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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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인턴 채용, 프로 골퍼 대동 골프 레슨, 술집 외상값 결제, 명절 상품권 제공…"

사모펀드(PEF)·자산 운용사들의 연기금·공제회·금융기관 등 기관투자자에 대한 향응·접대 경쟁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운용사(GP)와 기관투자자(LP)간 정상적인 소통을 넘어 일부 부적절한 뒷거래가 성행하면서, 정직하게 실력으로 인정받으려는 운용사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법조계에선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위반을 넘어 배임수재와 증재에 해당해 양자 간 모두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여성 프로 골퍼 통한 '황제 레슨' 접대… LP영업 전담 프로 골퍼 채용하기도

5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수십조원 자산을 운용하는 기관투자자 A사의 한 투자 담당자는 최근 B운용사에 자녀 인턴 채용을 부탁했고 B사는 이를 받아들였다. 기관투자자의 투자 담당 부서는 운용사에 자금을 배분하는 막강한 권한을 지녔다. B사는 A사 자금 모집 경쟁에 참여해왔기 때문에 이 부탁을 뿌리칠 수 없었다는 후문이다. 법조계에선 연기금·공제회 등 LP 담당자가 운용사로부터 부정한 청탁을 받고 금품이나 향응을 받았다면 배임수재죄가 적용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판사 출신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설사 A사 펀드 자금 유치 경쟁에서 B사가 탈락하는 등 당장의 대가 관계가 명확히 입증되지 않더라도 향후 운영사 선정 기회가 있을 때 유리하게 봐달라는 취지라면 대가가 포괄적으로 인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유력 LP뿐만 아니라 대기업 오너나 유력 인사의 자녀들도 운용사에 취업하는 사례가 많다. 한 PEF 운용사 관계자는 "과거 인턴 채용 5명 중 2명 정도는 낙하산이었다"며 "대기업 오너나 C레벨(고위 임원) 자녀들이 대다수"라고 말했다. 이런 채용을 통해 LP 및 재계와 끈끈한 인맥을 만들어, 향후 각종 투자 기회가 올 때 우선적으로 영업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일부 PEF들은 LP 전담 조직을 만들어 과도한 골프 영업을 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모 PEF는 막대한 돈을 들여 명문 골프장에 여자 프로 골퍼를 초청해 기관투자자에게 무료 레슨도 해주고 함께 식사할 기회도 제공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운용사의 경우 최근 기관투자자에 대한 골프 접대 영업을 강화하기 위해, 아예 젊은 여성 프로 골퍼를 부장급 정직원으로 채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운용사와 기관투자자들 사이에서 골프를 칠 때, 일부 운용사는 게임비로 수백만 원의 현금을 지급하는 사례가 있었다"며 "대부분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골프장 이용 시 가명을 쓰고, 골프장 이동 차량 기록도 남기지 않으려 세밀하게 주의를 기울인다"고 말했다. 이러한 거래는 대부분 오랜 거래를 이어온 기관투자자와 운용사 사이에서만 벌어진다. 보안 유지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정직하게 영업해온 운용사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했다. 한 운용사 대표는 "운용사는 실력으로 평가받고 LP 담당자도 수조 원에서 수십조원의 자금 운용을 맡은 대리인으로서 의무에 충실해야 하는데 과도한 접대와 영업이 업계의 공정 경쟁 질서를 흔들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PEF 대표도 "기관투자자들이 더 많은 운용사를 만나 더 높은 수익을 창출할 기회를 찾아야 하는데, 새로운 거래처는 웬만하면 만나주질 않는다"며 "대부분 기존 거래 운용사나 과도한 영업을 해온 운용사만 만나준다"고 하소연했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6월 발표한 '2025년 기관전용 사모펀드 운용 현황 및 시사점'에 따르면 국내 PEF 출자약정액은 167조5000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약정액 1조원 이상 대형 운용사(GP)의 약정액 비중은 68.7%로 2022년(60.4%)에 비해 크게 늘었다.

외상값 결제, 선결제 등 술자리 접대도 다양..."후배 기 살려야" 명절 상품권 요구도

과도한 술자리 접대도 비일비재하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최근 중소규모 연기금 공제회 관계자가 PEF로부터 저녁 식사에 이어 유흥주점까지 가서 접대받았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한 운용사는 저녁 식사 접대를 하며 100만원짜리 고급 와인을 여러 병 제공하며 남은 와인을 선물로 줬다"고 했다.

일부 기관의 경우 외상값 결제를 운용사에 지시하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 컨설팅업체 임원은 "한 운용사가 기관투자자가 지정한 비싼 술집에서 저녁 식사 접대를 한 후 결제했는데, 200만원이 아니라 700만원이 나왔다"며 "알고 보니 그동안 이 기관이 외상으로 달아놓은 거래까지 이 운용사에 한꺼번에 결제하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강남과 여의도의 비싼 술집에선 운용사들이 '선결제'를 해놓고 기관들이 나중에 그 혜택을 누리는 사례들도 많다"고 전했다.

최근 한 비공개 커뮤니티 사이트에선 이같은 기관투자자들의 갑질 행태가 공개되기도 했다. 이 사이트에 지난 9월에 올라온 글에 따르면 한 LP 관계자는 GP 측에 식당이나 술집에 결제를 해놓기를 요구했고 특정 작은 로펌에 과도한 자문료를 지급할 것을 강요했다. 여기에 더해 명절 상품권도 구체적인 액수로 요구했다. 이 글에 따르면 LP관계자는 "(너희들이) 우리 때문에 받는 보수가 얼마면 그중에 X %는 써야 하는 거 아니냐. 후배들 명절에 기 좀 살려야 한다"며 명절 상품권을 요구했다. 이 글은 이 GP 관계자가 이러한 LP의 부탁을 거절해도 될지 고민을 털어놓는 내용이 골자였다.

"관리보수의 10%는 우리 몫"의식 팽배...김영란법, 배임수증죄 해당할 수도

운용업계에선 실제 적지 않은 LP 관계자들이 '관리보수의 10% 접대 룰'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LP로부터 100억원을 출자받아 관리보수 1.5%(연 1.5억원)를 받으면, 그중 10%인 연 1500만원은 연간 골프와 술자리 등 접대 비용으로 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아직도 있다"고 말했다. LP 조직 내에서 기금운용 담당 부서가 '꽃보직'으로 통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접대 받아도 전혀 고마워하지 않고 당연시하며 접대를 안 할 경우 아무런 티를 내진 않지만 '얘네 봐라, 돈 안 쓰네'라는 불만을 품고 향후 불이익을 준다"고 말했다.

한 외국계 운용사 대표는 "인턴 채용, 황제 골프레슨, 과도한 술 접대 등은 준법 감시 기준이 높은 선진국에선 불가능하다. 투자 담당자가 관리보수의 10% 접대를 당연시 하는 것도 황당한 한국식 관행"이라며 "과거에 비해 나아지긴 했으나 일부에선 여전히 남아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운용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 등 상위권 연기금에선 이런 관행이 완전히 사라졌고, 중소형급 일부 공제회나 금융기관 등에서 이런 관행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에선 향응을 받은 자와 제공한 자 모두 김영란법이나 배임수증 혐의로 처벌이 가능해 주의를 요구했다. 지난 9월 국민권익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김영란법 시행(2016년 9월) 이후 지난해 말까지 누적 위반 신고는 1만7455건, 제재를 받은 인원은 2983명이었다. 이 가운데 금품 등 수수 위반이 2828명(94.8%)으로 대부분을 차지했고 부정청탁이 140명(4.7%), 외부강의 초과사례금 수수가 15명(0.5%) 등 순이다.

김영란법은 금품이나 향응을 받은 사람뿐 아니라 이를 제공한 사람도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1회 100만원 또는 매 회계연도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제공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직무 관련성이 있는 경우에는 100만원 이하의 금품을 제공하더라도 수수금액의 2~5배에 해당하는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대다수 연기금·공제회는 김영란법 적용 대상이다.

또 형법 제357조에 따르면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사람이 직무와 관련해 부정한 청탁을 받고 금품이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면 배임수재죄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금품이나 이익을 제공한 사람에게는 배임증재죄가 적용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이 선고될 수 있다.

실제 새마을금고중앙회는 2023년 펀드 투자의 대가로 금품을 수수한 혐의 등으로 임직원이 대거 실형을 받았다. 건설근로자공제회 역시 2021년 펀드 보수의 40% 상납을 요구하다 거부당하자 운용사를 교체하고 3억원을 챙긴 것을 감사원이 적발했다. 한 법조인은 "2023년 새마을금고 사태 당시 검찰에서 연기금·공제회·금융기관 등 기관투자자 전반적으로 수사를 확대하려 했지만, 수사가 새마을금고에만 그쳤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돈을 받아도 김영란법 위반에 걸릴 수 있는데, 서로 대가가 존재하는 관계는 사교적 의례 내 선물도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자녀 인턴 채용도 '채용절차의공정화에관한법률' 위반 소지도 있고 향응 제공에 포함돼 처벌받을 수 있다"며 "많은 LP들이 보다 많은 GP에 균등한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안대규/서형교/송은경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