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아베노믹스 시즌2' 예고…8개월 만에 엔·달러 152엔 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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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자민당 신임 총재, 재정 확장·금융 완화 정책 추진“다카이치 트레이드가 돌아왔다.”
"책임있는 적극 재정" 강조
공적 투자 앞세워 방위력 강화
미쓰비시重·IHI 등 방산주 급등
연내 닛케이 5만선 돌파 전망도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자민당 총재가 취임한 이후 일본 주식시장과 외환시장 움직임에 대한 평가다. 재정 확장과 금융 완화 등 ‘아베노믹스’를 계승하는 다카이치 총재가 이달 중순 총리에 오를 것으로 보이면서 주가는 급등하고 엔화 가치는 급락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 국면에서 ‘아베노믹스 시즌2’는 역효과를 불러올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데다 재정 악화 우려에 국채 금리가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주식 매수, 엔화 매도’ 바람
지난 4일 다카이치의 총재 당선 후 ‘주식 매수, 엔화 매도’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는 게 시장 평가다. 그는 이번 선거 공약에서 ‘책임 있는 적극 재정’을 내세우며 대담한 공적 투자를 약속했다. 다카이치 총재가 방위력 강화에 힘을 쏟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방위산업주가 닛케이지수 상승을 견인하고 있다. 미쓰비시중공업, IHI 등이 대표적이다. 기쿠치 마사토시 미즈호증권 수석주식전략가는 47,000대인 닛케이지수가 연내 50,000선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다카이치 총재는 통화정책에서 금융 완화를 지향하는 ‘비둘기파’로 간주된다. 지난해 총재 선거에서 일본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움직임을 강하게 비판했고 일본은행 총재 해임권까지 언급했다. 이에 따라 일본은행이 이달 기준금리를 추가 인상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엔·달러 환율이 약 8개월 만에 달러당 152엔을 넘어서며 다시 엔저로 돌아선 배경이다.
하지만 디플레이션 극복을 위해 추진된 아베노믹스는 인플레이션 시대엔 맞지 않는 정책이란 지적이 나온다. 물가만 자극할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다카이치 총재가 적자 국채 발행까지 용인하겠다는 뜻을 내비치며 국채 금리도 들썩이고 있다. 최근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연 1.695%를 기록하며 17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 재정 악화 우려가 확산한 것이다.
8일 역외 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에선 원·달러 환율이 1420원대로 치솟았다. 지난 주말 서울외환시장에서 거래된 현물환 종가(1400원)와 비교하면 20원 넘게 올랐다. 글로벌 시장에서 원화는 엔화의 ‘프락시(대리) 통화’로 여겨져 엔화 약세 흐름에 동조했다는 것이다.
◇‘아소 눈치, 트럼프 불만’ 변수
시장에선 다카이치 시대에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전망되는 아소 다로 전 총리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오랜 기간 재무상을 지낸 아소는 ‘재정 규율론자’로 평가된다. 다카이치 총재 당선에 결정적으로 기여하며 ‘킹메이커’로 떠오른 아소 전 총리가 재정 확장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관측이다. 엔화 가치 하락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릴 수도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은 다카이치가 일본의 수출 확대를 위해 엔저를 유도하고 있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외교·안보 정책과 관련한 다카이치 총재의 행보도 주목된다. 그는 당선 뒤 기자회견에서 “우선 일·미 동맹 강화를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며 “일·미·한이 협력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는 선거 전 토론회에선 “일본과 한국은 문화적으로 교류가 활발하고 경제적으로 조선 등에서 경쟁하지만 협력하고 있다”며 “중국 러시아 북한이 밀착하는 위기 상황에서 (한국과) 협력하며 대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변수는 야스쿠니신사 참배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정기적으로 참배했다. 이날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다카이치 총재는 오는 17~19일 추계 예대제 때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보류하는 방향으로 논의 중이다. 한·중과의 외교 문제화를 피해야 한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도쿄=김일규 특파원/이광식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