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추덕영 기자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전략과 국제경영을 공부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자주 들은 질문이 있다. “요즘 누가 국제경영을 공부하느냐”는 것이었다. 이미 세계화가 상당히 진행됐고, 글로벌 경영이 당연해진 시대에 무엇을 더 연구할 필요가 있느냐는 얘기였다. 10여 년 전 박사 과정을 마치고 교수 자리를 찾을 때도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대학들은 혁신이나 창업 전공자를 선호했고, 국제경영 전공자를 채용하는 곳은 미국에서도 한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시쳇말로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했던가. 불과 2~3년 전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국제경영 전공자를 찾는 대학이 늘고, 학회에서도 관련 연구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동안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던 국제경영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예측 가능한 경영환경 무너져

[비즈니스 인사이트] 세계화가 흔들리자 '국제경영'이 돌아왔다
지난 수십 년간 세계화의 가장 강력한 동력은 경제적 효율성이었다. 기업은 생산비가 저렴한 곳에 공장을 짓고, 시장이 큰 곳에서 제품을 팔았다. 각국 정부도 앞다퉈 무역장벽을 낮추고 해외 투자를 유치했다. 비교우위에 따른 국제 분업과 글로벌 공급망이 기업의 비용 절감과 시장 확대를 가능케 했다. 국가별 정치·제도적 차이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세계화가 제공하는 효익이 그에 따른 위험보다 컸다.

이런 경영환경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 세계화가 경제 성장에 기여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 반작용으로 포퓰리즘과 민족주의가 확산하고 자국 산업과 일자리 보호를 앞세우는 정책이 힘을 얻고 있다. 여기에 경제력과 군사력을 앞세운 국가 간 패권 경쟁까지 격화하면서 정치와 지정학이 기업 경영활동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이제 기업은 경제적 효율성만으로 투자와 생산 거점을 결정하기가 어려워졌다. 중국이 생산비와 시장 규모에서 유리하더라도 미국의 수출통제와 제재 가능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미국에 공장을 짓는 반도체 기업도 인건비와 생산성뿐 아니라 보조금 지급 조건과 정권 교체에 따른 정책 변화까지 따져야 한다. 자동차 기업 역시 생산비가 가장 낮은 곳에서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것이 반드시 최선은 아니다. 관세와 현지 부품 조달 규정 등에 따라 비용이 더 들더라도 현지 생산을 선택해야 할 수 있다.

과거에는 가장 효율적인 글로벌 공급망 구축이 경쟁력의 원천이었다면, 이제는 정치적 충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공급망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경제적으로는 최적의 선택이 정치적으로는 가장 위험한 선택이 될 수 있는 시대다.

핵심 변수로 떠오른 정치·지정학

국제경영은 단순히 해외시장을 개척하거나 다국적 기업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 아니다. 국가별 정치·경제·제도의 차이가 기업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기업은 그 차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다룬다.

물론 정치적 위험과 국가 간 갈등은 과거에도 중요한 연구 대상이었다. 다만 세계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동안 기업의 관심은 시장 확대와 비용 절감 등에 상대적으로 쏠렸다. 한동안 뒷전으로 밀린 국가 권력과 정치·제도적 차이에 대한 이해가 다시 경영전략의 중심으로 돌아오고 있다.

기업의 대응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해외 진출을 결정할 때 시장 규모와 생산비뿐 아니라 해당 국가의 정치적 안정성과 정책의 지속 가능성까지 평가해야 한다. 특정 국가에 생산과 조달을 집중하는 대신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필요하다면 단기적인 비용 증가도 감수해야 한다. 가격과 품질, 기술력으로 경쟁하는 시장 전략에 더해 정부 정책 및 규제, 현지 이해관계자와의 관계를 관리하는 비시장 전략도 중요해졌다.

지난주 미국 중간선거 결과가 나왔다. 한국 기업으로서는 어느 정당이 집권하느냐 못지않게 미국의 정치적 변화가 산업·통상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속적으로 분석하고 대응할 역량이 필요하다.

흔히 ‘위기는 기회’라고 한다. 지정학적 갈등과 보호무역주의는 분명 기업에 새로운 부담이다. 하지만 이는 세계 모든 기업이 직면한 현실이다. 국가별 정치·제도적 차이를 정확히 읽고 대응하는 기업은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 국제경영이 다시 중요해진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