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앞둔 韓유학생 '비자 날벼락'…아메리칸 드림 깨진다

전문직 'H-1B 비자' 수수료 100배 폭탄

과학자나 엔지니어를 위한 비자
신규 신청자만 발급받을때 납부

유학생은 학생비자로 취업한 뒤
고용주가 'H-1B' 청원하면 전환
일각 "국내 인재, 유턴시킬 기회"

MAGA세력 "美일자리 뺏는다"
트럼프, 강성 지지층 손들어줘
< 비자 신청 ‘장사진’ > 미국 비자 발급 신청자들이 서울 세종로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줄을 서 있다. 미국 정부는 지난 19일 전문직(H-1B) 비자 수수료를 1000달러에서 10만달러로 인상했다. 임형택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전문직 비자인 H-1B 신청 수수료를 1000달러(약 140만원)에서 10만달러(약 1억4000만원)로 100배 인상하면서 미국 취직을 목표로 한 유학생이 날벼락을 맞게 됐다. 전문직 비자 소지자를 대거 채용 중인 미국 빅테크도 혼란에 빠진 가운데 미국이 혁신 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핵심 수단을 스스로 걷어찼다는 평가가 나온다.

◇ “트럼프, MAGA 진영 손 들어줘”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지난 19일 H-1B 비자 수수료 인상 포고문 서명식에서 “회사는 외국인 피고용자가 정부에 10만달러를 지급할 만큼 가치가 있는지 결정해야 한다”며 “대통령의 입장은 매우 분명하다. 미국을 위해 가치 있는 사람만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H-1B 비자는 전문직 추첨을 통해 연간 8만5000건을 신규 발급한다. 기본 3년 체류가 허용되며 가족과 함께 거주하면서 일할 수 있고, 영주권 신청도 가능해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는 해외 인재의 선호도가 높은 비자다.
백악관은 20일(현지시간) 이번 조치에 대해 “신규 비자 신청자에게만 적용되고 기존 비자 소지자와 갱신 신청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또 백악관은 “비자를 신청할 때만 부과되는 일회성 수수료”라며 연간 수수료란 말도 뒤집었다. 최초 발표와 백악관 설명이 다르게 나오면서 혼선이 일고 있다.

워싱턴 정가에선 이번 조치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강성 지지층인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세력’ 손을 들어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2기 정부와 지지층을 구성하는 큰 축은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는 MAGA 세력과 지난 대선 때 트럼프 대통령에게 큰돈을 후원한 ‘실리콘밸리 세력’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등 실리콘밸리 세력은 H-1B 비자 정책을 지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H-1B 비자는 훌륭한 프로그램이고 이를 항상 지지해 왔다”고 했다. 반면 MAGA 세력은 H-1B 비자 프로그램이 미국인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목소리를 높여 왔다. 트럼프 대통령 책사로 알려진 스티븐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도 H-1B 비자 제도 폐지를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자 수수료가 10만달러까지 오르면 현실적으로 개인이 이를 지급하거나 채용하는 기업이 비용을 후원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머스크 CEO를 비롯해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등 빅테크 CEO를 다수 배출한 H-1B 비자 문턱이 높아지면서 글로벌 우수 인재를 흡수해온 미국 첨단산업의 경쟁력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 美 유학생 “기업의 채용 유인 약해져”

이번 조치로 미국 유학생은 날벼락을 맞았다. 유학생은 학생(F-1) 비자로 학업을 마친 뒤 인턴프로그램(OPT)을 거쳐 H-1B 비자를 받아야 미국에서 직장 생활을 할 수 있다.

채용되면 미국 고용주가 H-1B 비자를 청원하는 형태로 비자를 전환한다. OPT 단계에서 H-1B 비자로 전환할 가능성이 불확실해지면 미국 기업은 유학생을 채용할 유인이 약해진다. 지금도 일부 미국 기업은 유학생에게 ‘비자 스폰서 불가’ 조건을 내걸고 있다. 한 유학 준비생 학부모는 “미국 대학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와야 한다면 한국의 네 배에 달하는 (미국) 등록금을 낼 가치가 있는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과 연구소 입장에선 미국의 이번 조치가 전문 인력을 유치할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미국 이민국에 따르면 지난해 H-1B 비자를 발급받거나 갱신한 외국인을 국적별로 보면 인도가 23만 명 이상으로 가장 많고 중국이 4만6600여 명으로 두 번째였다. 한국도 3900여 명에 달했다.

김동현/고재연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