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미국 정부에 미국 국채의 대규모 매입을 제안하면서 2024년 등장한 ‘마이런 보고서’가 현실화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스티븐 마이런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이사가 작성한 이 보고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통상정책의 이론적 토대를 구성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보고서는 미국 경제의 고질병인 만성적 무역적자·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관세를 협상 무기로 삼아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핵심 구상은 주요 교역국에 고율 관세를 부과한 뒤 관세 인하를 조건으로 달러 약세를 유도하기 위한 환율 합의를 추진한다는 것이다. 달러 약세를 통해 미국산 제품의 수출 경쟁력이 개선되고 그만큼 무역적자도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달러 약세가 미국 재정 부담을 키울 수 있다. 달러 가치가 하락하면 해외 투자자가 환차손을 피하기 위해 미 국채를 매도하고, 그만큼 국채 금리는 치솟기 때문이다. 마이런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세 인하와 안보 지원을 유인책으로 삼아 동맹국이 보유한 미 국채 단기물을 100년 만기 초장기물로 전환하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동맹국의 초장기국채 보유가 늘어나면 미국의 장기금리 상승을 억제하고 국채 차환 부담도 줄일 수 있다.

마이런은 초장기국채를 보유한 동맹국의 유동성 위험을 줄이기 위한 안전장치도 제안했다. 초장기물을 보유한 이들 동맹국이 금융외환위기에 직면하면 미국 중앙은행(Fed)과 미 재무부 외환안정기금(ESF)을 통해 미 국채를 담보로 달러 유동성을 공급해주자는 것이다.

한국의 미 국채 대규모 매입 추진은 마이런 보고서의 핵심 구상과 맞닿아 있다. 미국이 국채 매입을 요구하기에 앞서 한국이 먼저 이를 선제안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미국이 필요로 하는 국채 매입을 선제적으로 제안해 향후 관세와 대미 투자 협상, 안보 협상에서 유리한 조건을 확보하려는 포석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