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보란 듯이…美 일방주의 겨냥한 시진핑 [APEC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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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태평양 공동체 설립 제안
다자무역, 다자주의 강조
미·중 정상회담 두고선 "중국 유리" 평가 나와
시진핑, 포용적 경제 세계화 추진 강조
APEC은 1993년 제1차 정상회의에서 '아태공동체 형성' 비전을 제시했다. APEC 내년 의장국인 중국의 시 주석이 이런 구상을 다시 한번 꺼내든 셈이다.
시 주석은 100년 만에 세계 변화가 빨라지고 국제정세가 복잡해지고 있다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 발전의 불안정·불확실 요인이 늘어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바람이 거세고 파도가 높을수록 한배를 타고 함께 강을 건너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구체적으로 시 주석은 "다자 무역시스템을 함께 지키자"면서 "진정한 다자주의를 이행하고 세계무역기구(WTO)를 핵심으로 하는 다자무역 시스템의 권위와 효과를 제고하자"고 말했다. WTO 개혁의 정확한 방향을 견지하고 최혜국대우와 비차별 등 WTO의 기본 원칙을 지키는 한편 국제 경제무역 규칙이 시대에 따라 발전하도록 하고 개발도상국의 정당한 권익을 더 잘 보장하자는 게 시 주석 구상이다.
아울러 "개방형 지역경제 환경을 함께 만들자"면서 무역·투자 자유화, 금융 협력 심화, 지역 경제 일체화의 점진적 추진 등을 거론했다.
이뿐만 아니라 시 주석은 산업망·공급망 안정, 무역 디지털화·녹색화, 보편적·포용적 발전 등도 제안했다.
시 주석은 "중국은 이미 최빈국 수교국의 100% 세목에 무관세 대우를 하고 있으며, (관련 협정 체결을 통해) 아프리카 수교국의 100% 세목에 무관세 조처를 하고자 한다"면서 "중국은 각국과 공동 발전하고 공동 번영하기 위해 힘쓸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 주석의 이번 연설은 미국이 일방적인 관세 정책을 밀어붙이며 자국 이익을 우선시하고 다자기구에서도 발을 빼는 상황이라 더욱 주목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APEC 최고경영자(CEO) 서밋' 특별연설 후 본회의에는 참석하지 않은 채 출국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APEC 본회의에서는 미국의 일방주의를 비판해온 시 주석이 다자주의를 강조한 것이다.
미·중 정상회담, "中 자신감 과시" 평가도
한편 전일 미·중 정상회담을 두고선 중국이 미국과 대등한 '경제 초강대국'으로서 자신감과 힘을 과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전일 부산에서 6년 4개월 만에 성사된 미·중 정상회담에서 미국은 합성마약 펜타닐 원료 유입을 문제 삼아 중국산 제품에 부과했던 '펜타닐 관세'를 20%에서 10%로 낮췄으며, 중국은 12월 1일부터 시행 예정이던 희토류 수출통제 강화 조치를 1년 유예하고 미국산 대두 구매를 재개하기로 했다.
서방 외신과 전문가들은 중국이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트럼프 1기 행정부 무역전쟁 때보다 '더 강력해진 면모'를 각인시켰다고 분석했다. 미국에 끌려다녔던 트럼프 1기 행정부 때와 달리 트럼프 2기 행정부 무역 전쟁에서는 희토류와 농산물 등 준비된 대응 카드로 맞서며 미국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냈다는 이유에서다.
또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크게 고통스러운 양보 없이 관세 인하와 수출통제 완화 등 실질적 성과를 끌어냈다고 평가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번 정상회담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이후 중국이 얼마나 더 강해졌는지를 분명히 했다"고 전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도 "이번 정상회담은 미국과 동등한 국가로서 중국의 자신감이 커지고 있음을 강조한다"고 짚었다. 특히 FT는 시 주석의 달라진 수사도 이런 자신감을 반영한다고 봤다.
시 주석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중국의 발전과 부흥은 트럼프 대통령이 추구하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목표와 어긋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미·중 관계를 '거대한 배의 항해'에 비유해 유대감과 동등함을 강조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휴전 기간은 1년뿐이지만 중국에 유리할 수 있다"며 "시 주석이 미래 기술과 제조업 분야에서 중국을 더 발전시킬 시간을 벌어주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베이징=김은정 특파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