도 재정적자가 이슈다. 내년 예산안에서 총지출은 728조원으로 본예산 기준 사상 첫 700조원대를 기록할 전망이다. 전년 대비 지출 증가폭이 역대 최대인 55조3000억원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나라 살림을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2026년 109조원에서 2029년 124조9000억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그나마 미국은 기축통화국이라 천문학적인 부채와 이에 따른 재정적자를 감당할 수 있는 구조다. 국채 발행을 늘린다고 해도 안전자산의 지위가 쉽게 흔들리지도 않는다. 이런 ‘특권’은 미국만의 특수한 조건이다.

한국은 다르다. 한국 신용에 대한 글로벌 시장의 평가는 미국과 일본, 유럽연합(EU) 같은 일부 선진국보다 훨씬 엄격한 잣대로 이뤄진다. 비상시에 나랏빚을 갚으려 해도 글로벌 시장에서 원화를 받아줄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정부는 이번 예산안이 인공지능(AI) 대전환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한 승부수라고 설명했지만 한 번 늘어난 지출을 다시 줄이기는 쉽지 않다. 후한 재정만큼 쉽게 표심을 얻을 길이 있을까. 이 유혹을 이길 방도를 찾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