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강경파 "배임죄 대신 집단소송 즉각 도입을"…일부는 "속도조절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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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내부서도 이견지난 9월 ‘경제형벌·민사책임 합리화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킨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배임죄 폐지 이후 예상되는 형사적 공백을 메우는 최소한의 제도 보완을 우선해야 한다는 신중론과 집단소송, 징벌적 손해배상,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의 즉각 도입을 주장하는 강경론이 맞서고 있다.
강경파는 “형법상 배임죄를 폐지하더라도 민법상 책임 강화로 보완할 수 있다”며 민사 제도 즉각 도입을 주장한다. 2005년 ‘증권 관련 집단소송법’이 시행됐지만 최근 개인정보 유출과 불완전 판매 등 대형 소비자 피해 사건이 잇따르면서 집단소송제를 전 산업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졌기 때문이다. 강경파들은 상법 개정을 주도하고 주주대표소송 등 미국식 자본주의 강화 필요성을 주장하는 투자업계 및 학계와 긴밀히 연결돼 있다.
당내에서는 과도한 기업 부담과 경제 현장 혼란을 고려해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이들 온건파는 “과도한 경제형벌을 완화하고 민사책임을 강화해 경제 활력을 되찾겠다”는 TF 출범 당시 취지와 달리 전면적인 민사책임 강화가 기업에 족쇄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런 가운데 일부 의원은 개별적으로 강력한 민사책임 법안을 발의하고 있다. 이학영 의원이 9월 발의한 법안은 징벌적 손해배상과 집단소송을 패키지로 묶었다. SK텔레콤 유심 해킹 사태 이후 제출된 이 안은 판결 효력이 모든 피해자에게 미치도록 하고 고의·중과실이 인정되면 최대 세 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았다.
전문가들은 배임죄 폐지라는 개혁 방향에는 공감하면서도 이를 민사책임 강화로만 보완하려는 시도는 “혹 떼려다가 혹 붙이는 격이 될 수 있다”고 비판한다. 집단소송 확대가 상법 개정과 맞물리면서 기업에 가해질 메가톤급 충격을 감안해 신중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지역 한 대학 교수는 “특수관계인과의 계약 특혜 등 배임죄 폐지로 나타날 수 있는 문제는 형사 영역에서 보완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징벌적 손해배상이나 민사책임 강화만으로 메우겠다는 발상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정희원/이시은 기자 top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