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한글과컴퓨터그룹 회장. 한경 DB.
김상철 한글과컴퓨터그룹 회장. 한경 DB.
계열사가 보유한 가상화폐를 팔아 9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상철(73) 한컴그룹 회장이 1심에서 배임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은 차남 등이 가상화폐 매각 대금을 사적으로 유용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김 회장이 범행에 관여하거나 이를 지시했다는 증거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계열사 자금 4억9000여만원을 빼돌린 횡령 혐의는 유죄로 인정했다.

수원지법 성남지원 형사1부(재판장 김경훈)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배임)과 업무상 횡령 혐의로 기소된 김 회장에게 5일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김 회장은 2021년 12월부터 2022년 10월까지 한컴그룹 계열사가 투자한 가상화폐 아로와나토큰의 매각 대금 96억원 상당을 차남 명의로 넘겨 사적으로 쓰도록 한 혐의로 지난해 4월 기소됐다. 검찰은 차명 주식 취득과 허위 급여 지급 등으로 계열사 자금을 빼돌린 혐의도 함께 적용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인 가상화폐 매각 대금 관련 배임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아로와나토큰 매각 대금 96억원 중 절반 이상을 차남 등이 개인적으로 유용했지만 피고인이 이에 관여하거나 계열사 지원을 지시했다고 볼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오히려 45억원가량은 실제 아로와나 프로젝트 운영사로 유입돼 사업 목적으로 사용됐다"며 "피고인이 매각 대금을 정당한 사업비로 인식했고 공범들의 개인적 유용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검찰이 낸 증거만으로는 김 회장에게 배임의 고의가 있었다거나 차남 등과 범행을 공모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반면 업무상 횡령 혐의는 유죄로 인정됐다. 김 회장은 한컴그룹 계열사 4곳의 자금 4억9000여만원을 관계사 주식 매입과 지인에 대한 허위 급여 지급 등에 쓴 혐의를 받았다.

재판부는 "그룹 총수의 막강한 지배력을 이용해 회사 자금을 사익 추구에 사용한 점에서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다만 김 회장이 횡령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점, 피해액을 모두 갚은 점, 동종 범죄 전력이 없는 점 등을 고려해 징역형의 집행을 유예했다.

김 회장은 선고 직후 “3년여 동안 재판을 받으며 회사에 피해를 끼쳤다”며 "항소 여부는 변호인들과 상의해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김 회장의 차남과 아로와나테크 대표는 같은 사건에 가담한 혐의로 앞서 각각 징역 3년과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이 확정됐다.

성남=정진욱 기자