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80대 여성 A씨는 지난해 4월 노후 월세 수입을 기대하며 서울 서초동의 15억원짜리 T오피스텔을 분양받았다. 대출이 가능하다는 분양상담사의 말을 믿고 계약금 7800여만원을 냈지만 은행 대출은 거절됐다. 사비로라도 계약금을 돌려주겠다던 상담사가 돌연 태도를 바꾸면서 A씨는 1년 넘게 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고령자를 타깃으로 한 일부 분양대행 업체의 영업 관행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비주택 분양대행업은 법정 자격과 교육 기준이 미비해 부동산 경험이 부족한 상담사도 쉽게 영업에 뛰어들 수 있다. 고액 수당을 내세운 실적 경쟁 속에 대출 가능성과 임대수익을 과장하는 영업이 소비자 피해로 이어지는 상황이다.
◇ 형사 고발과 민사소송 잇따라
6일 서울 서초경찰서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 6월 A씨가 분양상담사 B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한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같은 상담사를 통해 다른 호실을 계약한 60대 C씨도 계약금 약 7500만원을 돌려받지 못했다며 시행사 등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비슷한 사례에서 계약 취소를 인정한 판결을 잇달아 내고 있다. 2023년 서울중앙지법은 노후 임대수익을 기대하며 지식산업센터를 분양받은 78세 퇴직 경비원에게 분양대행사가 4309만원을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법원은 분양대행사의 대출 가능성에 관한 설명이 계약자의 착오를 유발했고 계약 체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했다. 한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분양대행사나 시행사가 자사에 대출 무산 등의 책임이 발생하지 않도록 계약서에 예외 조항을 두면서도 이를 계약자에게 설명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 2~3주 교육받고 분양 영업 뛰어
이 같은 피해가 벌어지는 배경으로 비주택 분양대행업에 대한 관리·감독 공백이 지목된다. 일정 규모 이상의 주택 분양대행에는 주택법상 자격·교육 요건이 적용되지만 오피스텔과 상가, 지식산업센터 등 비주택 분양대행 인력에 대한 별도 규정은 미비하다.
일부 대행업체는 부동산 경험이 없는 인력을 2~3주간 교육한 뒤 영업 현장에 투입한다. 헬스트레이너나 카페 운영자 출신도 뛰어들고 있다. 일부 상담사는 SNS에 고급 시계를 과시하거나 영업 1년 만에 연봉 3억원을 벌었다는 식의 ‘성공팔이’ 홍보 글로 신규 인력을 끌어모으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입사 직후 과장 직함을 주고 4~5명이 팀을 이뤄 영업한다”며 “기본급 없이 실적에 따라 수당을 받기 때문에 팀 간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그 사이 고령층의 사기 피해는 빠르게 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60세 이상 고령층의 사기 피해는 2019년 3만4359건에서 2024년 5만6746건으로 65.2%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사기 범죄 발생 건수 증가율 38.4%를 크게 웃돈다. 올해도 10월까지 고령층 사기 피해는 4만9238건에 달했다.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과장 영업도 문제로 꼽힌다. 서울 서초구의 한 부동산공인중개사는 “40년간 경찰로 근무한 퇴직자도 월세 300만~500만원을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을 믿고 오피스텔을 계약했지만 임대수익은 이에 훨씬 못 미쳤다”며 “대행사 설명을 듣고 10억원에 오피스텔을 분양받은 고령자가 1년 만에 8억원에 매물로 내놓은 사례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